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사람의문학』으로작품활동을시작해시집『기차를놓치다』『꿈결에시를베다』, 산문집 『그대라는 문장』 『섬에서부르는노래』를펴내며 “바닥 중에서도/맨/밑바닥”(「내 시의출처」)을 자신의 시의 출처로삼아온손세실리아시인의신작시집『뒷모습지워지고도한참을』이출간되었다. 『꿈결에 시를 베다』 이후십수년만에펴내는이번시집은폐가에홀려시작한제주살이와조천바닷가늙은집에서꾸려온책방의나날을배경으로한다. 시인은 “섬에 든일은/내 생의 화양연화”(「시인의 말」)라고고백하며, 한 권의 시집을 오롯이제주의땅과사람에게바친다.
제주 사람들이이주민을낮춰부르는 ‘육지것’이라는 말앞에서, 시인은 묵묵히 본분을 다해섬에뿌리내린육지배추의 “속이 꽉 찬 진녹빛생”을 보며 “마치뼈를묻을것처럼/입만 나불댔던 섬살이”(「육지것」)를 돌아본다. 사월이면 “합동위령제 끝줄에숨죽여서는”(「다시, 그날」) 뭍 태생의 시인은, 섬에 든 지 십수년만에 “바다 저쪽의 시가 추모시라면/이쪽의 시는 생애시(生涯詩)”(「사월의 시」)라는 것을 깨닫는다. 발문을 쓴 문학평론가 고영직이일러둔대로, 이 시집은 “한서사가다른한서사를받아들”(「축시」)이며 스미고번지는몸바꾸기의기록이자, 제주 땅과 제주 사람에게바치는 “오롯한 헌정시집”이다.
호적상 모녀지간인적없던문맹의어머니를한티스푼의뼛가루로동백나무아래모시는「동백핀날」, “디지털 조류도감엔 등재되지도 않은” 새를 부르는 「폴새」 등어머니시편들은슬픔의물기위에시인특유의유머를얹어상실을건너간다. 시집을 냈다는 이유로 검열과지원사업배제를겪은뒤 “지랄 같은 봄밤”을 토로하고, 세월호유족막사에서본한남자의종아리에새겨진 “아들아 보고 싶구나”(「비문」)를 오래기억하며, 역병의 한복판에서 “김밥한줄/컵라면 한 젓가락보다 무용한”(「시집의 쓸모」) 시집의자리를묻는시인은, 지금 이곳의 아픔에서 끝내눈을돌리지않는다.
일면식도 없는이에게보낼책상자에 “한가득/섬”(「책방 일지」)을담고, 어린 딸을 두고 떠난젊은어미가되어 “뒷모습 지워지고도 한참을/골목에 서 있었다”(「시인의 집」)고쓰는시인의시선은, 사라진 것들이 떠난 자리에오래머문다. 번역가 정은귀의 말처럼 『뒷모습지워지고도한참을』은 “사라진 것들을 오래 바라봄으로써끝내사람을살리는말에이르는시집”이다.
『뒷모습 지워지고도한참을』은 K-포엣 시리즈의 마흔아홉 번째작품으로출간되었으며, 시집 일부는 영문으로 번역되어『Long After Your Back Had Faded Away』라는 제목으로도함께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