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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스트 타이드(Waste Tide)


  • ISBN-13
    979-11-90254-33-5 (04800)
  • 출판사 / 임프린트
    에디토리얼 / 에디토리얼
  • 정가
    18,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4-03-18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천추판(陈楸帆)
  • 번역
    이기원
  • 메인주제어
    소설 및 연관 상품
  • 추가주제어
    서사 테마: 환경 , 환경요인 , 어린이, 청소년 사회문제: 환경문제 , 환경문제의 사회적 영향 , 지구과학, 지리, 환경, 지역계획 , 환경 , 환경보전 , 공해 및 환경위협 , 환경지속
  • 키워드
    #환경재난 #전자폐기물 #의체 #프레카리아트 #다국적 자본 #경제암살자 #소설 및 연관 상품 #서사 테마: 환경 #환경요인 #지구과학, 지리, 환경, 지역계획 #환경 #환경보전 #공해 및 환경위협 #환경문제의 사회적 영향 #환경지속 #어린이, 청소년 사회문제: 환경문제
  • 도서유형
    종이책, 반양장/소프트커버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40 * 210 mm, 460 Page

책소개

“여기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환경 재앙이 그리는 지옥도

광둥성 동부의 항구 도시 산터우로부터 내륙으로 만입하는 곳에 ‘실리콘섬’이 있다. 폐기된 전자제품에서 재활용 가능한 부품을 뜯어내서 가공하는 작업장과 공장이 밀집해 있다. 세계 각지에서 실려 온 전자 폐기물과 폐플라스틱이 이 섬에서 해체, 처리, 재가공된다. 분류와 해체 작업은 오로지 사람, 이곳 토박이들이 ‘쓰레기인간’이라 부르는 외지 노동자들의 눈과 코, 손으로 이뤄진다. 현지인과 외지인 모두 이 섬에서 돈 한 푼 더 버는 데 혈안일 뿐 공통적으로 이 섬을 혐오한다. 

 

여자들은 시커먼 물에 맨손으로 빨래하고, 아이들은 플라스틱 잿더미 위에서 점프하며 놀거나 폴리에스터 필름이 둥둥 떠다니는 검푸른 연못에서 헤엄치며 장난친다. 불리한 자연조건을 극복하려 선조들의 지혜로 건설된 관개수로와 지형물들은 깨진 디스플레이와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하거나 회로기판 따위를 녹여내는 산성 용액 웅덩이로 변했다. 유독한 화학약품이 끓으며 발생하는 흰 안개와, 강가나 들판에서 플라스틱을 태우며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가 합쳐진 푸르스름한 회색빛 안개가 섬의 대기에 고루 섞여 모든 생물의 모공 속으로 스며든다.

 

 

“세계화 시대에 영원한 승자란 없습니다.”

세 씨족이 지배하는 공동체의 운명

실리콘섬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재활용 분야는 수천억 달러 규모의 유망 산업으로 성장했고 제조업의 명맥이 달렸다. 섬 정부는 수작업과 심각한 오염에서 벗어나 친환경 일자리 제공, 환경 재건, 주민 보건 개선, GDP 증가를 한꺼번에 해결할 계획서를 내민 미국 다국적 기업 테라그린 리사이클링의 제안을 검토하는 중이다. 이 사업을 독점해 배를 불려 온 실리콘섬의 삼대 가문(뤄, 린, 천)이 주요 협상 대상자이나 이들은 협상에 미온적이다.  테라그린은 다른 나라들에서 협상을 성사시킨 스콧 브랜들을 책임자로 파견한다. 

 

실리콘섬 경제의 8할을 장악한 뤄씨 집안의 우두머리 뤄진청은 이 섬의 분위기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집념과 승부욕의 화신으로 냉혹한 현실의 전장에서 패자가 되기까지 적지 않은 업보를 쌓았다. 이따금 자신의 업보에 몸서리치기도 하지만, 비열한 행동을 포기하는 대신 독실한 불교 신자로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제물을 기부하는 것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그는 깡패 무리를 부리며 뤄씨 씨족의 영토 내 소유물을 지키고 질서를 감시한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점을 치기도 하고 집안 소속 무당을 두고 굿을 벌이기도 한다. 도덕이나 인의를 저버리는 부끄러움보다 다음 생에 지게 될 업보가 훨씬 두려워한다. 

