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그동안 지은이가 써온 불교문학 관련 글 가운데 불교전기(傳記), 불교설화, 불교소설에 관한 논의를 중심으로 엮었다. 사실 불교문학에 대한 시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불교문학이란 교리, 전교를 위한 기능적 담론에 불과하다는 시각과 무관하지 않은 현상일 것이다. 실상대로라면 불교문학으로 말미암아 우리 문학사가 한결 풍성해지고 다채로운 색채를 지니게 되었다고 해야 마땅한데도 그에 의의를 부여하려는 이는 드물었다.
불교문학에 대한 지은이의 관심은 우연히 접한 승전(僧傳)에서 비롯되었다. 승전연구를 계기로 빈약한 불교문학 연구의 실태를 확인한 셈인데 미력이나마 이쪽 연구에 힘을 보태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진 것이다. 30여 년의 연구생활을 요약하자면 불교문학 영역에 속하는 작품, 작가의 발굴, 소개, 그리고 한국 불교문학의 독자성, 미학의 발견을 위한 여정이었다 해도 될 듯하다. 이 때문에 불교문학의 개념, 문학사, 양식 분류 등 원론적인 문제들은 물론이요 개별단위의 작품, 작가들에 대한 성숙한 안내자 역을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교시가는 제대로 살필 겨를이 없었고 불교서사에 있어서도 깊이 있는 안목을 갖추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책 간행에 나선 것은 한국 불교문학에 관심을 가진 이들, 특히 불교서사 전공자들에게 연구의 선행사례로 참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우선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수록된 글의 성격과 내용을 영역별로 간추려 제시해본다.
제1부 ‘한국 불교문학의 흐름과 갈래’는 문학사적 시각에서 불교문학의 한국적 전개양상과 더불어 장르적 갈래와 특성을 살펴보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앞서 ‘불교문학’에 대한 개념 풀이가 있어야 구색 갖춘 목차구성일 것이나 불교문학의 개념과 정의란 표제를 따로 내세우지 않았다. 추상적이고 지리멸렬한 진술로 이어질 거란 염려 때문인데, 대신에 불교문학의 사적 흐름, 갈래, 작가, 작품에 걸친 윤곽을 제시함으로써 한국 불교문학에 대한 전체상을 우선 마련하기로 했다. 이는 거칠지만 한국 불교문학사의 지형파악에 도움을 주면서 이어지는 2, 3, 4부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는 단초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제2부 ‘불교전기’는 자기 자신 혹은 타자에 의해 지어진 승려의 일대기들을 논하고 있다. 논고에서 다루는 대상은 삼국시기부터 조선후기까지 출현한 승전(僧傳), 그리고 불가의 자전(自傳)들인데 이들 승전, 자전이야말로 나름의 서사성과 미학을 갖춘 서사체임을 입증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지은이는 이미 『한국승전문학의 연구』를 통해 고려시대 승전의 서사적 성격을 밝힌 바 있거니와 여기서는 범위를 넓혀 승전의 개념, 장르적 성격, 조선시대의 승전, 자전의 특성과 함께 시대를 관통하는 불가전기의 서사문법이 무엇인지를 모색했다. 다소 이질적으로 보이나 승비(僧碑)관련 논문을 포함시킨 것은 금석문일지라도 그것 역시 전기물의 영역에서 논의가 이루어져야 옳다고 본 때문이다.
