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이 한국을 바라보는 관심사 중 하나는 ‘왜 한국만이 유일하게 세계은행에서 차관을 받던 나라에서 졸업하게 되었느냐?’였다. ‘아프리카나 중남미 등 많은 국가가 50년 전과 똑같거나 오히려 더 후퇴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던져졌다.
나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뼈만 남은 다랑어’ 이야기를 토론에 풀어놓았다. 노인은 밤새 사투를 벌이며 고래급 다랑어를 잡아 항구로 끌고 왔지만 그새 상어 떼가 달라붙어 살점은 죄다 뜯어가고 남은 것은 앙상한 뼈마디뿐이었다. 개도국의 실태를 이에 비유하면 답이 나온다. 세월이 흘러도 늘 매한가지로 개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들을 보자. 세계은행에서 차관을 주면 그 돈은 부패의 사슬을 타고 대통령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한 계단씩 내려갈 때마다 액수가 줄어든다. 그렇게 너나 할 것 없이 죄다 빼먹다 보니 종국엔 현장에 투입되고 축적되어야 할, 남은 것이 없다는 얘기다.
이런 비유를 들려주며, 한국과 같은 똑똑한 나라는 차관을 받으면, 상부에서 정치자금으로 일부 빠져나가긴 했겠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자금이 행정 계통에 온전히 전달되고 유능한 공무원들에 의해 목적대로 집행되었다고 말하곤 했다. 경제 개발 초기 단계에 있어서 강력하고 청렴한 정치 체제와 유능한 행정 체제의 구축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서로 깊이 공감했다.
-59~60쪽, 〈청렴의 부재, ‘뼈만 남은 다랑어’ 된다〉 중에서
케네디스쿨의 전형은 독특하다. 학업 성적이나 토플, GRE성적 등 객관적인 학습 능력도 보지만 더 높은 가중치를 두는 것은 대상자가 ‘장래 지도자감’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지이다. 이를 다양한 방법으로 확인한다. 사람을 가르쳐 자신들이 세상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전도사로 파견시키는 것이라고나 할까. 특히 졸업생을 하버드 동창으로 묶어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전략을 편다. 각 나라에서 중요 지도자로 자리 잡고 있는 하버드 졸업생들을 미국 정부의 우호 세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하버드 케네디스쿨은 곧 미국의 세계 인맥 통치의 발원지인 셈이다.
단적인 예로 1994년 1월 1일 공식 출범한 미국·캐나다·멕시코 3개국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협상 당시 모인 각국 대표가 하나같이 하버드 케네디스쿨 동문이었기에 매우 상호 호의적인 분위기에서 협상이 잘 이뤄졌다고 한다. 이는 내가 케네디스쿨을 졸업할 때 동문 대표로 졸업식 축사를 했던 멕시코 중앙은행 총재가 직접 언급한 내용이다. 나로서는 케네디스쿨과 같은 교육기관을 활용해 세계를 어떻게 경략해나가는지에 대해 배우는 아주 의미 있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이 세계를 다스리는 통치술을 배우면서 우리 나라도 경제적 위상에 걸맞게 이러한 보이지 않는 힘, 즉 소프트 파워를 길러야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70~71쪽, 〈숨겨진 미국의 전략, 글로벌 인맥 만들기〉 중에서
십중팔구는 내키지 않아야 할 추경을 곳간지기들이 저절로 마음이 내켜 신나게 편성했던 적이 있었다. 2021년 7월 2차 추경이 바로 그런 모범적인 추경이었다. 그 이유는 재정 당국 입장에서 생각하는 바람직한 편성요건들을 충족했기 때문이다.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었다.
미래 세대에 부담이 되는 빚을 내지 않고 일종의 보너스인 초과 세수분을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이유가 가장 컸다. 이를테면 빚잔치가 아닌 보너스 잔치였기에 뒤끝이 좋은 추경이 된 셈이다. 또 하나의 긍정적인 여건은 편성 명분이 좋았다는 것이다. 국민의 방역 협조로 이룩한 빠른 경기 회복의 과실인 초과 세수분을 국민과 가장 희생이 컸던 소상공인에게 환원해준다는 것이었다. 방역에 협조해준 일반 국민에게는 2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했고, 영업 제한으로 특별한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소상공인에게는 새 희망 자금을 지급하였다. 아울러 세계 최초로 법제화한 손실보상금을 지급하는 재원을 선제 반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 혜택을 현 세대와 미래 세대 간에 고르게 나누었다. 초과 세수분의 일부를 미래 세대가 상환 부담을 갖게 되는 국채 조기 상환에 쓰도록 했다.
