행장, 삶의 간명한 기록
《주자 행장》이란 주희(朱熹, 1130∼1200)의 생애와 행실을 체계적으로 기록한 글이다. ‘행장(行狀)’이란 한문 문체의 하나로서, 역사 편찬이나 개인의 전기(傳記)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기록한 글을 말한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고인의 세계(世系), 성명, 관향(貫鄕), 자호(字號), 관작(官爵), 생졸 연월일, 자손록(子孫錄)과 같은 생애적 사실 및 평생의 언행이 포함된다. 행장은 전기(傳記)보다는 단순하며, 여기에 잡다한 내용의 글이 포함되지 않는다. 이것은 비슷한 성격의 글인 행록(行錄), 가장(家狀), 묘지명(墓誌銘), 묘갈명(墓碣銘) 중에서도 가장 권위 있는 형식의 문체다.
주자학 연구의 가장 기본적인 자료
《주자 행장》은 주자학 연구에서 가장 기본적인 자료다. 이것은 주희 사후 20년 되던 해에 막내아들인 주재(朱在)의 요청에 따라 주희의 제자이자 사위인 황간(黃榦)이 찬술한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주희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가장 권위 있고 깊이 있는 자료로 여겨지고 있다. 황간은 《주자 행장》 ‘부록’에서 행장 저술과 관련해 “내가 선생의 행장을 지은 것은 어쩔 수 없어서인데, 선생의 도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아 후세에 이것을 전하는 이들이 잘못 전할까 두려워해서다”라고 했다. 한마디로 말해 행장 찬술의 목적이 주희의 도를 분명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주자학 최고의 권위자, 퇴계 이황의 주석
《주자 행장》과 관련해 특별한 인연을 지닌 조선의 학자가 있다. 바로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다. 이황에게 주희는 이론적 사상가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성인의 경지로 이끌고 갈 수 있는 위대한 스승이었으며, 전인격적으로 닮고 싶은 인물이었다. 이황은 주자학 연구에서 당대 최고의 권위자였다. 그는 황간이 찬술한 주자의 행장만으로는 그의 행적을 온전하게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송사(宋史)》에 기록된 주희 전기, 주희의 제자인 이방자(李方子)가 쓴 《연보(年譜)》, 이유무(李幼武)의 《황조도학명신외록(皇朝道學名臣外錄)》 등과 《연평답문(延平答問)》, 《속자치통감(續資治通鑑)》 등 당시 수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자료를 참고하고 고증해 주희의 생애를 재구성했는데,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주자행장집주》다. 주희 전기 자료의 전문가인 천룽제(陳榮捷, Wing-tsit Chan, 1901∼1994)는 이 책이 이황의 시대와 그 이후에도 가장 권위 있는 주희 관련 전기 자료라고 평가했으며, 일본 기문학파(崎門學派)의 강의록인 《주자행장강의(朱子行狀講義)》에서는 “이퇴계는 누구에게나 잘 알려져 있는 주자의 학맥을 완전히 터득한 사람이다. … 그는 조선 제일의 학자다. 퇴계가 주자학을 터득한 증거는 이 주해 작업에서 알 수 있다. … 퇴계의 주해는 다른 사람들이 미칠 수 없는 바로서, 퇴계가 아니면 이룰 수 없는 작업이다”라고 평했다.
성리학자들의 교본
《주자 행장》은 한국, 중국, 일본에서 초학자들의 교재로 활용되기도 했는데, 주희의 인품과 기본 행적을 이해하는 훌륭한 자료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중국에서는 《주자 행장》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나 주석 작업이 주목되는 바가 없는 반면, 한국과 일본에서는 《주자 행장》과 이황이 편집한 《주자행장집주》를 중요하게 다루었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개인적 독서나 집단적 강의 모임에서 자주 《주자 행장》을 강독했다. 특히 일본에서는 《주자행장집주》를 강조했는데, 아사미 게이사이(淺見絅齋)는 이 책을 최소 네 번은 강의했고, 그의 제자인 와카바야시 교사이(若林强齋)는 학당의 교과목에 포함시키기까지 했다.
우리나라에서 《주자 행장》의 번역은 1975년에 ‘강호석’에 의해 처음 이루어졌다[강호석 옮김, 《주자행장》, 을유문화사(을유문고 189)]. 이 책은 오역도 상당수 발견되고, 원문의 경우 고판본 자료를 영인해서 그대로 첨부했기 때문에 교감(校勘) 작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옮긴이 장윤수 교수는 이러한 점을 보완했으며, 특히 이황의 《주자행장집주》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반영했고, 주희의 전기와 연보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물을 참고해 주해를 추가했다. 그리고 《주자 행장》에 수록된 각종 봉사(封事)류의 글은 원문을 발췌한 것이어서 문장의 의미가 명료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경우에는 전체 원문을 참고해 보완 글귀를 첨가함으로써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했다. 또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옮긴이의 자의에 따라 원문 전체를 내용별로 분류하고 소제목을 붙였다. 본문 뒤에는 현대 독자들에게 낯설 수 있는 송나라의 각종 관직명과 주희의 저작 목록, 연표, 주희 화상과 유묵 등도 부록으로 추가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