제3부 ‘불교설화’는 불가의 구전, 문헌설화들에 대한 논의들이다. ‘설화’ 대신 ‘전승’을 쓰기도 했는데 구전, 기록물을 통괄하는 논의이니만큼 이 용어가 보다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불교인물전승담은 분포 면에서 유학승 전설, 사찰연기, 고승전설의 비중이 높다. 유학승의 해외 전승담은 이제까지 서사적 검토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점에서 중일(中日) 문헌에 오른 사례들을 발굴하고 전승담의 전파경로, 모티브, 주제의식 등을 유의 깊게 살폈다. 지금까지 사찰연기 논의는 『삼국유사』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사찰연기의 전체상을 포착하기 어렵게 만들뿐더러 사찰연기의 개념을 왜곡할 여지를 남기게 된다. 본서에서는 구비, 문헌자료는 물론 금석문 소재 사찰연기까지 포괄함으로써 기존연구의 한계를 탈피하고자 했다. 일반설화와 대비되는 사찰연기담의 변별성이란 무엇인가. 이런 의문을 갖고 여기서는 종교담론, 지역전설, 사중(寺衆) 등 3요소에 주목했다. 고승의 인물전승은 불교서사에서 큰 비중을 점하는 또 하나의 영역이다. 유학승, 사찰 관련 전승이 문헌에 정착된 반면에 고승담은 민중, 사중 사이에서 구비전승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야기 속 주인공은 범접하기 어려운 경지에 도달한 각자이자 화자들의 결핍을 채워주는 구원자로 형상화된다. 담당층에 따른 약간의 차이는 보인다. 즉 주인공의 설정에 있어 사중들은 불교적 덕성을 갖추었는지를 따지며 민중들은 천도, 풍수, 전쟁 등 그들의 당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불교전승은 불교적 상상력을 바탕에 두고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올 장치 혹은 기법, 모티브를 수용하는데 적극성을 보이는데 이는 수용층을 사중은 물론 민중까지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장에 수록된 글들은 불교전승의 사상, 주제의식의 검증보다는 그것이 구축한 서사적 미학과 독자성을 확인하는데 비중을 두고 있다.
제4부 ‘불교소설’은 소설사에서 불교소설이 차지하는 위상과 미학적 특성을 밝히는 자리이다. 먼저 전기소설에서 불교전기소설을 하위 갈래로 설정할 필요가 있음을 제기하였다. 이어 불교소설을 에워싸고 있는 형성과 기원, 캐릭터, 사상, 시대사적 의의에 대해 밝혔다. 불교전기, 소설의 배경, 인물들은 불교사의 맥락과 연결시킬 때 발화의 동기와 캐릭터의 성격이 분명해진다. 불교 정착기의 전기(傳奇)에 그려진 불승은 신격(神格), 무인(巫人)들에게 조종당하거나 수모를 당하기도 하는데 불교계와 민간신앙 간의 불편한 관계를 말해준다. 『수이전』이 말해주듯 나말여초는 전기, 지괴가 발화한 시기로 불교계열의 전기(傳奇)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고려시대는 전기에서 소설로의 전환을 엿볼 수 있는 이행기이다. 『삼국유사』소재 일부 작품의 경우, 전기의 영역을 넘어 불교전기소설의 영역에 진입했다고 보아도 좋은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돌변한다. 숭유의 분위기에다 억불책의 시행은 불교소설의 발아와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불교소설에 대한 관심과 창작 의지가 온통 사라졌다고 단정 지어서는 곤란하다. 억불숭유의 환경에서도 창작 열의를 버리지 않고 나름의 서사 미학적 성취를 이루었던 작가, 작품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조선시기 불교소설이 어떻게 독자성을 확보하고 양식적 명맥을 이어갔는지 그 징표는 주제, 캐릭터에서 찾을 수 있겠다. 불교사상 대신 삼교습합(三敎習合)을 표방한 것을 두고는 유자층의 반불적 시각을 누그러뜨리고 독자층을 넓히려는 시도로 파악했다. 주인공으로 희생정신이 남다르고 자비심과 보살행이 충만한 여성을 앞세우는 것도 불교소설의 특징일 터인데 곤고한 삶을 벗어나 열락의 세계에 이르는 주인공의 자취는 전교와 함께 여성독자층을 확장하는데 효과적이었다. 조선 후기에도 불가에서는 위정층, 유자들의 횡포, 폄시를 고발하고 불교가 인륜도덕과 유리된 종교가 아님을 알리는 데 힘써야 했는데 불교소설에는 그 같은 당대 상황인식이 농후하게 투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