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뒤 항구도시 새안시,
칠십 노인과 열다섯 소녀와 외국인 노동자
우주여행에서 죽은 사람들 운이 그게 다인갑제. 나도 살믄서 산전수전 다 겪고 살아 논께, 그랑갑다 하제.
_「소녀 유령」에서
50년 뒤 한국은 1년에 한 번, 한 팀을 꾸려 행성여행 패키지를 운영하고 있다. 7년 전 행성여행 코스를 비행하던 우주선에 원인 모를 폭발이 일어나 승객들과 승무원 대다수가 죽는 참사가 일어났다. 우주선은 지구로 돌아오는 데 3년이 걸렸고 정박할 곳을 찾지 못해 1년을 헤매다 새안시(市) 항만에 놓였으나 다시 버려지듯 3년의 세월을 보내고서야 해체 작업이 진행된다. 녹슬 대로 녹슨 고철과 다름없는 우주선에서는 참사 원인의 단서를 찾을 수가 없었다. 진상 규명 집회는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나 여론은 그들에게 이제 보내주어야 한다고 잊으라고 말한다.
칠십의 라한은 한국인 관리자로 해체공인 외국인 노동자 열 명을 데리고 폐우주선 해체 작업을 하고 있다. 독거노인처럼 혼자 새안시에서 살고 있는 라한은 50년 전 고향 섬 앞바다에서 배가 침몰하여 많은 또래들의 참사를 목도했다. 부모와 함께 구조 작업을 하던 라한은 친구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시원을 처음 만났다. 이어지는 참사 진상 규명 집회에서 라한과 시원은 계속 이어졌고 부모마저 잃은 그에게 시원만이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지난 때 시원은 불면증약을 과다 복용하고 차를 운전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시원의 부모는 라한을 고소하고 세상은 라한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상처받은 라한은 고향으로 내려가지만 마을 소녀를 돕다 오해를 사고 다시 고향 섬마저 떠나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새안시로 오게 된다.
3년 전 라한의 옆집으로 열다섯 살 신율이네가 이사를 온다. 신율은 라한이 해체 작업을 하고 있는 우주선 참사로 언니를 잃었다. 우주공학 박사였던 예멘 출신의 신율 아버지는 행성여행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동자로 지원했다가 그 행성에서 사망하고 아버지를 잊지 못하는 신율의 언니는 아버지의 무덤이라도 찾겠다며 계약직 직원으로 지원해 우주선을 탔다. 그리고 4백5십 명의 사람들과 함께 돌아오지 못했다. 여전히 우주선 참사의 진상 규명 운동을 벌이고 있던 신율은 우연히 라한이 버린 노트를 주워 읽고 라한이 자신과 같은 아픔을 지닌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아픔도 이해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폐우주선에 꼭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라한을 따라다니던 신율은 우주선 해체공인 파키스탄인 옴을 만난다.
옴은 어린 시절부터 선박의 무덤이라는 파키스탄의 카라치에서 인부들과 생활하며 선박해체공으로 일을 하며 가정의 생계를 꾸렸다.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으나 인공심장 이식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수술비를 벌기 위해 인도인인 친척의 이름으로 한국에 온다. 함께 온 9명의 인도인들은 옴이 파키스탄인인 것을 눈치채고 그와 종교가 다른 것을 이유로 온갖 위협을 가한다. 숙소에서 쫓겨난 옴은 몰래 우주선에서 생활을 한다.
열린 참사의 공간에서 마음껏 그리워하고 마음껏 슬퍼하길
도시에서는 상담사도 정신과 의사도 학교 선생님도 신율이의 말은 다 변명이라고 했다. 신율이의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답을 정해 주려 했고, 신율이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나무랐다. 신율이 이제껏 받아 오던 편견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신율의 온몸을 찌르면서. 마음까지 깊이 찌르면서.
_「우주를 헤매는 소녀」에서
우주선에 숨어 사는 옴의 도움으로 신율은 폐우주선에 들어간다. 자식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을 이해하는 신율이에게 외롭던 옴은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된다. 옴은 신율이의 언니를 위한 제사를 함께 지내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신율이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언니가 죽은 참사의 공간 우주선, 그곳에서 신율이는 마음껏 그리워하고 슬퍼하고 위로받는다. 죽은 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그제야 살아 있음을 느낀다. 언니에게 일어난 참사는 단지 ‘1명’의 죽음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신율이 실종된다. 경찰은 첫 번째 용의자로 라한을 불러 조사를 하고 혐의를 찾지 못하자 다음엔 옴을 소환한다. 수사 과정에서 라한의 과거와 옴의 비밀이 세상에 드러나고 세상은 편견을 들이대며 그들을 단죄하려 든다. 신율만이 그들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한다. 신율은 돌아올 수 있을까?
참사의 기억을 안고 사회에서 고립되어 살고 있는 라한과 신율에게 숨을 불어넣어주고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 것은 아무런 편견 없이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외국인 노동자 옴이다. 작품 말미에 그리는 언니와 신율, 라한과 옴 그리고 옴의 가족이 고래를 닮은 우주선은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은 넋을 달래는 씻김굿처럼 저곳과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상처를 위로한다.
나는 남은 사람들이 살길 바랐다. 10년이 지나도 딸이 죽었던 시간을 노란방에서 반복하고 있는 사내도, 언니를 위해 46일을 굶은 아버지를 둔 소녀도.
눈치 보지 않고, 그때 그 상처로 인해 아팠다고 말할 수 있길.
그런 마음으로 그들을 고래 모양의 우주선에 태워 우주로, 은하수로, 보내주고 싶었다. _「작가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