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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정치-사회철학

통제사회에 던지는 질문


  • ISBN-13
    978-89-7682-828-6 (93160)
  • 출판사 / 임프린트
    (주)그린비출판사 / (주)그린비출판사
  • 정가
    20,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3-08-31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신지영
  • 번역
    -
  • 메인주제어
    철학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들뢰즈 #정치철학 #사회철학 #현대사회 #철학
  • 도서유형
    종이책, 반양장/소프트커버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52 * 224 mm, 336 Page

책소개

『들뢰즈의 정치-사회철학』은 들뢰즈의 정치철학에 대해 기존에 다루어졌던 주요 문제를 돌아봄과 동시에, 그동안 등한시되었던 ‘흄’에 대한 들뢰즈의 논의를 검토함으로써 그의 ‘민중’ 개념과 ‘국가’, ‘폭력’에 대한 사상을 되짚는다. 즉 들뢰즈 정치철학의 고전적 의미와 현대적 의미를 망라하며, 이를 지금 우리 일상생활의 장면을 통해 긴밀하게 설명하고 있다. 

들뢰즈는 우리가 살 만하다고 느끼는 어떠한 공통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생기는 것부터가 바로 정치의 시작이라고 본다. 이 믿음으로부터 새로운 시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자들, 그들이 민중이자 유목민이며 그들이 만드는 시공간들이 곧 ‘세계’이다. 그렇다면 이 순간 우리에게 요구되는 세계는 어떠한 모습일까?

목차

프롤로그  7

약어 목록  32

서론  37

 

1장 이념과 유물론  49

1. 들뢰즈-마르크스주의를 둘러싼 서사  51

2. 들뢰즈-마르크스주의는 가능한가  62

3. 유물론의 미래와 이념  101

 

2장 자유와 자본  117

1. 자유주의 통치성: 인구와 욕망  119

에세이 | 이미 지쳐 버린 젊은 부르주아지

―우리는 빨리 생산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153

2. 신자유주의의 모순, 중단된 과정  156

 

3장 믿음과 제도  179

1. 구성주의적 제도 이론: 믿음의 정치  181

에세이 | 법은 텅 빈 개념이고 법규들은 영합적인 개념,

심지어 권리와 법이 문제인 것도 아니다  209

에세이 | 정치: 자연적 편파성과 제한된 공감을 가진 민중에게

일반적 이해관계를 믿을 만한 것으로 설득하는 것  213

2. 사회의 자기 제도화―민중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218

 

4장 세계와 민중  245

1. 세계: 위상학적 공간  247

2. 민중: 공간의 생산 281

 

에필로그  323

참고문헌  331

 

본문인용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투자하는 노동자. 그들은 노동자인가 부르주아인가. 이런 현실을 앞에 두고도 여전히 몇 가지 기준들을 통해 그들을 노동자로 분류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들이 노동자인지 부르주아인지 분류하는 것이 힘들다면 이렇게 물어보자. 그들은 임금이 상승하기를 바라겠는가, 투자한 주식의 상한가를 바라겠는가. 그들의 심리와 행동은 이미 부르주아인 것이다. “여전히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어디까지나 존재한다고 말할 사람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는 부분적으로만 참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 이 둘을 통합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은 결국,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점차 두 계급은 실제로 ‘부르주아’로 통합된다는 것으로, 역사를 주도하는 주체로서의 ‘노동자’ 계급의 소멸을 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들뢰즈-가타리의 계급에 대한 입장은 마르크스주의자의 입장과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 중인 것이다. 또한 이 말은 자본주의에서 계급적대는 없으며, 마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꿈꾸는 보편계급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에서 부정적으로 실현된 것처럼 해석될 수도 있는 발언이다. (86~87쪽)

 

 

