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둘은 없었다. 착하고 바르게 자라서 서로에게 선한 말만 하는 학생은. 외모나 실력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자고 어른스러운 선언을 하는 중학생은. 늘 정의로운 마
음만 품는 15세는. 그런 여름과 겨울은 절대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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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 아니면 아무것도 필요 없노라 주저 없이 외칠 시기에, 여름은 어른들과 함께 있었
다. 감독의 디렉팅을 찰떡같이 소화하는 법은 알았지만, 친구들이 떡볶이를 먹을 때 어떤
튀김을 추가해서 먹는지는 몰랐다. 친구들은 여름이 모르는 것들을 차근차근 가르쳐 주면
서도, 며칠 뒤면 다시 미숙한 상태로 돌아가는 여름을 버거워했다. 먼저 다가왔던 여자아
이들은 안부 카톡에 답이 늦게 오는 순서대로 한 명씩 멀어졌고 어른들은 혼자가 된 여름
을 위로했다.
“걔들이 널 질투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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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그게 문제야. 언제까지 엄마랑 언니 그늘 속에 있을래? 네 외모만으로 올라가는 데에
는 한계가 있어. 아무리 못해도 여름이만큼은 해야 돼. 여름이를 봐! 쟤는 실력으로 올라왔
잖아.”
겨울이 겨우 고개를 들어 대표와 눈을 맞추고는 허리를 숙여 연거푸 사과했다. 무능함에
속이 터지는 건 자기 자신인데 그 점 때문에 타인에게 사과까지 해야만 했다. 입안이 싹 마
르고 신물이 올라오는 이 감각이 치욕의 맛이라면, 평생 모르고 싶은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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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정은 품으면 구차한 마음. 어른들이 못된 여자아이라 손가락질하는 마음. 마음속의
톱니바퀴를 가장 거세게 돌리는 힘인데도 부정해야 하는 죄악. 학급 규칙을 1번부터 10번
까지 모조리 어긴 최악의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정작 이 마음이 왜 나쁜 것인지 말해 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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