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기술을 쉽게 풀어 쓴 입문서를 기대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바람과는 반대로 이 책은, 사랑이 성숙한 정도에 상관없이 누구나 쉽게 빠져들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고자 쓰였기 때문이다. (4쪽)
▪ 사랑은 기술인가? 그렇다면 사랑에는 지식과 노력이 필요하다. 아니면 사랑은 우연히 경험하게 되는 것으로, 운이 좋은 사람이 ‘빠지게 되는’ 즐거운 기분일까? 이 작은 책은 전자를 전제로 쓰였지만, 오늘날에는 대다수의 사람이 후자라고 일반적으로 믿고 있다. 그렇다고 요즘 사람들이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랑에 굶주려 있어, 행복한 사랑 이야기나 불행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을 끊임없이 보고, 사랑을 주제로 한 저질스러운 노래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다. 하지만 사랑과 관련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15쪽)
▪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개인으로서만이 아니라 인류의 일원으로서도, 본능만큼이나 명확한 상황으로부터 막연하고 불확실하며 분명히 규정된 게 없는 상황에 내던져진다. 과거와 관련해서만 확실한 것이 있을 뿐, 미래와 관련해서는 죽음밖에 확실한 것이 없다. (24쪽)
▪ 사랑은 인간에게 내재한 능동적 힘이다. 우리를 동료 인간에게서 떼어놓는 벽을 허물고, 우리를 다른 사람과 하나로 맺어주는 힘이다. 사랑은 우리에게 소외감과 분리감을 극복하게 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완전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힘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랑할 때는 두 존재가 하나가 되면서도 여전히 둘로 존재하는 역설이 성립한다. (41~42쪽)
▪ 구체적으로 사랑과 관련해 말하자면, 사랑은 사랑을 만들어내는 힘이며 무기력은 사랑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런 생각을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는 “인간을 인간으로, 또 인간이 세계와 맺는 관계를 인간적인 관계로서 ‘가정’한다면,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만, 신뢰는 오직 신뢰로만 교환될 수 있다. 예술을 즐기고자 한다면, 예술과 관련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을 실질적으로 독려하고 끌어가는 힘을 지녀야 한다. 당신이 인간이나 자연과 맺는 모든 관계는 하나하나가 당신 의지의 대상에 대응하고, 당신의 실질적이고 개인적인 삶을 명확히 표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당신이 사랑한다면서도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서 당신의 사랑이 그 자체로 사랑을 만들어내지 못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생명의 표현을 통해 그 자신이 사랑받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당신의 사랑은 무력한 것이고 불행한 사랑이다”라고 멋들어지게 표현했다. (47~48쪽)
▪ 사랑은 활동이지 수동적인 정동이 아니다. 사랑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지 ‘누군가에게 홀리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사랑의 능동적 특성은 ‘사랑은 주로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48~49쪽)
▪ 유아적 사랑이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라는 원칙을 따른다면,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라는 원칙을 따른다. 미성숙한 사랑은 “나에게 네가 필요하기 때문에 너를 사랑하는 거다”라고 말하는 반면, 성숙한 사랑은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네가 나에게 필요한 거다”라고 말한다. (69~70쪽)
▪ 사랑은 특정한 한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다. 사랑은 어떤 사람이 세상 전체와 맺는 관계를 결정하는 태도, 즉 성격 지향orientation of character이지, 하나의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오직 한 사람만 사랑하고 나머지 사람들 모두에게 무관심하다면, 그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공생적 애착, 다시 말하면 확대된 이기주의일 뿐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에는 대상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능력으로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심지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른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게 사랑의 강렬함을 증명하는 거라고 믿는 사람이 대다수인 것도 사실이다. 이런 믿음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현상과 똑같은 오류다. (77쪽)
▪ 사랑은 본질적으로 의지의 행위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다른 한 사람의 삶에 내 삶을 온전히 헌신하겠다는 결단의 행위여야 한다. (90쪽)
▪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강렬한 감정만이 아니다. 결정이고 판단이며 약속이다. 사랑이 단지 감정에 불과하다면, 서로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약속을 뒷받침할 근거는 없을 것이다. 감정은 생겼다가 사라질 수 있다. 사랑이라는 행위가 판단과 결정에 따른 게 아니라면, 어떻게 그 사랑이 영원히 지속될 거라고 판단할 수 있겠는가? (91쪽)
▪ 원칙적으로 ‘대상’과 자기 자신 간의 연결에 관한 한, 사랑은 불가분하다. 진정한 사랑은 생산적 활동력을 표현하는 행위이며 돌봄과 존중, 책임과 지식을 함축한다. 진정한 사랑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정동’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성장과 행복을 위한 능동적인 노력이며, 그 노력은 우리에게 내재한 사랑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95쪽)
