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계에는 묘한 특징이 있다. 인간의 뇌는 항상 문제 해결과 향후 예측을 시도하며 패턴을 만드는 기계지만,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은 정확한 예측이 아니라 예측 오류, 즉 예상하지 못했던 보상과 뜻밖의 사실이다. 훌륭한 예술작품은 전제를 설정한 뒤 미묘하게 우리의 기대를 깨뜨린다. 해답 공개를 최대한 늦추며 몰입하게 한다. 스티븐 손드하임(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유명한 세계적 뮤지컬 작곡가이자 기획자―옮긴이)은 자신의 미학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예술작품에는 뜻밖의 놀라움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놓을 수 없다.” (27쪽)
관객의 눈을 붙드는 예측 오류는 미스터리가 선사하는 신경 작용의 일부일 뿐이다. 이야기가 잘 전달된다면, 미스터리는 관객에게 놀라움보다 더 거대한,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경이
로움, 경외감, 경탄, 무엇이라 불러도 좋은)을 선사하게 될 것이다. (...) 시대와 취향을 초월해 사랑받는 작품에는 가장 매혹적인 미스터리가 숨겨져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그 미스터리들을 해체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푹 빠진 소설이나 드라마에 몰입할 때, 혹은 설명하기 어려운 시를 읽고 벅차오를 때 미스터리를 향한 희열과 갈망을 경험한 바 있다. 그런 경험을 설계하는 법, 나아가 그런 경험이 우리의 인생에 중요한 이유를 이론적으로 명쾌히 풀어내는 게 이 책의 목표다. (28쪽)
도일 데인 번바크의 이 같은 '불협화음 스타일'은 폭스바겐 광고에서 정점을 찍었다. 빡빡한 제약 아래 놓인 번바크의 크리에이티브 팀은 모든 원칙을 깨부수기로 했다. 그들은 강렬한 색상으로 번들거리는 자동차 사진 대신 아무것도 없는 배경과 (대담하게도) 흑백 모노톤을 선택했다. 하지만 가장 의미심장했던 돌파구는 텍스트였다. 폭스바겐에서는 3000명이 넘는 그들 제조사의 산업 안전 감독관 숫자를 강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전통적인 지면 광고였다면 공장 사진과 함께 몇 단락에 걸쳐 믿을 만한 차량임을 설명하는 글을 넣었겠지만 번바크의 팀은 보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광고를 만들었다. 모델도 없이, 비틀만 있는 사진과 한 단어짜리 헤드 카피를 나란히 배치한 것이다. 그 단어는 '레몬'이었다(영어로 레몬은 '고물차'를 지칭한다―옮긴이) (133쪽)
맥길대학교 연구진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소개된 논문에서 음악을 들을 때 소름 또는 전율을 느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피험자들에게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준 뒤 fMRI와 PET 스캔으로 그들의 뇌 움직임을 관찰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피험자들이 소름이 돋거나 전율을 느끼기 직전의 현상이었다. (...) 그렇다면 어떤 악절이 미상핵을 자극했을까? 연구진에 따르면 작곡가가 “예상을 깨거나 (예를 들면 뜻밖의 음을 끼워 넣거나 템포를 늦추는 식으로) 예측된 결론을 내리지 않고 뜸을 들이는” 구간을 맞닥뜨릴 때 예민하게 반응했다. 게다가 예상과 달리 소름을 유도하는 구간은 화음이 잘 맞는 코러스나 절정을 향해 점점 고조되는 부분이 아니라 그 이전의 난해한 부분이었다. (145쪽)
그린블랫에 따르면 셰익스피어는 “원작에서 소재를 취한 뒤 '완성도 높은' 작품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것 같은 부분까지 과감히 발라내 버렸다.” 『오셀로』에서는 이아고의 동기를 제거해 특별한 이유 없이 복수를 노리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고, 『리어왕』에서는 왕의 비합리적인 초반부 행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플롯의 중요 포인트를 삭제했다. 셰익스피어가 각색한 『리어왕』에서는 늙은 왕이 딸들의 사랑을 시험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그 결과 캐릭터들은 '깊은 심리적 욕구'에서 비롯됐다고밖에 볼 수 없는, 제멋대로에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셰익스피어는 불투명성의 매력을 발견한 후 관객의 심리에 관한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설명을 제거하고 보니 관객들은 빤한 인물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건 수수께끼, 알 수 없는 존재의 출연에서 느껴지는 전율이었다. (152쪽)
신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었다가 거두어간다.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분노하며 응징한다. 인간을 자식처럼 사랑하다가도 주저 없이 고통 속에 버려둔다. “신이 지닌 이 같은 까다로운 성격적 특성은 긴장을 유발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를 강력하고, 심지어 매력적이고 중독적인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이렇듯 예측을 불허하는 행동으로 인해 그는 까다롭고 숭배하기 어려운 신으로 느껴지지만, 이것이 바로 성서가 지닌 문학적 소구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것처럼 “이해할 수 있겠다 싶은 신은 신이 아니다.”
(154쪽)
『모리스』, 『하워즈 엔드』 등의 작품을 쓴 소설가 E. M. 포스터는 평면적인 캐릭터와 입체적인 캐릭터의 차이를 설명한 바 있다. “입체적인 캐릭터는 설득력 있는 놀라움을 선사한다. 놀라움을 주지 못하면 평면적인 캐릭터다. 설득력이 떨어지면 입체적인 척하는 평면적 캐릭터다. 입체적인 캐릭터는 삶의 예측불허한 측면을 닮았다. 책 속에서 구현되는 인생이다.” (162쪽)
펜즐러는 미국 범죄소설의 대부이자 하드보일드의 거장 엘모어 레너드와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어떤 식이었냐 하면 나한테 전화해서 '오토, 오토, 문제가 생겼어' 그러죠.” 펜즐러는 골초인 레너드의 쉰 목소리를 흉내내며 말했다. “그럼 나는 물었죠. '왜요, 더치? 무슨 문제가 있어요?'” 펜즐러는 다시 레너드의 흉내를 냈다. “'내 주인공이 어젯밤에 살해당했어.' 나는 당황해서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죠. '아니 글쎄 내 주인공이 술집엘 갔는데, 어디선가 느닷없이 멕시코 출신의 한 남자가 등장해서 그의 머리를 쏴버렸지 뭔가. 이제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 이제 겨우 130쪽인데 주인공이 죽어버리다니.' 나는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이렇게 말했죠. '더치, 그럼 그 장을 다시 쓰면 되지 않을까요?' 그럼 그는 나를 미친 사람 취급했어요. '무슨 소리야, 다시 쓰라니? 얘기했잖아, 그 친구는 이미 죽었다니까!'” (165쪽)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등대로』에는 오랫동안 한 풍경만을 그리는 추상화가 릴리 브리스코가 등장한다. 그는 계속 바다를 다시 그리고 나무를 옮기고 그림자 색을 바꾼다. 그야말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과정이다. 릴리는 캔버스라는 '어렵고 하얀 공간'에 대해 화를 내면 낼수록 점점 더 확신이 없어진다. 그러다 저 멀리 등대를 응시하던 와중에 릴리에게 돌파구가 찾아온다. (...) 릴리는 생각한다. “위대한 깨달음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어. 어쩌면 영영 떠오르지 않을지 몰라. 대신 일상의 소소한 기적, 불빛, 어둠 속에서 생각지도 않게 그어진 성냥이 있지. 여기 이것도 그렇고.” 창작을 시작할 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백지뿐이다. 아는 건 아무것도 없다. 결말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 (2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