 

테라그린과 실리콘섬의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스콧은 이곳에 온 다른 목적을 위해 은밀히 움직인다. 그리고 이런 그의 다른 신분을 알고 그를 추적하는 조직이 있다. 스콧은 언덕처럼 쌓인 의체 더미에서 SBT-VBPII32503439라는 부호가 새겨진 인공 기관을 찾아내 이 폐기물의 취급자를 조사해 달라고 섬 정부의 린 주임에게 부탁한다. 그런데 이 의체는 스콧이 발견하기 전 사용된 적이 있다. 천씨 집안 작업장에 고용된 리원(원 형)이 기이하게 생긴 이 의체를 쓰레기인간 ‘미미’와 뤄진청의 어린 막내아들의 머리에 씌워 본 것이다. 의체가 두개골에 장착되는 순간 바늘이 튀어나와 두 사람의 머리를 찌른다. 그뒤 뤄진청의 아들은 혼수상태에 빠지고 미미는 자꾸만 이상한 꿈을 꾼다.   

 

 

“미미-메카가 똑바로 섰다.”

인간과 기계의 승화와 추락

미미는 1년 전쯤 외딴 산골 마을을 떠나 실리콘섬으로 와서 뤄씨 집안 작업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음력 7월 15일 중원절 거리 축제를 구경하러 나갔다가 뤄씨네 깡패들에게 폭행당하는 미미를 천씨 집안 사람 카이종이 구해준다. 천카이종은 테라그린의 직원으로 어릴 때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했고, 스콧 브랜들의 통역을 맡아 출장에 동행했다. 그러나 카이종의 이 행동은 세 집안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어긴 것이며 미미를 도둑질한 것이 된다. 미미는 천씨 집안 작업장에서 지내면서 카이종과 가까워지지만, 카이종을 만나러 나간 날 그녀를 노리고 있던 뤄진청의 충직한 개 ‘칼잡이’에 붙잡혀 끌려가고 만다.

 

뤄진청은 아들의 병을 무속으로 고치려 하고 그 의식에 바칠 제물로 미미가 필요하다. 급진적 환경운동단체 ‘콴둥’의 조직원 호치우숙이는 SBT-VBPII32503439에 관한 정보를 입수한 즉시 스콧과 접촉을 시도하고, 스콧은 철저히 은폐된 일급 기밀 ‘웨이스트 타이드 프로젝트’의 비밀을 알게 된다. 자신의 과거를 숨긴 채 실리콘섬에 들어온 리원이 자신의 여동생 같다던 미미를 아끼고 보호해주기만 한 것일까.

 

납치된 미미는 칼잡이의 끔찍한 고문으로 반죽음에 이른다. 칼잡이와 졸개들이 미미의 훼손된 육체를 관조 해변으로 가져간다. 관조 해변은 연고 없는 자들의 공동묘지다. 이 해변에는 록히드 마틴의 전투용 외골격 로봇 메카가 버려져 있다. 미미의 육신에서 분리된 그의 영혼이 공중에서 해변을 내려다보며 자신이 당한 끔찍한 고문을 떠올리곤 격렬한 분노에 휩싸인다. 그녀의 의식이 꿈틀거리며 관조 해변에 흩어져 있던 정보전달물질의 냄새를 맡고 방화벽을 해제하고 프로그래밍 코드를 변경한다. 미미의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리던 칼잡이와 졸개들 눈앞에서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진다.   

 

 