사람들은 혁명의 길이 파시스트적 경제 해법에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시장의 운동’을 더욱 가속하는 것이 답이라고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이 두 저자의 결론이었을까?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 저서 말미에 니체의 말을 다시 반복한다. “과정을 완성할 것, 과정을 멈추지 말 것…. 사람들은 흐름들의 탈영토화, 탈코드화 속으로 충분히 멀리 가지 못하리라.” 이 책 결론에서 반복된 니체의 말은 이제 질문이 아니라 결론이며, 이것은 우리에게 과정을 멈추지 않는 것이 혁명의 길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는 문장이다. 그렇다면 위의 인용문에서 ‘시장의 운동을 가속하는 것’과 결론에서 ‘과정을 멈추지 않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그것은 너무나 명백히, 그리고 아주 교묘히 다르다. 논의 중간에 저자들이 던진 질문은 독자들을 얄궂게도 현혹하여, 마치 혁명의 방향이 과정을 멈추지 않는 것인데, 그 과정이라는 것이 ‘시장의 운동’이라는 과정인 것처럼 생각해 보도록 유도한 것이다. 글 쓰는 과정에서 저자들은 보통 독자들을 잘못된 길로 유도하고 사실 본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이 그것이 아님을 보여 주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가 바로 그러한 부분이다. 시장의 운동은 그 자체로 편집증적인 과정과 함께 운동하기 때문에 그 과정을 멈추지 않는 것은 명백히 친자본주의적 입장이 된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결론으로 가면서 우리에게 말하고자 한 것은, 자본과 시장의 운동은 모든 것을 자본으로 환원하는 편집증적 운동과 모든 것을 자본으로 해체하는 분열증적 운동이 시계추처럼 오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시장의 분열증적 운동만을 가속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분열증적 과정의 가속은 오로지 욕망의 사용에서만 가능하다. ‘자본의 분열증적인 경향만을 가속한다’는 테제는 그 자체로 성립하지 않으며, 자본은 그 분열증적 경향을 강화하는 만큼 같은 정도로 편집증적 경향도 동시에 강화하기 때문에 실천적으로도 불가능하다. (98~99쪽)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베르네르가 카뮈의 이러한 태도를 스피노자에 대한 들뢰즈의 해석으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에서 들뢰즈가 내세우는 철학자의 실천적인 임무는 탈신비화인데, 신비와 미신은 우리를 행동하는 힘으로부터 분리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은 철학으로서의 자연주의로부터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스피노자적 윤리가 기쁨 정념과 힘의 증대에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미신이라는 것은 우리를 슬픔 정념 속에 가두어 우리를 우리의 힘으로부터 분리하는데, 독재는 이러한 슬픔 정념과 불안, 두려움을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유지한다. 만약 이를 카뮈와 연결시킨다면, 스피노자의 ‘미신’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카뮈가 거부하는 어떤 ‘절대적인 것’, ‘역사라는 이념’, ‘인간주의’ 등일 것이다. 스피노자를 통해 카뮈와 들뢰즈가 연결되는 지점이다. (227쪽)

 

 

선으로부터 점이 발생한다는 것은, 0차원인 점을 이동시켜 1차원인 선을 만들어 내는 과정과 그 순서와 방향이 완전히 반대이다. 이제 정지점으로서의 단위는 없으며, 있는 것은 방향과 차원뿐이다. 벡터들, 차원들의 교차와 느려짐이라는 두 요소가 점 혹은 단위처럼 보이는 것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무엇을 관찰해야 하는가? “아이들의 흐름, 제자리걸음을 하고 길게 늘어서고 서둘러 가는 행진의 흐름, 행렬의 맨 앞의 늙은 수도사에게 아이들이 와서 털어 놓는 모든 고백의 기호적 흐름, 욕망과 성의 흐름, 사랑을 찾아 떠나 온 각각의 아이들…”을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이때 아이들이라는 정지점, 늙은 수도사라는 정지점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흐름들의 우발적 만남이 어떤 아이를 탄생시키고, 어떤 늙은 수도사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들뢰즈가 언제나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맥락에서 도엘은 다음과 같이 들뢰즈의 공간학을 정리한다. “들뢰즈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가면, 공간과학에 남는 것은 접속의 놀이뿐이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흐름으로부터 정지점을 사유할 것, 선들의 접속으로부터 점을 사유할 것. 이것이 들뢰즈 공간학의 핵심일 것이다. (264~265쪽)

 

 

