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여러분. 여기 있는 이 《창대의 일기》는 정말 대단한 자료입니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노비가 기록한 일기니까요. 그런 일기를 남긴 창대라는 어른은 역사에 반드시 기록해야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노비 출신이면서도 후대를 위해 귀한 기록을 남긴 어른의 유물을 오늘날까지 안전하게 보존해 온 김씨 가문에게도 큰 박수를 보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김청규 씨 가문이야말로 진정 뛰어난 가문입니다. 노비로 태어났지만,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어 공부하고 좋은 글을 남긴 조상을 두었으니 말입니다.”
“짝짝짝!”
한 기자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이어졌고, 결국 온 집안이 박수 소리로 들썩였다.
“맞습니다. 천민으로 태어나 이 귀한 기록을 남긴 창대 어른과, 그 귀한 자료를 300년 가까이 온전히 보존해 온 김씨 가문에 감사드립니다.”
처음 박수를 치기 시작한 기자가 소리 높여 말했다.
-21~22쪽
오늘에야 비로소 청나라에 발을 들여놓았다. 아, 엄밀히 말하면 아직 청나라가 아니다. 우리 조선과 청나라 국경 사이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땅이 있다. 그러니 이곳은 그 어느 나라도 아닌 셈이다.
내가 모시는 분 이름은 박지원으로, 우리는 ‘연암 어른’이라고 부른다. 이분은 벼슬아치도 아닌데, 집안이 워낙 좋다. 말 그대로 양반 가문이다. 이번에 청나라에 가는 사신을 이끄는 분은 연암 어른의 팔촌 형님인 박명원 어른이다. 연암 어른은 그 덕에 따라가게 된 것이다. 청나라에 왜 가느냐고? 청나라 황제인 건륭제의 일흔 살 생신을 축하하러 가는 거다.
-32쪽
하나 더 놀랄 만한 것은 청나라 집들은 대부분 벽돌로 지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벽돌은 정말 귀하다. 연암 어른 따라서 갔던 궁궐이나, 양반네 큰 집에서 가끔 보았을 뿐이다. 그 대신 우리나라 집들은 황토와 돌로 짓는 게 일반적이다. 아, 양반네 집은 좋은 나무로 짓고. 그런데 청나라 집들은 대부분 벽돌집이다. 어디서 그 많은 벽돌을 만드는지 궁금했는데, 오늘 벽돌 만드는 곳을 지나쳐 왔다. 벽돌 만드는 곳은 생각보다 넓었다. 한쪽에는 벽돌 굽는 가마가 있고, 다른 쪽에는 벽돌을 빚기 위한 흙이 산처럼 쌓여 있다. 넓은 마당에서는 수십 명이 웃통을 벗어젖힌 채 진흙을 물로 이겨 벽돌 모양으로 빚어 가지런히 놓고 있었다. 그렇게 말린 후 가마에 굽는 듯하다.
-51쪽
“어르신, 이곳에는 수레가 참 많습니다요.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수레를 사용하지 않나요?”
장복이가 어른께 묻는다. 장복이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한 게 분명하다. 어린 녀석이 꽤나 똑똑한데.
“장복이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구나. 맞아, 청나라에는 수레가 많은데, 우리 조선에는 수레가 별로 없지. 그러다 보니 문물을 운반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지. 문물이 교류하지 않으면 지방마다 물건값도 들쑥날쑥하기 마련이다. 이곳에는 대추가 남아도는 데 비해 저곳에는 대추가 부족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수레를 사용하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단다. 그게 무어라고 생각하느냐?”
당연히 수레와 수레를 끌 말이나 소가 있어야지.
“수레도 있어야 하고, 말이나 소도 있어야지요.”
나는 의기양양해서 대답했다. 이제 칭찬만 들으면 된다.
“그거야 당연하지.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단다. 바로 수레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닦는 거야. 또 모든 수레의 너비가 똑같아야 한다.
