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악몽을 지워주면
끔찍했던 나의 악몽도 사라진다
때로는 벗어나기 힘든 고통의 늪에서 희망의 단초를 발견하기도 한다. 세 소년 우주, 도하 그리고 로운에게 있어 그것은 ‘악몽’이었다. 악몽이야말로 그들에게는 고통의 근원인 동시에 고통을 해결할 열쇠가 된다. 그 열쇠를 자세히 풀어쓰면 다음과 같다.
“천 명의 악몽을 깨끗이 지워주면, 학생의 끔찍한 악몽이 영원히 사라질 거야.” (15쪽)
비록 전에는 서로를 알지 못했지만, 꿈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고 심지어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게 된 세 사람은 서로를 알아본다. 그렇게 같은 제안을 수락한 세 사람은 악몽을 대신 꾸어드린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다. 동아리명은 ‘나이트메어 플레이어’. 의뢰인이 모이지 않아 바꾼 이름이 그 값을 하게 되는 순간은 운명적인 첫 의뢰인의 꿈에서 일어난다.
“마지막 숫자를 세자마자 동시에 꿈속에 모습을 드러낸 세 사람은 낯선 환경에 긴장한 듯 두리번거렸다.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서 있는 폐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곳이 그 사건이 있던 장소인가’ 하고 생각하던 그때, 캄캄한 배경에 전광판이 환하게 떠올랐다. 모두 반사적으로 화면을 주시했다.
아이템이 없습니다.” (34쪽)
그저 꿈을 소재로 한 판타지 소설이라고 생각했다면 이야기 속 세 사람처럼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퀘스트, 나이트메어』는 악몽을 꾸게 하는 심리 상태를 암시하기 위해 ‘악몽 탈출 게임’이라는 알레고리를 활용한다. 매일 밤 마주하는 악몽은 일종의 퀘스트고, 누군가의 악몽을 해결하는 이는 플레이어다. 그리고 이를 관전하는 독자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그들의 플레이에 자기도 모르게 집중하게 된다. 유희적인 측면이 부각되어 몰입하기 쉽게 하면서도 이야기가 전달하려는 주제 의식은 명확하기에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당신은 무슨 이유로 악몽을 꾸고 있나요?”
판타지 속에 담긴 가슴 아픈 질문
악몽을 ‘탈출해야 하는 공간’으로 만든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악몽을 꾸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매일 똑같은 공간에 갇혀 벗어날 수 없다는 표현으로 가장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것.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악몽이 ‘트라우마’와 맞닿아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벌써 삼 년이나 지난 일인데, 겨우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놈들을 다시 보니까 그날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더라고.”
대용은 말끝을 흐리며 애먼 손톱만 만지작거렸다. (95쪽)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러 의뢰인의 악몽을 들여다보면 실제 우리의 주위에서 숱하게 벌어지는 사건들이 많다. 교내 따돌림, 폭력, 가정에서의 학대 등 우리가 관심 갖지 않을 뿐 매일같이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조명한다. 피해자는 그 기억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어렵다. 오히려 자신을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끌고 갈 뿐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상처를 숨기는 데에 급급할지도 모른다. 전문가도 아닌 세 소년에게 자신의 악몽을 대신 꿔달라 말하는 의뢰인들처럼 말이다.
『퀘스트, 나이트메어』는 세 명의 플레이어를 통해 여전히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자신은 어떤 이유로 악몽을 꾸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라 말한다. 무의식에 감춰놓았던 어둠을 한 번쯤 당당히 마주하고, 스스로 괜찮은지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밝아진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어디선가 고통스러운 시기를 겪고 있는 독자에게 이 책이 한 줌의 희망이 되어 악몽에서 탈출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