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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정신과 의사의 37년간의 기록 4

나는 항구다


  • ISBN-13
    978-89-98043-27-8 (04330)
  • 출판사 / 임프린트
    안목 / 안목
  • 정가
    18,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4-03-29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김철권
  • 번역
    -
  • 메인주제어
    정신건강 이슈 대처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정신건강 이슈 대처 #우울증 #정신건강 #정신의학 #정신과의사 #의료현장 #임상기록 #행동치료 #말치료 #정신과치료 #심리상담 #정신분석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28 * 188 mm, 300 Page

책소개

37년 동안 기록한 한 정신과 의사의 방대한 임상기록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저자는 어머니의 유언대로 의대를 갔고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37년 동안 진료실에서 상상의 현실이 아닌 현실 그 자체의 아픔과 고통을 마주하며 그는 기록하기 시작했다. 환자들과 나눈 대화, 진단, 치료과정에 이르기까지 총 4권, 한 권당 80여편의 이야기가 모여있는 37년간의 임상체험기록은 19세기 이후 객관적인 과학의 도래와 함께 사라져버린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임상기록집으로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다.

 “진료실에서 만난 수백 명의 환자에 대한 기록이 넘쳐 충돌하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침묵하려고 했다. 수많은 글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 또 다른 글을 보태는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문득 진료실에서 그들과 나누었던 말을, 그들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곧 의무감으로 바뀌었고 그래서 책으로 내게 되었다. 이 책들은 지난 37년 동안 진료실에서 날아다닌 말들을 채집해 모은 하나의 도감圖鑑이다.”   ___ 들어가는 말, pp13

 

우울증부터 중증 정신질환까지 고통받는 환자들과 나눈 생생한 대화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자식이 죽은 뒤로 속옷을 갈아입지 않은 여자의 손을 끌고 진료실에 들어온 남편은 냄새가 너무 괴로워 정신과를 찾았다고 말한다. 어떻게 치유될 수 없는 상실의 상처를 치료한단 말인가. 자식을 잃고 가슴에 박힌 가시를 빼달라는 환자에게 저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 저는 가슴에 박힌 가시를 빼는 의사가 아닙니다. 저는 단지 부인의 가슴에 가시가 박혀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의사입니다. 자식이 죽으면 어미는 그 가시가 박힌 채로 살아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억지로 뺀다고 빠지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가슴의 통증만 더 심해집니다. 너무 아파 견디기 어려울 때는 큰소리로 울부짖고 흐느끼십시오.” ___ 1권 〈죽은 자식의 옷을 입고 자는 여자〉, pp56

 

정신과 약을 직접 먹어보고 24시간 전화를 당부하는 의사

 

저자 김철권은 자신이 처방하는 정신과 약을 모두 먹어본다. 약의 부작용을 직접 체험해보고 환자의 자리에서 약을 처방하기 위해서다. 되도록 약보다 환자 자신의 의지로 병을 극복하도록 적극적인 행동지침을 밤새 고민한다.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핸드폰번호를 알려주고 위급할 때 24시간 전화를 당부하고 식사를 거부하는 환자에게는 직접 죽을 떠먹여준다. 죽기전에 단 한번이라도 혈육을 만나려는 환자를 위해 전국을 수소문해 직접 환자를 데리고 찾아간다. “오로지 환자의 눈물을 닦아 주는 일만이 정신과 의사의 존재의미"라는 저자는 공감과 동감을 바탕으로 기계화된 의료 현장의 현실에서 보기드물게 ‘인간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의사다.

추천의 말에서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정신의학의 치료자에게 가장 요구되는 자질은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인데 37년의 경험이 있다고 모두가 저자 김철권처럼 환자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이근후 박사는 강조한다.