도시의 모습은 이중적이다. 하비가 기억하듯이 “언젠가 ‘도시 공기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는 말이 있었다. 농노들이 속박으로부터 탈피하여 중세도시의 자기통치적 법적 실체들 내에서 정치적 및 개인적 자유를 주장함에 따라 이 사고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점점 더 거대화되는 현대의 도시는 거꾸로 슬럼화를 동반하고 , 빈곤과 착취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도시 현상은 그대로 승인하기도 거부하기도 어려운 지점이 있다. 도시의 탈영토화 과정이 자본의 작동 원리에 따라 국가라는 매개를 통해 오로지 자본에만 유리한 방향으로 재영토화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생각은 도시를 사유하는 학자들에게 공통된 생각일 것이다. 들뢰즈의 차이의 존재론이 자본의 작동을 자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돌아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생각은 아마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 피상적인 이해에 의하면 들뢰즈의 철학은 있는 그대로를 내버려 두고 그대로를 긍정하는 철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짚은 대로 초월을 배제하는 내재성의 철학이 반드시 존재를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은 아니다. 차이 존재가 내버려 두는 것은 차이뿐이다. 그것을 들뢰즈는 소위 ‘이중긍정’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319~320쪽)

 

서평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정치철학이 필요하다!”

들뢰즈 정치철학으로 바라보는 현대 사회

 

 

『들뢰즈의 정치-사회철학』은 들뢰즈의 정치철학에 대해 기존에 다루어졌던 주요 문제를 돌아봄과 동시에, 그동안 등한시되었던 ‘흄’에 대한 들뢰즈의 논의를 검토함으로써 그의 ‘민중’ 개념과 ‘국가’, ‘폭력’에 대한 사상을 되짚는다. 즉 들뢰즈 정치철학의 고전적 의미와 현대적 의미를 망라하며, 이를 지금 우리 일상생활의 장면을 통해 긴밀하게 설명하고 있다. 

 

들뢰즈는 우리가 살 만하다고 느끼는 어떠한 공통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생기는 것부터가 바로 정치의 시작이라고 본다. 이 믿음으로부터 새로운 시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자들, 그들이 민중이자 유목민이며 그들이 만드는 시공간들이 곧 ‘세계’이다. 그렇다면 이 순간 우리에게 요구되는 세계는 어떠한 모습일까?

 

 

“왜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가?”

정치철학의 고전 질문으로부터 들뢰즈의 소수정치학까지

 

새로운 사회에 새로운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은 정치철학의 근본문제로 여겨지는 고전적 질문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1장 「이념과 유물론」에서는 들뢰즈-마르크스주의의 문제를 검토하며 들뢰즈 스스로 주장하는 유물론의 모습을 밝힌다. 이를 통해 우리의 정치적 문제와 얽혀 있는 이념과 유물론의 문제로부터, 어떤 새로운 가지를 뻗어 갈 수 있는지 살핀다.

 

2장 「자유와 자본」에서는 우리가 직면한 새로운 통치성으로서의 ‘신자유주의’를 다룬다. 민주주의의 후퇴와 빈부의 극심한 격차, 실업, 환경파괴 등의 심각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여전히 신자유주의를 유지하고 있는지, 이것이 정말 ‘자유로운’ 것인지 의심한다. 이때 푸코의 통치성 이론과 들뢰즈의 자본주의 분석은 마르크스주의와 주류 경제학이 밟았던 길과는 다른 길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접근하며, 이러한 체제로부터의 해방이 푸코에게는 쾌락과 자기에의 배려로, 들뢰즈에게는 욕망의 도주로 이어짐을 알 수 있다.

 

3장 「믿음과 제도」에서는, 들뢰즈의 흄 독해에 근거하여 들뢰즈의 정치철학에 대한 색다른 접근을 시도하고자 한다. 들뢰즈는, 항들 바깥에 있는 ‘관계’를 도입했다는 것과 법과 계약 중심의 사유 환경 속에서 이에 맞서 제도와 체제로 문제의 틀을 변경하려 했다는 두 가지 측면에서 흄의 철학에 주목했다. 특히 대의가 아닌 창조로서의 정치는 들뢰즈 정치철학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 어떤 것을 믿을 만한 것으로 여기고 이러한 시공간을 창조해 내는 주체로서의 민중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물어야 한다는 것이 곧 이 장의 핵심이다. 

