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내게 신화는 그리움이다. 꿈이랄까, 염원이랄까 그런 간절한 떨림을 동반한다. 신화적 상상력에 근거하여 시집을 출간하고자 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1990년대 후반쯤일까, 아마도 첫 시집(1995)을 출간하고 난 뒤 그 몇 년 사이의 일이 될 것 같다. 어느 늦은 오후 문우들과 종로를 걷다가 문득, 네 번째 시집은 ‘김수로왕 신화’를 소재로 써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는 ‘문득’이라고 해야 할 만큼 순간적인 스침의 형식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에 내 안에 자리하고 있던 열망의 한 축이 아니었을까 싶다. 신화적 상상력의 근저는 삶과 존재를 탐구하는 일련의 과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수로왕의 후예라는 뿌리의식이 한몫을 했으리라. 내게 뿌리의식은 핏줄의 범주를 넘어서서, 어릴 때 보았던 마을사람들의 모습과 그 이야기적 경험공간까지 두루 아우른다.
그렇다면, 네 번째 시집이란 또 무엇인가. 이는 아마도 그 무렵, 내 부족한 시적 역량을 염두에 두고 두 번째, 세 번째 시집을 건너 조금 더 멀찍이 약속을 잡아두고자 하는 무의식적 발현이었을 것이다. 신화적 요소를 현대적 삶과의 연계성 속에서 형상화하는 작업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60편의 시를 제4부로 묶었다. 제1부와 제2부는 ‘김수로왕 신화’에 터를 두고 신화의 탄생, 가야국의 유적, 그를 둘러싼 이야기적 배경을 형상화했다. 제3부는 어렸을 때의 경험 즉, 금관가야의 한 지역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에 놓인다. 제4부는 신화가 사라진 이 시대의 풍경에 초점을 두었다. 따라서 부재와 상실을 살아가는 나, 너, 당신, 그대들이 시적주체가 된다. 제3부와 제4부를 큰 틀에서 신화적 상상력 속에 포섭하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이 늦었다. 처음 계획대로 했다면 이 시집은 이미 출간되었을 것이다. 결국, 네 번째 시집이라는 스스로의 약속은 지켜지고 있지만, 한참을 돌아온 셈이다. 신화는 이상한 떨림이고 그리움이다. ‘사람’이 사라져버린 삭막한 인공의 시대. 신화는 그 부재와 결핍을 채워주는 아득한 울림이면서 생명성이다. 긴 길을 걸어와 이제야 오랜 숙제를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