“우리가 공부한 정신치료 교과서에서 ‘환자들이 치료되는 수준은 치료자의 인격 수준에 비례한다’라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환자를 대하는 치료자의 내공이 얼마나 쌓여야 환자에게 도움이 될까? 내 경험을 통해서 보면 수련의 초기 때는 교과서의 매뉴얼대로 따라 하느라 사람을 보지 못했다. 김 교수의 말대로 증상만 볼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아야 하는데…… 병이라는 것도 결국은 앓는 주체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을 먼저 이해하지 않고는 병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가 없다.”   ___ 〈추천의 말〉, 이근후 (정신과의사,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다양한 인간 심리와 인간사회를 탐구하기 위해

67개국 여행, 영화학, 유행가 타로카드까지 동원한

환자 맞춤 치료법의 개발

 

저자는 증상 뒤의 사람을 보고 이해하기 위해 평생을 연구해왔다. 인간의 정신과 연관된 학문인 철학, 심리학 방면의 권위자들을 찾아 스승으로 모셨고 다양한 상황 속에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심리를 파고들기 위해 시작한 영화 연구는 2016년 영화학 박사학위로 결실을 맺었다. 세계 각국의 풍속, 다양한 인간탐구를 위해 60여개국을 여행했으며 저자가 여행지에서 직접 촬영한 수만장의 사진 가운데 36장을 골라 표지와 본문에 실었다. 개별적인 환자들의 치료에 효과적인 맞춤형 치료법을 개발하기위해 말치료, 행동치료, 타로카드, 마술까지 배웠고 그 내용들은 전 권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의사의 고뇌, 의료 현장의 고충들에 대한 진솔한 고백

 

환자들의 사례만 담은 것이 아니다. 4권, 『나는 항구다』에서 저자는 환자들의 대한 애정의 크기만큼 환자들에게 점령당한 자신의 삶에 대한 고충 또한 진솔하게 토로한다. 환자들에 대한 생각으로 잠들지 못하는 괴로움에 하루빨리 바다가 되고 싶고 하루에 80여명을 진료해야하는 대학병원 정신과의 외래 진료 후엔 공원으로 달려가 나무를 향해 넋두리를 한다. 

치료 과정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환자들에 대한 죄책감, 정신질환 진단체계로 기계적인 처방에만 급급한 현대 정신의학계에 대한 회의들 그러나 이 모든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다시 태어나도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다는 저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들이 바로 정신과를 찾는 환자들이라고 단언하다. 그 누구보다 여리고 착한 마음을 가졌기에 그만큼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앓는다는 것이다. 이런 착한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유할 수 있는 정신과 의사야말로 가장 보람된 직업이니 좋아서 자다가도 웃는다는 것이다.

 

공통의 사연들, 각자의 아픔들

정해진 답이 아니라 길을 찾게 하는

전공의들과의 질의응답

 

비밀엄수가 요구되는 의료인으로서 저자는 이 책의 저술을 위해 환자 본인들에게 직접 책의 취지를 설명하고 허락을 구했으며 비슷한 주제는 재구성하여 책의 내용만으로는 어떤 환자를 특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환자들의 임상기록이지만, 알기 쉽게 이야기처럼 소개된 각 에피소드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공통의 사연들을 다룬다.

또한 의과 대학의 의료 실습 현장에서 이루어진 전공의들과의 질의응답을 고스란히 기록함으로써 평생에 걸쳐 터득한 그의 치료 원칙을 알기 쉽게 전수한다. 1권~4권에 걸쳐 골고루 소개된 이 교육 과정은 사실 정신의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전무한 일반인들도 이니셜 K로 대표되는 전공의가 되어 개별적인 환자의 증상에 따라 최선의 치료방식을 찾아가는 현장에 동참하게 되며 독자 스스로 자신의 증상을 바라보고 점검할 수 있는 자가치유의 길을 열어 놓았다.