실리콘섬, 세계가 딛고 선 발전과 번영의 시궁창

한국어판 『웨이스트 타이드』는 작가의 요청에 따라 켄 리우(『종이동물원』)가 번역한 영어판 『Waste Tide』(2019)를 번역했다. 중국어 원작 『황조(荒潮)』는 2013년에 출간되어, 미국 네뷸러상의 위상을 가진 중국 SF문학상 ‘성운상(星云奖)’ 장편부문 금상, 양성신문사(羊城晚报社: 1957년 창간된 석간 신문사)가 제정한 제1회 ‘화지문학상(花地文学榜)’ 장르문학부문 금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 번 큰 주목을 받았다. 천추판은 이미 2011년에 단편으로 중국 최고 SF문학상 ‘은하상(银河奖)’ 우수상을, 2012년에는 장편으로 성운상 최우수 도서상을 받은 바 있으며, 『황조』의 수상은 작가 개인과 SF 소재와 주제면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천추판은 『웨이스트 타이드』를 발표한 후 정말 많은 매체의 조명을 받았다. 그중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고향을 모델로 한 작품을 선택한 것은 중국의 현실에 대한 나의 생각과 관련이 있고, 변화하는 중국의 아픔을 써 내려간 것은 그곳이 점점 나아지는 것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황조』의 배경은 '실리콘섬(硅嶼)’이다. 중국어로는 ‘구이위’라고 읽는다. 작가의 고향인 광둥성 ‘구이위(貴嶼)’와 발음이 같다.(실리콘, 규소를 뜻하는 ‘硅(규)’와 ‘貴(귀)’는 성조는 다르고 발음이 같다.) 작가는 자신의 고향 ‘구이위’의 현실이 SF에 등장하고도 남을 만한 디스토피아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고 말한다. 중국어판 위키피디아에 등재된 ‘구위(贵屿镇: 한자 독음으로는 ‘귀서진’) 항목에는 일반 현황에 관한 짤막한 소개 다음에 바로 “중국 8대 전자 폐기물 유통 센터 중 한 곳”이었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마지막 단락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준다. “구이위의 환경 오염은 Basel Action Network의 다큐멘터리 영화에 소개되어 그린피스, 유엔환경계획(UNEP), 바젤협약 및 기타 국제기구의 관심을 끌었다. 2013년판 기네스북에는 이 지역의 환경 문제가 기록되어 있으며, 세계 최대의 전자 폐기물 처리장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작가는 소설에서 단테의 『신곡』 ‘지옥편’ 중 지옥문에 새겨진 글귀를 인용해 ‘실리콘섬’을 묘사한다. “나를 통해 고통의 도시로 들어가고/ 나를 거쳐 영원한 고통으로 들어가며/ 나를 거쳐 길 잃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노라/ 여기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현실의 고향에서 작가가 목격한 환경 오염, 열악하고 비참한 노동 실태는 소설 속에 핍진하게 묘사되는데, ‘실리콘섬’이라는 가상의 현실에 그보다 더 어울리는 장면을 상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에서는 광둥성 지역의 역사, 지리, 풍습, 민간 전승 같은 전통문화 요소가 사이버펑크 장르와 결합하여 독특하고 기이한 색채를 더한다. 실리콘섬 토박이는 차오저우어(潮州話)라는,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지역 방언을 사용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차오저우어는 “여덟 개의 성조와 복잡한 변음 규칙을 가진 고대 방언”이라고 한다. 실리콘섬 풍습과 관련된 단어와 일부 인명, 관용적 표현 등이 차오저우어로 표현된다. 한국어판을 번역한 이기원은, 차오저우 지역 출신 화교 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홍콩 영화를 즐겨 본 한국인이라면 차오저우어가 광둥어와 비슷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홍콩과 구이위는 지리적으로 가까우며 차오저우 선조들이 홍콩 등지로 이주해 정착한 역사가 있어 두 지역은 문화적 친연 관계에 있다.

 

실리콘섬 사람들은 어느 문화권에나 존재하는 애니미즘(정령신앙)을 변함 없이 믿고 있으며, 불교와 도교의 신에게 치성을 드리고 점을 친다. 점을 치는 관습도 이 지역만의 풍속은 아닌데 실리콘섬에서는 ‘조점(潮占)’이라 불리는 매우 기이하고 잔인한 일면을 가진 점을 친다. 조점은 바다의 조수가 밀려와 해변에 남긴 흔적을 보고 치는 점이다. 바닷가 마을의 지리적 조건에 맞게 정식화된 의식이라 추정할 수 있겠다. 소설 속에서 들려주는 조점의 기원 설화는 세월의 조수에 씻겨 현재의 후손들에게는 잊힌 폭력성을 들추어낸다. 사실상 실리콘섬의 오래된 것들은 토박이들의 전유물이며 이들의 기득권과 사회적 우위를 지키는 명분으로 활용되며, 자신의 처지를 숙명이자 운명처럼 여기는 쓰레기인간들은 인습이 퍼뜨리는 이데올로기의 힘에 순응한다.

 

이처럼 『웨이스트 타이드』는 광둥성 특정 지역의 문화적 특수성을 강하게 드러냄에도 불구하고 영어권을 비롯해 10개국에 판권을 수출하여 각 언어권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아시아 최초 휴고상 수상자인 류츠신의 추천사와 켄 리우의 번역이 보증수표가 되었으리라 짐작하지만, 작품의 주제가 언어와 문화를 초월해 공감할 수 있는 시의성(환경 재난)을 지녔으며 작품성이 탁월하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중국 정부는 유엔이 구이위 마을을 ‘환경 재난(Environmental Calamity)’ 지역으로 선포하는 등 세계가 재앙의 심각성을 주시하자 사태의 심각성을 시인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한 끝에 마침내 2018년 1월 1일을 기해 폐기물 수입을 금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후 한국으로 수입되는 폐플라스틱과 전자폐기물의 유입량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실리콘섬의 비극은 무대를 옮겨 진행 중이다.