 

4장 「세계와 민중」에서는 들뢰즈의 공간론을 다룬다. 들뢰즈의 공간 개념을 검토해야 하는 이유는, 민중이 세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을 때 그들이 구축하는 것은 ‘새로운 시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공간은 좀 더 구체적인,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라는 장소로 다루어지며 그의 소수정치학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원하는 국가를 어떻게 만들까?

“창조(création)와 민중(peuple)이 동시에 필요”하다

 

현대사회의 도시라는 공간에서 들뢰즈의 유목민 개념은, 그것을 표면적으로 이해해 버리는 순간, 도시의 빈민, 노동자, 혈거민 등을 들뢰즈적 의미의 유목민으로 여기기 쉽다. 그리고 이것은 자칫 들뢰즈가 도시의 빈곤과 착취를 긍정한다는 오독으로 이어질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는 도시를 창조가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공간으로 보지는 않았다.  

 

 

도시공간은 탈영토적인 공간이지만 그 역시 자본으로 환원시키는 지점에서 머무를 뿐인 공간으로,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민중이나 유목민이 필연적으로 뒤따라 나오는 공간이 아니다. 민중 혹은 유목민은 주어진 공간, 세밀하게 탈영토화된 도시에서 자본으로 환원되지 않는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할 역량이 있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으며 그러한 시공간을 구성해 내는 실천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 실천 방식은 이를테면 ‘소수적’이라 불린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제도 이론으로서의 들뢰즈의 정치철학이 흄에 대한 독해로부터 시작하여 『자본주의와 분열증』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구성적 실천과 소수적 사용의 개념으로 이어지고 또 발전하였다고 본다. 통제사회를 살아 내고 있는 지금 우리가 이 사회에 대해 던질 수 있는 질문들, 그것은 이 새로운 시공간의 창조 가능성, 민중의 가능성에 가 있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46~47쪽)

 

민중은 세계에 대한 믿음으로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하고 제도를 발명하는 소수적 운동이다. 그러므로 바랄 만한 국가를 만들거나 요구한다는 것은 민중이 소수적으로 운동한다는 것을, 그리고 세계에 대한 믿음으로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한다는 것과 같다. 즉,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국가는 국민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오히려 민중에게 되돌아와, 우리가 원하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민중이 스스로 세계에 대한 믿음을 견지하고 새로운 시공간을 만들어내는 소수적 운동을 지속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대답을 얻게 된다.

 

 

정치철학을 실천하기,

통제사회를 인식하고 질문을 던지다

 

지금도 누군가는 이 통제의 체제를 고통스럽게 인식하는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그에 적응하여 즐기고, 그것으로부터 이득을 얻거나 착취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기도 한다. 들뢰즈는 어느 체제건 그 체제가 제시하는 문제가 있을 뿐, 어떤 것이 더 나을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우리의 전 세대가 언제나 그러했듯이, 우리가 속한 체제의 목적과 그 실상을 고통스럽게 발견해야 하는 주체는 결국 우리들 자신이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현재의 통제사회를 직시하게 한다는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들뢰즈식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시작 또는 과정 자체 역시 ‘정치’가 될 것이다.

 

슬럼, 빈곤, 착취로 얼룩진 도시 생태는 이러한 유목민들에 의해 새로운 시공간을, 다시 말해서 자본으로 환원된 세계 위에 우리가 살 만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통의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한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있다는 것, 혹은 그러한 믿음이 생긴다는 것, 그것부터가 바로 들뢰즈가 생각하는 정치의 시작이며, 이 믿음으로부터 새로운 시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자들, 그들이 민중이자 유목민이다. 민중은 이렇게 탄생하며, 그들이 만드는 시공간들, 그것이 바로 세계이다. 이 모든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 과정, 그것이 우리가 이 책에서 애써 드러내려고 했던 들뢰즈의 정치철학의 모습이다. (322쪽)

저자소개

저자 : 신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석사, 프랑스 리옹3대학교에서 들뢰즈의 윤리와 미학에 관한 주제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시립대학교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있다가 현재 경상국립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들뢰즈의 드라마론』(경상국립대학교출판부),『내재성이란 무엇인가』(그린비), 『들뢰즈로 말할 수 있는 7가지 문제들』(그린비), 역서로는 들뢰즈의 『대담』(갈무리, 근간), 『들뢰즈 개념어 사전』(갈무리),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해설과 비판』(라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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