 

우울증 100만명의 시대,

갈등과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치유해줄 자가치유백서

 

우울증 환자 100만명의 시대다. 이 4권의 책을 읽고 나면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한 숨은 환자들인 우리들에게 의사 김철권은 마치 모두의 정신과 주치의가 된 것 같다. 천편일률적인 분류 체계로 인간의 정신을 재단하는 이 기계화된 의료시대에, 의사 김철권은 유행가든, 마술이든 온갖 방법을 찾아내며 환자와 함께 울고 웃는다.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드리고 싶은 선물같은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재미로 읽히는 책은 아니다. 환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은 우리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자기 성장의 한 단계를 높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___ 〈추천의 말〉, 이근후(정신과의사,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목차

저자의 말 ◆ 15

추천의 글 ◆ 21

1 나는 항구다 ◆ 35

2 환자가 텍스트다 ◆ 38

3 환자는 의사의 스승이다 ◆ 40

4 진료는 마음수련이다 ◆ 41

5 정신과 의사는 위대한 영웅이다 ◆ 44

6 의사는 지게꾼이 아니라 지게 작대기다 ◆ 45

7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 46

8 새벽 진료 ◆ 48

9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정신과 ◆ 51

10 마음의 스펀지 ◆ 53

11 진실은 결코 요약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 ◆ 55

12 증상 사냥꾼과 진단 추적자 ◆ 57

13 현문우답 ◆ 62

14 정신과 의사의 수준 ◆ 64

15 〈정진사〉 수도승으로 살아가며 ◆ 66

16 나는 뗏목이 되고 싶다 ◆ 68

17 화가 나다가도 ◆ 70

차례

18 나는 죽으면 벌 받을 것이다 ◆ 72

19 빨리 바다가 되고 싶다 ◆ 74

20 DSM에 무릎 꿇지 마라 ◆ 76

21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에 대하여 ◆ 78

22 그러나 지금은 그런 용기가 없다 ◆ 82

23 소방관과 건설자 ◆ 85

24 포정이라는 백정의 소 잡는 이야기 ◆ 87

25 정신과 약을 먹어 보는 정신과 의사 ◆ 90

26 선생은 있다 ◆ 92

27 정신역동보다는 함께 슬퍼하는 것은 어떨까? ◆ 96

28 환자와 함께 부르는 잠언 ◆ 98

29 위대한 보호자 ◆ 99

30 좋은 정신과 의사가 되는 첫걸음 ◆ 104

31 가슴에 품은 단어가 당신의 삶을 결정한다 ◆ 106

32 인공지능 의사 ◆ 109

33 ‘무엇’을 묻는 질문과 ‘왜’를 묻는 질문 ◆ 112

34 문제 리스트 ◆ 115

35 반가운 환자 ◆ 117

36 산을 오르는 길은 다양하다 ◆ 119

37 개업의나 봉직의로 〈살아남기〉에 대하여 ◆ 123

38 내가 비극을 즐겨 읽는 이유 ◆ 126

39 감정이입과 동감 ◆ 129

40 슬픔은 나의 문제다 ◆ 131

41 오직 모를 뿐, 오직 행할 뿐 ◆ 134

42 환자를 많이 보던 한 선배의 조언 ◆ 137

43 나는 행복하지 않은 신경증 환자다 ◆ 139

44 이름이란 무엇인가? ◆ 141

45 그들을 만나면 나는 항상 위로받는다 ◆ 146

46 우울증과 열정 ◆ 148

47 나이 들어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 ◆ 150

48 명함을 대하는 태도 ◆ 152

49 내 마음의 눈이 두 개인 이유는 ◆ 154

50 왜 치료받아야 하죠? 라고 물을 때 ◆ 157

51 나이 환갑 넘어 정신과 진료에 눈을 뜨다 ◆ 160

52 절대로 과학으로만 정신 건강을 관리할 수 없다 ◆ 164

53 의학은 지성의 살해자다 ◆ 166

54 불확실성과 애매모호함을 견뎌 내는 힘 ◆ 168

55 말해진 것과 말해지지 않는 것 ◆ 170

56 말의 한계 ◆ 174

57 화장은 왜 하는가? ◆ 177

58 교수님, 제 이야기 듣고 있나요? ◆ 179

59 가정 폭력에 대한 개인적 생각 ◆ 184

60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따뜻한 시선 ◆ 187

