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튼을 누르면 3천만 원어치의 불행을 준다고?
증오를 품은 인간들의 절절한 복수 레이스!
“네 마음이 복수를 원하여 나를 불렀도다. 이 버튼의 타깃은 바로 네가 미워하는 사람이다. 그가 누구든지 3천만 원어치의 불행을 가져다주리라.”(12쪽)
후미진 한강 둔치에 수상쩍은 장발의 남자가 나타난다. 개량한복을 입고 힙스터 헤드셋을 착용한 그의 이름은 아라한. 그는 증오에 휩싸인 인간들에게 연꽃무늬 금동 버튼을 내밀며 매번 똑같이 약속한다. 버튼을 누르면 당신이 그토록 미워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3천만 원어치의 불행을 주겠다고. 미움을 품은 인간들은 의심스러워하면서도 무언가에 홀린 듯 버튼을 누른다. 앞으로 자신에게, 자신이 미워하는 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서.
미워하는 사람의 불행. 오늘 내내 바라던 일이었다. 그녀는 누군가를 치열히 미워하는 중이었다. 3천만 원어치의 불행이라면 분명 형편이 어려운 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을 테니까.(12쪽)
머지않아 버튼을 누른 이가 증오하는 대상은 정확히 3천만 원어치의 불행에 빠진다. 아라한의 요상한 약속이 기어코 실현된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증오심을 떨쳐내지 못한다. 오히려 염원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도취해 만용을 부리고 만다. 버튼의 진짜 성능은 그제야 발휘된다. 그런 그들에게 업보를 내리는 것. “운명은 선량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대신 복수해주지 않”(7쪽)으므로 증오심에 불타 버튼을 누른 이들은 그 선택에 상응하는 불행에 처한다. 불행과 함께 남은 건 지독히도 반복되는 볼레로의 리듬뿐이다.
통쾌한 ‘사이다’가 각광받는 복수 장려 시대
지금, 우리의 현실에 필요한 카타르시스
버튼은 인연의 연쇄를 좋아하여 미워하는 자와 미움받는 자를 모두 찾아간다. 아라한은 절규하는 인간을 뒤로하고 다음 타깃을 찾아 나선다. 복수 레이스는 2등 은휘에게서 1등 금희에게로, 가난한 금희에게서 부유한 주연에게로, 배신당한 주연에게서 배신한 원우에게로, 치부를 들킨 원우에게서 그것을 목격한 지민에게로 이어진다. 아라한이 이토록 잔혹하게 인간들을 복수의 늪에 빠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버튼이 내리는 불행은 왜 하필 3천만 원어치인 걸까? 이 오래된 수행의 시발점에는 연쇄되는 불행보다 처연한 사연이 있다. 아라한이 구태여 복수를 전파하며 우리를 이끄는 곳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을 수밖에 없는 마음, ‘미련’의 앞이다.
“나를 이리 만든 건 미련과 집착.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163쪽)
미련에 연연하는 자는 속절없이 미련한 선택을 하고 만다. 문제는 인간이라면 미련을 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라한에게 버튼을 건네받은 이들이 복수를 결심하는 것은 순리에 가깝다. 아라한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 인간이었고, 미련을 품었고, 그것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가 도돌이표를 향해 가는 음률처럼 거듭하여 버튼을 내미는 것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미련을 꼭꼭 숨기기 위한 과정인지도, 팽창하는 분노를 가두기 위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의 여정을 끝까지 따라간 독자만이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각자 품은 미련과 집착, 미움의 본모습을. 업보는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고 자신만이 치를 수 있다는 자명한 진리까지도.
“벌? 나는 그대에게 아무것도 준 게 없다네. 오늘의 아름다운 밤하늘 말고는!”(149쪽)
복수 장려 시대가 도래했다. 당한 것이 있다면 그보다 더 처절하게 복수해줘야만 ‘사이다’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사적 복수극이 넘쳐나고, 누구나 증오의 바다에서 복수의 유혹에 허우적댄다. 시대가 이러하니 아라한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러니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은 아라한을 만나게 되리라.”(7쪽) 언젠가 그를 만난다면, 그에게 연꽃무늬 버튼을 건네받는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복수의 배턴은 당신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