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얼마 전 사보에서 화장실에 청소 아주머니들 이름과 응원하는 글까지 포스트잇에 적어 음료수 캔과 함께 놓아둔 직원이 있다는 기사를 보았네. 어떤 직원이 그런 일을 했을지 궁금했는데 그게 바로 자네였군, 그렇지? 어머니 이외의 다른 아주머니들까지 챙기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이름은 왜 적어두었나?”
“그분들 모두 제 어머니들이니까요. 그리고 모두 자기만의 이름을 갖고 계신 분들입니다. 그래서 성함을 불러드리면 좋아하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저희를 위해 궂은일 해주시는 분들이니 당연히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꼭 제 어머니가 아니어도 말입니다.” _30-31쪽
아버지는 손님이 아니라 아들의 동지였다. 그걸 깨닫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라도 그걸 알았으니.
[부모 자식 간에 대화를 잃는다는 건 과거와 화해할 기회를 놓친다는 것과 같다. 어디에서 막혔는지, 어쩌다 꺾이고 옹이가 맺혔는지 풀어내지 못하고 생인손을 안고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서로의 삶의 무늬를 읽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대화의 선물이다.] _45쪽
“기택아, 사는 기 별거 있나. 좋을 때도 있고 궂을 때도 있는 기라. 니 속사정을 어찌 촌에 사는 내가 알겠노. 하지만 잊지 않고 일케 아부지 찾아오는 니가 내는 고맙데이. 남들이 뭐라케 싸도 신경 쓰지 말그라. 남 사정 모르는 것들이 다 글케 입 나불대는 기다. 그리고 사실 아무도 니 신경 안 쓴다. 변명할 것도 없고 니한테만 신경 쓰그래이. 니 잘나갈 때처럼 다시 일어서면 되는 기라. 그때 가몬 말 안 해도 다 고개 숙일끼라.”
[물에 젖지 않았을 때는 젖을까 두렵지만 일단 젖고 나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사람도, 삶도, 사랑도 그렇다.] _95-96쪽
누구나 죽음은 두렵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고대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당당하게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 서 큰 소리로 “Memento mori(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를 외치게 했다고 한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였다. _103쪽
뇌 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뇌에서는 공감 뉴런이 진화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경쟁에서 이기거나 평소에 갖고 싶던 걸 손에 넣었을 때 느끼는 행복은 짜릿하지만 잠깐뿐이다. 이때의 행복은 오래 지속되지도 않고 비슷한 걸 다시 경험해도 이전의 행복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다른 이를 도와줬을 때 느끼는 행복은 그 강도가 강렬하지는 않지만 매우 오래 간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보다 오래 지속되는 행복을 선택하게 되고 그런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_111쪽
그는 무려 6년 동안 자신의 청소 등반을 묵묵히 수행했다. 그곳에 올라 수많은 찬사와 조명을 받은 이들 가운데 그처럼 청소 등반이라는 걸 한 사람이 또 있는지 모르겠다. 찬사는커녕 외면만 받았던 한왕용은 에베레스트의 8,000미터 고지까지 올라가서 쓰레기들을 치웠다. 눈과 얼음 속에 꽁꽁 덮여 있던, 다른 사람들이 버리고 간 텐트며 산소통 등 수많은 쓰레기들을 얼음을 깨고 끄집어내서 끌고 내려왔다. ‘최초’나 ‘최고’만 기억하고 요구하며 ‘소비’하는 세태 속에서 다들 고봉을 정복하고 오를 생각만 했지 그이처럼 산을 청소하는 일에 주목한 사람은 거의 없다. _158쪽
성경 속 오병이어의 본질은 단순히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로 수천 명이 먹고도 남았다는 데 있지 않다. 그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는 한 엄마와 아이의 한 끼 식사였을 터. 하지만 다른 사람과 더불어 나누기 위해 한 가족의 한 끼 식사를 기꺼이 내놓은 사랑이 바로 이 기적의 본질이다.
[측은지심, 공감, 연대. 그것이 바로 기적의 가능성이다. 어떤 이는 그저 따뜻한 한 끼에도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는 것만 기억한다면, 기적은 우리에게도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_185-186쪽
그는 끝까지 명예로운 사람이었다. 자신은 그 퍼포먼스에서 전혀 중요한 사람이 아니며 동상을 본 사람들이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할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게 노먼의 바람이었다. 피터 노먼은 끝까지 겸손했고 의연했으며 올바른 가치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다음 세대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싶어 했다. 동상의 빈자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2등의 자리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의 삶을 공감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용기이며 연대다.] _209쪽
사이먼 래틀,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이들이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닫고 스스로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할 수 있도록 애쓴 사람들이다. 이들은 예술이나 교양이 그들에게 자존감과 희망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을 줄 것이라는 믿음을 실천했다. (…) 가난한 이들도 음악을 누릴 수 있도록 사랑을 베풀어주는 사회. 그것이 바로 진정한 예술의 의미이자 가치이며 아름다움일 것이다. 그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누구나 함께 예술을 누리고 나눌 수 있는 일들이 많은 세상이라면 분명 희망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_220-2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