목차

한국 독자에게 드리는 글_천추판
언어와 인명에 관한 옮긴이 노트_켄 리우

프롤로그
1부 침묵의 소용돌이
2부 무지갯빛 파도
3부 분노의 폭풍
에필로그

옮긴이의 말

본문인용

“너무 어려워요.” 린 주임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공해 주신 입찰 관련 문서와 제안서를 모두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제게 발언권이 없지만, 테라그린 리사이클링이 녹색 재활용 사업 분야에서 선두에 있다는 점과 제안하신 환경 리모델링 계획이 굉장히 매력적인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섬 전역에 있는 수천 개의 작업장이 제거될 테고 수입된 폐기물의 분류, 해체, 가공이 당신 측에서 이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아시겠지요.” _p.35

 

숙부의 불안한 얼굴을 본 카이종은 일이 끝나려면 한참 멀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앞서 대화에서 이야기했던 ‘안전감’의 이면에 있는 복잡성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각 가문은 각자의 영토 내에서 규칙을 만드는 작은 왕국 같았다. 뤄씨 일족에게 쓰레기인간은 사람이기보다 양 한 마리, 농기구 하나, 씨앗 한 봉지에 더 가까웠다. 만약 뤄씨 가문에 속한 쓰레기인간이 천씨 가문의 개입으로 천씨 영토에 정착한다면 뤄씨 가문은 그것을 모욕과 배신의 행위로 받아들일 것이다. 또한 미미의 배신에 책임이 있는 카이종은 이 모든 일을 도발한 도둑처럼 여겨질 것이다. _p.73

 

남자는 그녀에게 그럴싸한 거짓말을 했다. 넌 실리콘섬의 핵심 산업인 플라스틱 재활용 업무를 맡게 될 거야. 뤄 사장은 큰 작업장을 가지고 있고 직원들을 최고로 대우해 주지.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거야! 그후로 미미는 남자를 다시 보지 못했다. 미미는 그가 내륙의 다른 마을에 나타나서 다른 어머니에게 같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남쪽으로 가, 남쪽으로 가야 해! _p.89

 

미미의 머릿속에 카이종의 얼굴이 스쳤다. 혼란 속에서 그녀는 축제 날에 그랬듯 지금 당장 그가 나타나 자신을 구해 주기를 바랐다. 미미는 고개를 들었다. 강한 역광 속에 남자의 얼굴은 흐릿했지만 얼굴 윤곽이 변하는 모습으로 보아 그는 웃고 있었다. 그녀는 옥 두 조각이 서로 부딪히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를 들었고, 남자의 어깨에서 붉은 불꽃이 타오르는 것을 보았다.

미미는 이번엔 행운의 여신이 자기 편이 아님을 깨달았다. _p.143~4

 

그들은 제물을 특수한 밧줄로 묶었고, 수영해서 탈출할 수 없도록 하면서도 익사의 과정을 연장하기 위해 충분히 몸부림칠 만한 정도의 공간은 남겨 두었다. 바다에서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은 후 죽은 그들의 몸은 끔찍하게 뒤틀렸고, 신령과의 대화에서 중상을 입은 것처럼 놀란 표정에 눈빛은 공허했으며 영혼은 흠뻑 젖어 있었다. _p.158

 

미미-메카는 두 팔로 시신을 무덤에서 들어 올린 후 아주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았다. 비닐을 걷어내니 조개처럼 창백하고 약간 초록빛이 나는 살갗이 빗물에 퉁퉁 불어 있었다. 미미는 낯익으면서도 낯선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괴한 느낌이었고 평소 거울을 볼 때와는 달랐다. 거울을 볼 때는 무의식적으로 얼굴 근육을 조정해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려 애쓰지만, 현재 그녀가 보는 것은 생명의 흔적 없이 완전히 늘어진 얼굴이었다. _p.191

 

“콴둥은 결과 지향적인 이상주의자에게 가장 적합합니다.” 호치우숙이의 대답은 자동 전화 응답기처럼 정확했다.

“알겠습니다. 당신들이 그토록 신경 쓰는 게 뭔지 말해 보시죠.”

화면 속 숙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웨이스트 타이드 프로젝트에 관해 들어 보셨나요?” _p.226

 

회견자: 이제 그 후유증에서 벗어났습니까?

