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15번째 시집을 내놓는다. 어렸을 때부터 시와 더불어 살았으니 평생을 함께 한 셈이다. 그것은 내가 시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시가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양지바른 곳에서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느낀 포근함도, 교회의 빈자리에 앉아 조용히 머리를 숙였을 때 느낀 겸손과 거룩함도 시의 재료가 되었다.
자연에서 경이로움을 느낄 때마다 시는 춤을 추었으며, 모든 관계 속에서 아름다운 눈물을 볼 때마다 시는 그 감격을 시로 표현하게 만들었다.
시는 나에게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노래하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감히 친구라 부른다.
나는 학창시절 마로니에 향기가 그윽한 교정에서 지냈고, 정한모 시인의 강의를 들으며 시를 깊게 만났다. 내가 시집을 내었을 때 시인 박두진 교수님은 기꺼이 발문을 해주셨다. 시로 집을 짓고 시와 더불어 사는 나를 보며 기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젊은 내가 박 교수님 댁을 찾아갈 때마다 상을 마주하며 대화에 응해 주신 일, 교수님이 부러 우리 학교를 찾아와 풋내 나는 학생들의 시 발표를 듣고 평가해 주신 일 등은 지금도 새롭다. 이건청, 윤석산 시인의 배려로 시인협회의 여러 시인을 만나는 호사도 누렸다. 만남은 늘 새롭다.
그 무엇보다 시는 나를 주님께 이끌어주었다. 나는 시를 통해 주님을 만나기도 하고, 시를 통해 주님을 노래하기도 했다. 그가 없었다면 정말 마른 나무와 같았을 것이다. 시는 내 영혼의 깊은 곳까지 찾아와 나를 생명의 물가로 인도할 만큼 나의 갈급함을 알고 있었다. 나는 오늘도 그 강가에서 생명의 물을 마시며 기뻐하고 있다. 그래서 내 영혼의 동반자인 시를 버릴 수 없다.
이번 시집의 제목은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 그 하나만으로도"이다.
사람들은 서로 비교하고 평가하지만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귀하게 보신다.
그 모습 그대로 보시며, 그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빛나고 아름답게 보신다. 왜 그럴까? 우리를 지으신 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오늘도 우리 모두를 위해 잔치를 베풀고, 기뻐하신다. 별들은 눈을 맞추고 합창을 한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러니 늘 감사하며 거룩하게 살 일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더 길게 시를 쓸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주님만 아신다. 확실한 것은 시는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그와 함께 삶을 노래할 것이다. 삶이 귀한 만큼 우리는 시와 더불어 그 삶을 가치 있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시면 가능하다.
우리는 그것을 믿는다.
밖은 요란하고, 미래는 어둡게 느껴진다.
거짓이 판칠 때마다 희망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 내면이 부요하고, 영적으로 거듭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보이는 것이 모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 주변부터 밝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시는 그 일을 위해 우리와 함께 하고, 우리를 도울 것이다. 시는 바로 당신의 친구다.
그 사실을 잊지 말자.
시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임하기를 기도한다.
양창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