나는 최대한 국채 상환 몫을 키우고자 기금 여유 재원 등 다른 가용 재원의 동원을 최대한 늘리고 불요불급한 사업 예산을 감축하는 데 예산 편성의 역점을 두었다.
-105~106쪽, 〈곳간지기들도 흡족했던 특별한 추경〉 중에서
‘한국판 뉴딜’ 전략은 어느 시점에서 확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니고 개념과 내용을 계속 수정하고 보완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이후 휴먼 뉴딜이 추가되어 3축 체제로 확장되었고, 뉴딜 2.0투자 규모도 2025년까지 국비 160조 원으로 확대되었다. 또 지방이 주체가 되어 자체 추진하는 지역 균형 뉴딜이 추가되면서 투자 규모도 62조 원이 늘어났다.
한마디로 ‘한국판 뉴딜 2.0’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앞서 내다보고 국민적 지혜를 모아 만든 국가 백년대계 프로젝트였다. 시대를 앞서나가는 정책과 투자 계획 수립에 참여한 나로서는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펼쳐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그 소망과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정권이 바뀐 후 전 정부의 프로젝트로 인식되면서 완전히 실종되어 버린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정책의 단절과 부정의 극명한 사례로 남게 됐다. 이 얼마나 큰 국가적 손실인가?
-159~160쪽, 〈‘위기 극복’, ‘새로운 도약’ 두 마리 토끼 잡기〉 중에서
정치를 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몇 날 며칠을 밤잠 설쳐가며 고민하고 또 심사숙고했지만, 결정한 후로도 한동안 머릿속은 휴식이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어떤 마스터플랜으로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컸지만, 사실 이 문제의 답을 얻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경제통’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이미 30년 넘게 공직생활을 해오는 동안 다양한 경험을 쌓았던 만큼 지역 경제·사회·문화 발전을 위한 남다른 해법을 빨리 찾아낼 수 있었다. 다만 냉정하게 또 더 진지하게 답을 구하고자 했던 것은 다름 아닌 ‘나는 정치인으로서의 기본 마인드를 어떻게 세우고 또 그것을 유지해갈 것인가?’였다.
정답은 ‘이타심’이었다. 말보다는 실천으로 보여줘야 하는 것이 이타심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입장에서 어떤 자세로 어떻게 해야만 국민이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는지 충분히 생각하고 그 구체적인 계획을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 민심을 대변하는 이가 바로 ‘정치인’이다. 그렇다면 나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국민의 입장에 서는 자리가 맞다. 첫째도 둘째도 국민이 어디가 가려운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그 마음을 읽고 해결사가 되어야 한다. 마땅히 해야 할 그 역할을 못 한다면 국민의 세금으로 받는 월급을 받아가는 일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나는 그게 진정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 203~204쪽, 〈이타심이 곧 정치다〉 중에서
그간 공직에 있었지만 나름 ‘경제통’으로 불릴 만큼 다양한 정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일을 해오면서 쌓은 겅험과 노하우가 적지 않다. 이제는 광주·전남 출신으로서 그 보따리를 지역사회 발전에 풀어놓아야 한다는 사명감과 함께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됐고 그래서 2023년 5월 10일 문을 연 곳이 바로 안도걸경제연구소다.
우리는 지금 4차 산업혁명, 에너지 전환 등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광주가 미래 글로벌 명품 도시로 도약하려면 어떻게 대응하고 미래를 준비해가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그 길로 유도하는 경제 전문 씽크탱크로 출범했다. 광주·전남 지역의 미래를 일궈내야 할 경제 발전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특히 광주형 미래 먹거리 산업을 발굴하고 육성 전략을 제시하는 것을 최우선 활동으로 삼고 있다.
무늬만 그럴듯한 보여주기 위한 이름뿐인 연구소라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이슈를 만들어 대학교수, 기업인, 전문가 등과 함께 토론하고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여 향후 실행으로 옮길 프로젝트를 구체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연구소 문을 연 후 10월까지 5개월 동안 30여 회에 걸친 크고 작은 정책 세미나를 주도했다. 그리고 정부의 경제, 재정, 부동산 정책 현안, 광주군공항 이전 등 지역 경제 현안에 대한 논평을 내고 정책 대안을 제시해왔다.
-235~236쪽, 〈지역 경제를 살리는 ‘안도걸경제연구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