그래야 어떤 수레건 길을 갈 수 있잖겠느냐. 그런데 우리 조선의 길은 좁은 곳도 있고 넓은 곳도 있으니 수레가 갈 수 있는 길도 있고, 갈 수 없는 길도 있다. 게다가 수레 너비가 각기 다르니, 어떤 수레는 갈 수 있다고 해도 또 다른 수레는 갈 수 없지. 그래서 수레를 사용하려면 수레 너비를 통일하고, 그런 수레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닦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조선의 길은 수레가 다니기에 아직 불편하지. 이것이 조선에서 수레를 많이 사용하지 못하는 까닭이란다.”
-83~84쪽
또 한곳을 지나는데, 이 마을에서는 우리 일행을 반가이 맞는다.
‘왜 이리 우리를 반가워하는 거지?’
의문을 품었는데,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마을은 곳곳에서 털모자를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오면서 많이 보았던 양털을 이용해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을에서 만드는 털모자 대부분을 조선 상인들이 사 간다고 한다.
아하, 우리나라에서는 양을 키우지 않는데도 털모자가 많은 것이 이 때문이구나. 조선 상인들이 이곳에서 털모자를 사다가 우리나라에서 파는 거다.
가게마다 털모자를 수북이 쌓아 놓고 판다. 지금은 여름이 끝나 갈 무렵인데 왜 이리 털모자가 많은 거지? 옆에 있던 마두 어른이 내 마음속을 열어본 듯이 말씀하신다.
“가을에 바람이 쌀쌀해지면 털모자를 써야 하니까 지금부터 조선 상인들이 이곳을 찾지. 이곳에서 털모자를 사서 조선으로 들어가면 벌써 가을이잖아. 앞으로 이곳을 찾는 조선 상인들이 훨씬 늘어날 거야. 겨울에 우리가 쓰는 털모자는 모조리 청나라 것이지. 그러니 얼마나 많은 은전이 청나라로 가는지 모른다고. 우리도 털모자를 만들 수 있다면 은도 빼앗기지 않고 좋을 텐데.”
-114~115쪽
연경으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강인지 바다인지 냇물인지 모를 물길이 있었다. 강이라면 물길 양편에 기슭도 있고 나무도 있고, 또 구부러지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물길은 양편에 아무것도 없이 똑바르다. 게다가 나무도 없어서 꼭 길처럼 쭉 뻗은 모양이었다.
“참 이상한 물길이에요. 물길이 이처럼 똑바로 뻗다니. 우리나라에는 이런 강이나 물길이 없는데.”
그러자 이번에도 잘난 체하는 어른이 말씀하신다.
“허허, 이 녀석. 보기는 제대로 보았구나. 으흠, 이건 강이 아니고 운하라는 것이다. 알겠느냐?”
“운하요?”
난생처음 들어보는 말에 나도 모르게 물었다.
“그래, 운하. 운하란 무엇인가 하니, 배가 다닐 수 있게 길을 낸 후 그곳으로 물을 통하게 한 것이다. 그러니까 물이 흐르는 길인 셈이지.”
“그럼, 사람이 만든 강이나 마찬가지인가요?”
“어, 너 참 똑똑하구나. 맞다, 사람이 만든 강이지.”
연암 어른이 똑똑하다고 하셨으니, 나는 연암 어른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 틀림없다. 나중에 고향에 가서 옥년이에게 이 말을 꼭 전해야지.
-137~138쪽
‘왜 이곳에서는 말로 짐을 나르지 않을까?’