61 다른 사람의 칭찬에 춤추지 말라 ◆ 189

62 나는 실패하는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다 ◆ 191

63 내가 환자를 만족시키면 환자도 나를 만족시킨다 ◆ 193

64 환자를 회복시키는 것은 치료자의 욕망이다 ◆ 194

65 정신과 진단명에 대하여 ◆ 196

66 〈적응장애〉라는 진단명에 대한 유감 ◆ 198

67 자해와 자살 시도에 대하여 ◆ 201

68 드러내는 아이와 숨기는 아이 ◆ 202

69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 ◆ 204

70 내가 생각하는 학교 ◆ 207

71 현대판 레옹이 거리를 활보한다 ◆ 210

72 어리석은 논문 ◆ 212

73 정신분석과 정신의학은 별개의 학문이다 ◆ 216

74 정신분석의 핵심은 일체유심조다 ◆ 219

75 초자아가 기능하지 않는 사회 ◆ 221

76 이중 구속 ◆ 225

77 잘 죽는 방법 ◆ 226

78 〈취생몽사주〉는 있다 ◆ 229

79 독수리를 거위로 만드는 부모들 ◆ 232

80 인내의 돌 ◆ 236

81 매일 밤 자기 전에 나의 별을 바라본다면 ◆ 239

82 추상적인 개념을 놓고 토론하면 안 된다 ◆ 241

83 모든 환자는 『어린 왕자』에 나오는 유일한 장미다 ◆ 243

84 어쩌다가 증상이 환자 이해를 가로막는 벽이

되어 버렸나! ◆ 245

85 정신과 의사와 말 ◆ 250

86 소의 되새김질을 배우자 ◆ 254

87 표적 증상 ◆ 256

88 환자가 유혹할 때 ◆ 258

89 그때 왜 그랬어요? ◆ 260

90 소소한 관심 ◆ 263

91 VIP 환자 ◆ 265

92 진단명은 환자를 돕기 위해서다 ◆ 267

93 부모의 죄책감을 이용하지 마라 ◆ 270

94 지식과 지혜 ◆ 272

95 손톱으로 이마를 파는 소녀 ◆ 275

96 희망은 삶을 살아가는 힘이다 ◆ 278

97 벤자민 버튼의 거꾸로 가는 시계 ◆ 280

98 〈인연〉과 〈연결〉 ◆ 282

99 정신과 집을 짓는 것에 대하여 ◆ 284

100 어떻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 287

101 한 해 진료를 마치며 ◆ 289

에필로그 ◆ 295

숯이 다이아몬드에게 묻다

저자 소개 ◆ 299

본문인용

지난 37년 동안 나의 삶은 항구에서 배를 수리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화려하고 멋진 배를 고치는 것에 관심이 많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배의 외양은 허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낡고 이끼 끼고 부식된 배들도 각자 자신의 항해 일지가 있으며 그것은 배의 크기나 화려함과는 무관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는 항구에 들어온 모든 배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들이고 그들이 나라는 마음마저 든다. ___ 〈나는 항구다〉,  pp36

 

내가 젊었을 때는 환자를 잘 진료하기 위해 공부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환자를 잘 치료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홀연히 깨달았다. 공부와 진료를 구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환자를 진료하는 것 자체가 공부다. 환자가 의사의 스승이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모두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때로는 대답하고 때로는 대답하지 못해 쩔쩔매었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우리는 스승이라고 부른다. 스승은 답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아니다. 정답이 없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스승은 질문을 통해 제자에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깨달았다. 아! 환자가 내 스승이구나. 정신과 환자들은 모두 정신과 의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때로는 말로, 때로는 증상으로. 그래서 환자는 의사의 스승이다. ___ 〈환자는 의사의 스승이다〉,  pp40

 

