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문장] 마리네 집 위층에 드디어 새로운 사람들이 이사를 오는 날입니다.
* 마리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여느 한국 아이들과 다를 게 없지요. 그런데 마리가 네팔 사람인 걸 알면 아이들은 갑자기 달라졌어요. 놀리거나 신기해하는 것도 싫었지만 더 친절해지는 것도 좋지만은 않았어요. 그럴 때마다 마리는 아이들과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생기는 걸 느끼곤 했어요. (19쪽)
* 아줌마는 요술 손이라도 가진 것처럼 옥상을 멋지게 바꾸었어요. 마리는 채소 싹보다 옥상 풍경이 더 궁금할 정도였어요. 탁자에 앉아서 숙제를 하거나 동화책을 읽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았어요. 삼겹살도 돗자리보다는 탁자에 앉아서 먹으면 더 맛있을 것 같았고요. 하지만 어림없는 일이겠지요. (34~35쪽)
* “어릴 때 키우기 힘들다고 나를 다른 집에 보냈던 거 잊었어?” 물을 주던 마리의 손이 멈칫했어요. 아줌마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니요. 엄마가 마리를 키우기 힘들다고 다른 집에 보낸다면 얼마나 무섭고 슬플까요. “나, 그때 여섯 살이었어. 다시 돌아와서 겨우 적응하고 있는데 이번엔 친엄마한테 가라고 했잖아.” 아줌마의 엄마 아빠가 헤어져 살았나 봐요. (41~42쪽)
* 마리는 아줌마가 준 막대를 고추 옆에 꽂고 끈으로 서로를 묶었어요. 이제 고추는 바람이 불어도 비가 와도 흔들리거나 쓰러지지 않을 거예요. 마리는 아기 고추가 된 듯 든든했어요. 문득 아줌마는 오이고추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추는 고추인데 안 매운맛 고추요. (81~82쪽)
* “영미 이모도 업어 주셨어요?” 마리가 반갑게 물었어요. “그래, 영미도 너처럼 산소 앞에서 울고 있었지. 삼십 년이 다 돼 가네. 휴,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는지…….” 할머니 목소리가 노을처럼 마리의 가슴을 물들였어요. 울고 있는 어린 영미와 팥쥐 할머니 등에 업힌 영미 모습이 겹쳐 떠올랐습니다. (136~137쪽)
* “십 년 아니라 삼십 년이 됐어도, 물에 떨어진 기름방울처럼 겉도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 할머니 말에 이번엔 이모의 표정이 멈칫했어요. 물에 떨어진 기름방울.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잖아요. 할머니는 언제 그런 기분이 드는 걸까요. (148쪽)
* 마리는 엉엉 울면서 말했어요. “뭐가 나를 위해서야? 내 마음도 있는데 왜 엄마 아빠 마음대로만 해? 큰 학교에 다녀도 나는 친구 없어. 현서 엄마가 생일 파티에 나는 데려오지 말라
고 했대. 애들은 내가 한국 사람 아니라고 싫어하고, 네팔 사람들은 나한테 한국 애 다 됐다고 뭐라고 하잖아. 나보고 어쩌라고. 그게 내 잘못이야? 자꾸 이사 다니는 거 정말 싫어. 오래오래 한집에서 살면서 친구도 사귀고 싶고, 친구들 부를 수 있게 내 방도 갖고 싶다고!” (165~1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