맞다. 우리나라에서는 말을 이용해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짐을 실어 나르는 것이다. 소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힘센 말이 짐 나르기에 더 좋다. 말을 타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양반들에게나 해당한다. 양반들도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경마잡이가 고삐를 잡고 천천히 걸을 뿐이다. 그러니 청나라처럼 말 타고 들판을 달리는 일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반면에 청나라에서 말은 대부분 사람이 타는 데 사용한다. 짐은 수레를 이용해 나르는 경우가 많다. 수레는 나귀나 소가 끄는 경우가 많고 말이 끌기도 한다. 그러나 말에게 짐을 싣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또 이곳 말들은 우리나라 말보다 훨씬 크다. 그러니 달리기도 잘하고 힘도 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너무 큰 말은 양반들이 타기에 힘들다. 그래서 조랑말을 선호한다. 그러나 조랑말은 속도도 느리고 힘도 약하다. 만일 예전처럼 오랑캐들과 전쟁이라도 치른다면 조랑말 타고 싸워야 할 텐데 아무래도 이기기 힘들 듯하다. 갑자기 걱정이 밀려온다. 전쟁이 나면 오랑캐들이 조선의 예쁜 여자들을 끌고 간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럼 우리 옥년이도 끌려갈 것이다. 조선에 돌아가면 나라도 튼튼한 말을 키워서 적의 침략에 대비해야겠다.
-193~194쪽
우리나라에서는 말에게 여물을 먹인다. 여물은 말이나 소에게 먹이기 위해 말려서 썬 짚이나 마른 풀을 가리키는데, 대부분 이것을 익혀서 먹인다. 나는 삶은 콩이나 끓인 죽을 말에게 먹인다.
그런데 청나라에서는 말과 소들이 그냥 언덕의 풀을 뜯어 먹고산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왜 말들에게 익힌 음식을 먹이지 않나요?”
궁금한 나는 말을 끌고 가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말은 익힌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 익힌 음식을 먹고 온종일 달리면 열이 나서 병이 걸리기 쉽지. 또 한 끼만 굶어도 기운을 못 써. 또 말은 찬물을 먹여야 정강이도 튼튼해지고 발굽도 단단해지지. 말은 달리는 것이 일이니까 다리가 튼튼해야 하거든. 조선에서는 말에게 익힌 음식을 먹이나?”
“그렇습니다.”
“어허, 그럼 안 돼. 말에게는 찬 음식을 먹여야 해. 알겠어?”
-194~195쪽
드넓은 길이 펼쳐졌는데, 그 길이 정말 멋지다. 길 한가운데에는 말이 달릴 수 있도록 또 다른 길을 닦아 놓았다. 그러니까 길 가운데 또 다른 길이 있는 셈이다.
“이 잘 닦인 길은 뭐예요?”
내가 어른 경마잡이께 물어보았다.
“어, 이건 치도(馳道)라고 하는 거야. 예전에도 한 번 본 적이 있지. 치도는 황제가 말을 타고 달릴 때 사용하는 길인데, 황제가 가지 않을 때는 말이 달리기도 하지. 어때, 정말 멋지지 않냐?”
“정말 멋져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길을 놓으면 좋을 텐데……”
“그런 말 하지 마라. 이 길 놓으려면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 내가 예전에 길 닦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수많은 장정이 나서서 흙을 깎고 다듬어 반반하게 만들더라. 그뿐이 아니야. 그렇게 다듬은 길을 맷돌로 다지고 흙손으로 발라서 단단하고 반듯하게 만든다. 그러니 이처럼 똑바른 길이 길게 이어지는 거지. 얼마나 단단히 만들었는지,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꺼지지 않지.”
-200쪽
청나라를 다녀온 지 두 해가 지나 옥년이와 혼인을 한 후 순길이와 홍선이를 낳아 기르는 재미야 더할 나위 없이 컸다. 순길이가 자라면서 아버님이 그러했듯이, 나 역시 순길이가, 그 후에는 홍선이도 공부를 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나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아버님 시대에도 그랬고, 내 시대에도 그랬으며, 순길이나 홍선이 시대에도 하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공부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지금은 어려울지 모르지만 순길이가 어른이 될 무렵에는 누구나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때도 안 된다면 순길이 자식이 태어나 자랄 때는 될 것이다. 그때도 안 되면 순길이 손주가 자랄 때는 분명 될 것이다.
많은 공부를 하지는 못했지만, 틈틈이 공부한 끝에 다음과 같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나날이 발전할 것이고, 발전한다는 것은 누구나 공부해서 자기가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든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2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