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얘기 들었어? 6반에 학생이 새로 왔다던데.”
“그럴 리가. 입학시험도 따로 봐야 하는 학교인데 어떻게 전학생이 오겠어.”
“전학 온 건 아니고, 입학하자마자 몸이 아파서 휴학했대. 그래서 이번 학기부터 나온 거라더라.”
평소라면 그냥 넘길 말이었지만, 그 깃털을 보고 난 후여서 혜성은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지난 학기에 휴학한 학생이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었다.
_8쪽
나는 얼마 가지 않아 조금 전 일이 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마주해야만 했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났을 때, 영명이 기숙사 독서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건 알겠지만 그대로 도망가면 어떡해. 내가 사나운 괴물이면 어쩌려고 그랬어?”
“괴물은 맞잖아.”
“사납지는 않잖아.”
_29쪽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 쪽으로 향했다. 1층으로 내려가자마자, 케이크가 한가득 올려진 쟁반을 든 영명과 눈이 마주쳤다.
“서명은?”
“못 받았어.”
“또 만날 용기는 있고?”
“서호한테 그런 일을 부탁할 생각은 없어.”
_73~74쪽
“이해가 안 가네.”
“뭐가?”
“왜 굳이 네가 해결하려고 해? 돕는다는 건 말 그대로 답에 가까워지도록 길을 같이 찾아 주는 거야. 답을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혜성은 자신이 먹은 이야기를 찬찬히 떠올렸다. 필요한 조언을 해 주고, 때로는 직접 등을 떠밀어 주기도 했던 반년 동안의 상담을. 기억을 지우기로 택한 것도 자신의 꿈을 되찾아 온 것도 긴 짝사랑을 끝맺은 것도, 전부 결국 당사자들이 선택한 일이었다.
_118~119쪽
영명은 성단을 데리고 위층으로 향했다. 인적이 드문 곳까지 달리다 보니, 둘은 어느새 옥상과 5층을 잇는 계단까지 도달했다.
“일단은 여기서 좀 쉬자. 너 상태는…….”
한참 뛰느라 힘들었을 텐데 성단의 숨은 거의 멎다시피 조용했다.
“그래, 좋지는 않나 보네.”
성단이 계단에 걸터앉자, 영명은 그 옆에 털썩 주저앉아 성단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_158쪽
그게 누구에 관한 이야기인지는 영명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그 누군가가 건넸던, 한참을 무시하고 있던 충고는 혜성이 지금 자신에게 건넨 말과 다를 것이 없었다.
“누구랑 똑같은 소리를 하네.”
인간 흉내를 내는 줄 알았더니, 사실 인간이 아니라 세월을 따라 한 건가 싶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네 말대로 해 볼게. 대신 다른 부탁은 들어줘. 기껏 정보도 줬는데 먹고 튈 생각 하지 말고.”
_184~185쪽
“오랜만이지?”
오늘 세월의 오후는 평화로울 예정이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직전 찾아온 영명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그랬을 것이다.
“너 보러 온 거야. 그러니까 일어나.”
“나?”
“지금 시간 비어? 하던 상담은 마무리하고 싶어서.”
_228쪽
“잘됐네. 나도 부탁할 게 있었는데.”
“그럼 내가 먼저 말할게.”
세월의 호흡이 잠깐 길어졌다. 굽지 않은 어깨를 괜히 한번 펴더니, 평소보다 올곧은 자세로 혜성을 마주했다. 서툴게나마 마음을 다잡는 모습에, 혜성은 세월의 부탁이 자신과 같음을 직감했다.
“널 상담하게 해 줘.”
_251~2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