오늘은 지난 20여 년 동안 8번이나 입원한 조현병을 앓고 있는 42세 남자 환자와 지난 10년 동안 5번 입원한 조울 정신병을 앓고 있는 45세 여자 환자의 일생을 읽었다. 제일 처음 발병했을 때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그와 그녀의 삶을 읽으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밑줄을 긋고 어떤 부분에서는 아주 중요하다는 의미로 별표 5개를 그렸다. 아하! 이 환자는 이런 스트레스 요인이 재발을 촉발하는구나. 이 환자는 상태가 나빠지려고 하면 언제나 이런 징조를 보이는구나. 이 시기가 가장 좋았는데 그 이유는 뭐지? 이 환자에게는 이 약이 가장 효과가 있구나. 반대로 이 약은 견디지를 못하는구나. 이 환자가 느끼는 슬픔은 이거구나. 외롭겠구나. 이 여자는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하는구나. 두 환자의 대하소설을 읽고 그것을 A4 용지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본다. 그것을 가지고 담당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면 환자 진료에 도움이 되겠지. 두 권의 대하소설을 읽다 보니 어느덧 여명이 밝아 오고 있다. 오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___〈새벽 진료〉,  pp50

 

“그렇습니까? 그 심정이 이해됩니다.” 내가 환자를 보며 말했다.

“교수님은 정말로 저를 이해하세요? 제 상태가 어떤가요?”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40대 여자가 나를 쳐다보며 되묻는다.

“부인은 지금 상실로 인한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저는 병명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위로받고 싶어요.”

그녀는 윗옷을 열어 가슴을 보여 주었는데 얼마나 주먹으로 내리쳤는지 가슴 전체가 온통 멍들어 있었다. 순간 가벼운 충격이 머리를 때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나는 외래에서 환자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이전에는 증상만 보였다면 이제는 얼마나 괴로울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환자와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평상심이 자꾸 무너진다. 슬퍼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 도움이 된다면 안아 주고 싶다. ___ 〈마음의 스펀지〉,  pp53

 

이전에는 없던 버릇이 생겼다.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종의 강박 증상 같은 것이다. 하루 진료가 끝난 후 그날 진료를 본 환자들 중에서 고통의 정도가 가장 심한 환자의 얼굴이 계속 떠오른다. 그 버릇이 생긴 후로 생활하기가 매우 힘들다. 많이 우울하고 많이 괴롭다. 얼굴이 떠오르면 그 환자가 한 말도 다시 들리는 것 같다. 젊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의사, 저쪽은 환자, 나름대로 확실히 선을 긋고 살았다. 하루에 아무리 많은 수의 환자를 보아도 진료가 끝난 시간 이후에는 후유증이 없었다. 공감과 이해는 진료실에서만 했다. 진료와 내 삶을 구분할 것. 그게 내 의사 생활의 원칙이었다. 진료실 밖으로 나오면 언제나 홀가분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의사와 환자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내가 그들을 도울 능력이 있나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___ 〈빨리 바다가 되고 싶다〉,  pp74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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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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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철권
1984년에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부산대학교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와 의학박사를 받았다. 부산대학교 재학 중에 소설로 부대 문학상을 받았다. 30대 초에 미국 UCLA 정신과학 교실에서 2년 동안 행동치료와 정신재활을 공부하고 돌아와 국내에 정신재활을 소개했고 한국정신가족협회와 한국정신사회재활협회 창립을 주도했다. 40대에 10년 동안 부산광역정신보건센터장, 광역자살예방센터장, 해바라기센터소장, 정신보건사업지원단장을 맡아 지역사회정신의학을 실천했다. 50대 들어 소설가나 철학자가 되고 싶다는 젊은 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산대학교에서 영화 전공으로 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프로이트라캉 정신분석학회에서 10년 이상 정신분석을 공부하면서 정신분석가 자격증을 취득했다. 동시에 니체철학, 불교철학, 그리스신화와 비극, 사진미학, 타로, 마술 등을 공부했다. 정신의학 분야에서 주 저자로 80여 편의 논문을 쓰고 저서와 번역서 16권을 출판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출판한 의과대학 교과서 『신경정신의학』에서「정신분열병」(제2판)과 「지역사회정신의학」(제3판)을 집필했다.영화 저널에 영화 논문 30여 편을 게재했다. 1998년에 세계정신사회재활협회가 선정한 정신재활 분야에서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100명의 정신과 의사에 선정되었고, 세계 인명사전에 여러 차례 등재되었다.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3회, 부산시장 표창, 교육감 표창, 얀센 학술상을 포함한 정신의학 분야 학술상과 논문상을 7회 받았다. 현재 동아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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