▪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실현하고 집중하는 것이다. 사랑에 담긴 기본적인 확신은 사랑받는 사람을 향한 것이다. 사랑받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자질을 구현한 존재이므로,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은 인간 자체에 대한 사랑이 된다. (95~96쪽)
▪ 이기심과 자기애는 동일하기는커녕 사실상 정반대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을 지나치게 많이 사랑하는 게 아니라 지나치게 적게 사랑한다. 오히려 자신을 증오한다. 자신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부족한 모습은 그의 생산성 부족을 보여주는 한 단면에 불과하지만, 그를 공허함과 좌절감에 빠뜨리는 원인이기도 하다. (97쪽)
▪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이런 해석에서 주로 강조하는 것은 다른 방식으로는 견디기 힘든 외로움으로부터 피난처를 찾는 것이다. ‘사랑’ 안에서 마침내 외로움을 벗어날 안식처를 찾은 게 된다. 두 사람이 결연하여 세상에 맞서는 연대를 결성하고, 이런 ‘두 사람만의 이기주의’가 사랑과 친밀함으로 오해된다. (135쪽)
▪ 사랑은 두 사람이 진정한 자아로서 서로 소통할 때, 즉 각자 진정한 자아로서 자신을 경험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진정한 자아를 인식하는 경험’에만 인간의 실재가 있고, 오직 여기에만 생동감이 있고, 오직 여기에만 사랑의 기반이 있다. 이렇게 경험되는 사랑은 끊임없는 도전이다. 사랑은 안식처가 아니라 움직이고, 성장하고, 함께 협력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진정한 자아로서 자신을 경험하고, 두 사람이 자신에게서 도피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과 하나가 됨으로써 서로 하나가 된다는 근본적인 사실에 비교하면, 조화나 갈등이 있느냐, 기쁨이나 슬픔이 있느냐는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154쪽)
▪ 사랑을 성취하기 위한 주된 조건은 나르시시즘을 극복하는 것이다. 나르시시즘적 성향은 자기 안에 존재하는 것만을 실재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성향인 반면, 외부 세계의 현상은 그 자체로는 실재성이 없어 자신에게 유용하냐 아니면 위험하냐는 관점으로만 인식된다. 나르시시즘의 반대편 끝에는 객관성이 있다. 객관성은 사람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고, 이 객관적인 이미지를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에 의해 형성된 이미지와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175~176쪽)
▪ 사랑의 기술을 실천한다는 관점에서 위의 설명을 다시 해석하면, 사랑은 나르시시즘의 상대적 부재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사랑을 실천하는 데는 겸손과 객관성과 이성의 발달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우리 삶 전체를 이 목표에 바쳐야 한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겸손과 객관성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낯선 사람에 대해 객관적일 수 없다면 가족에 대해서도 진정으로 객관적일 수 없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178쪽)
▪ 사랑의 기술을 배우고 싶다면 모든 상황에서 객관성을 추구하며, 내가 객관적이지 못한 상황에 민감해져야 한다. 내가 누군가와 그의 행동에 대해 생각하는 이미지는 나르시시즘적으로 왜곡되기 때문에 그 이미지와, 내 이해관계와 욕구와 두려움과 관계없이 그 사람이 실재하는 그대로의 모습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찾아내려 노력해야 한다. (179쪽)
▪ 우리가 신념을 배신할 때마다 어떻게 약해지고, 그렇게 약해지면 다시 신념을 배신하며 어떻게 악순환에 빠져드는지도 알아내야 한다. 그럼 의식의 차원에서는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반면, 대체로 무의식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사랑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런 보장 없이 자신을 헌신하는 걸 의미하며, 우리 사랑이 사랑하는 사람 안에서 사랑의 불길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바라며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는 것이다. 사랑은 신념의 행위인 까닭에, 신념이 약한 사람은 사랑하는 능력도 떨어진다. (188쪽)
▪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낯선 사람에 대한 사랑 사이에 ‘분업’은 없다. 오히려 후자가 존재해야 전자가 존재할 수 있다. 이런 통찰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면, 우리의 사회적 관계가 관습적인 수준에서 상당히 급격하게 변해야 한다. 이웃 사랑이라는 종교적 이상에 입으로는 엄청난 찬사를 보내지만, 우리의 인간관계는 좋게 보아야 공정성fairness의 원리에 따라 실질적으로 결정된다. 여기에서 공정성은 상품과 서비스의 교환, 또 감정의 교환에서 사기와 속임수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당신이 내게 주는 만큼 나도 당신에게 준다”라는 말은 물질적 재화와 사랑 모두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널리 퍼진 윤리적 격언이다. 공정성 윤리의 발달이 윤리적인 면에서 자본주의 사회에 특별히 공헌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다. (190~191쪽)
▪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설교’하는 게 아니다. 모든 인간 안에 내재하는 궁극적이고 진실한 욕구에 대해 말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 욕구가 가려졌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오늘날, 사랑의 본성을 분석하는 것은 사랑의 전반적인 부재 현상을 확인하고, 그런 부재를 초래하는 사회적 상황을 비판하는 것이다. 사랑이 예외적으로만 개인적 현상일 뿐, 사회적 현상으로도 가능하다고 믿는 신념은, 인간 본성 자체에 대한 통찰에 기반한 이성적인 신념이다. (1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