남자: (침묵, 거친 호흡) 아직도 가끔 악몽을 꿉니다. 의사는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라는데… 제 생각에는 그게 아니에요.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읽어 본 적 있어요? 크툴루였던가? 제 꿈이 그런 식이에요. (호흡이 점점 가빠지고 목소리가 커지며) 어둡고, 혼란스럽고, 더럽고… 무언가가 뇌 안에서 나를 찢어버릴 것 같아요. 육체적인 고통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잠에서 깨어나 창밖에 별이 총총 끝없이 펼쳐진 밤하늘을 봐요. 그게 동공이에요. 그게 매 순간 계속 저를 보고 있어요.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알아요? 어떤 기분인지 씨발 아냐고요…. _p.247

 

그럼 또 우리가 해결해야겠네. 미미1은 일찌감치 예상했다는 듯 장난스런 말투였다. 이번에도 그녀는 통제 불능의 쓰레기인간들을 동원하려 했으나 미미0이 막아섰다.

안 돼…. 그녀가 말꼬리를 흐렸다.

시간이 없다는 거 알잖아. 미미1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한텐 다른 대안이 없어. _p.382

서평

“천추판의 『웨이스트 타이드』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겪을 수 있는 근미래 세계상을 보기 드문 강도로 그려낸다. 자본 침투로 파괴된 생태, 인간과 기계의 융합, 계층 갈등 등 현실에서 진행 중인 현상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세계를 구축한다. 이 세계 안에서 인간과 기계는 동시에 승화하고 타락하기 시작해 악과 희망이 공존하는 서사를 창조한다. 긴장감 넘치는 겹겹의 이야기, 현실감과 질감이 풍부한 묘사, 촘촘한 정보와 정확한 기술 묘사 등이 일체가 되어 허리케인처럼 소용돌이치며 상승해 미증유의 스릴과 먹먹함을 일으키고, SF 리얼리즘의 전율을 한껏 드러낸다. 정상급 근미래 SF 작품이라 단언한다!” _류츠신(『삼체』작가)

 

“뇌뿐만 아니라 심장과 영혼을 기울여 완성된 에코-테크노-스릴러. 천추판은 현재 세계와 다음 세대가 물려받을 위기에 처한 미래 모두에 대한 예리한 관찰자다.” _데이비드 미첼(『클라우드 아틀라스』작가)

저자소개

저자 : 천추판(陈楸帆)
1981년 광둥성 산터우에서 태어났다. 베이징 대학교 중문학과와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구글 차이나, 바이두 등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배경을 가지고 있어 문학, 예술,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는 SF작가, 각본가,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초단편 SF를 썼고, 공식적인 수상 기록은 열여섯 살 때부터 쌓아 오고 있다. 중국 SF 잡지 『과환세계』가 주최하는 캠퍼스 SF대상 제6회 공모전에 「미끼」를 응모하여 1위를 차지한 것이 시작이었다. 2000년 「O」로 베이징 대학의 '장자배 오리지널 SF 공모전'에서 1등상을 받은 후로 꾸준히 단편을 발표하며 수상해 오다, 2011년 「끝없는 이별」로 중국의 가장 권위 있는 SF문학상 '은하상' 우수상을 받는다. 2012년에는 『보마』로 제3회 '성운상' 최우수 도서상과 최우수 미술상, 「G는 여신을 상징한다」로 성운상 최우수 단편상, 「리장의 물고기」로 제2회 SF· 판타지소설번역상 최우수 단편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황조荒潮』는 2013년에 출간되어 그해 제4회 성운상 장편부문 금상, 2014년 제1회 '화지문학상' 장르문학부문 금상을 수상했고, 마철문화 주최 '이 소설이 가장 재미있다 장르문학상' 올해의 TOP 8으로 선정되었다. 2019년에는 초판에서 98곳을 수정하여 3부작의 1부로 개편한 개정증보판을 출간했으며, 최고의 상업적 가치를 지닌 저작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스타 작가이자 번역가인 켄 리우의 번역으로 출판된 영어판 『Waste Tide』(2019)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 등 10개국에 판권이 수출되었다. 영국 〈가디언〉 선정 2019년 베스트 SF&판타지 도서 리스트, 2020년 로커스상 'Best First Novel' 부문 최종 후보작에도 올랐다.

현대 중국 문단은 바링허우 세대 작가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데 중국 SF계도 비슷한 상황이다. 천추판은 세계중국인SF작가협회(CSFA) 현 회장이며, 세계SF작가협회(SFWA)와 Xprize재단 SF자문위원회(SFAC) 회원, 아시아 소사이어티의 아시아 21 넥스트 제너레이션과 예일대학교 맥밀런센터 베르그루언연구소 2023년 연구원, 미국 드폴대학교 인문학센터의 '인문공헌상' 수상 등의 국내외 활동을 펼치며 작가 세계를 확장하고 중국 SF를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번역 : 이기원
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호주 멜버른 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투자증권 해외투자영업부와 한국거래소 베이징 대표처에서 일했다. 현재 멜버른에 거주하며 중국어권 도서를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빙의』 『인생의 격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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