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의 흥망에서 정치의 원리를 길어 올린 거대한 역사비평
사마광의 『자치통감(資治通鑒)』은 중국 역사학을 대표하는 불후의 고전이다. 그렇다면 명말청초의 사상가 왕부지(王夫之)는 이 방대한 역사를 어떻게 읽었을까.
『독통감론(讀通鑒論)』은 왕부지가 『자치통감』에 기록된 역대의 사건과 인물들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자신의 역사관과 정치사상을 펼쳐낸 책이다. 단순히 “누가 옳았고 누가 그르다”를 논평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왕조의 흥망, 군주와 신하의 관계, 재상의 역할, 제도와 법률, 민족 문제, 변방 통치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움직이는 수많은 조건을 종횡으로 넘나든다.
『서경』과 『시경』, 『예기』, 『주역』, 『논어』, 『맹자』 등 유가의 주요 경전은 물론 노장사상까지 끌어들이며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다. 한마디로 『독통감론』은 『자치통감』의 독후감이면서, 동시에 왕부지가 평생 쌓아 올린 역사철학과 정치사상이 집약된 저술이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정치의 교과서다
왕부지에게 역사는 이미 지나가 버린 사건들의 집합이 아니다. 과거의 성공과 실패에서 지금의 정치를 판단하는 기준을 발견하는 공간이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인의(仁義)에 바탕을 둔 유가적 정치 질서였다. 천자는 합리적인 법과 제도를 세우고, 재상을 중심으로 한 관료제는 이를 현실 정치에서 구현해야 한다. 법률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형벌과 통제만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강하게 반대한다.
반면 불교와 도가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다. 현실 정치의 책임을 흐리거나 인간의 이성을 현혹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지나치게 엄격하게 느껴질 만큼 유가적 정통성을 고수하지만, 바로 그 완고함 덕분에 왕부지라는 사상가가 역사를 판단했던 기준 역시 선명하게 드러난다.
누가 왕조의 정통성을 이어받는가
『독통감론』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정통성’이다.
왕부지는 찬탈과 반역을 극도로 경계한다.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거나 권력을 빼앗는 것은 자식이 아버지를 거스르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인륜과 정치 질서를 동시에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보았다.
왕조의 계승 역시 종법(宗法)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장자의 계승과 예법에 맞는 대통(大統)의 전승이야말로 왕조가 정통성을 확보하는 핵심 조건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단순한 고전적 유가론으로만 볼 수 없다. 왕부지가 명나라의 멸망과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등장을 직접 목격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 시대의 몰락을 경험한 사상가가 과거의 왕조들을 다시 읽으며 “정당한 권력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있는 셈이다.
황제보다 중요한 재상
왕부지의 정치론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재상에 대한 강조다.
그는 황제가 다소 무능하더라도 훌륭한 재상이 있다면 왕조가 유지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대로 재상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난 군주라 해도 정치가 흔들릴 수 있다.
천자의 중요한 역할은 적합한 인재를 발탁하는 것이며, 이후 실제 정치는 행정의 최고 책임자인 재상이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재상은 비빈이나 환관 같은 궁중 세력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하며, 행정적 능력뿐 아니라 충정과 절조를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백 년 전의 역사서를 읽으면서도 왕부지가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은 놀랍도록 현실적이다. 권력자는 누구에게 권한을 맡겨야 하는가. 정책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제도는 어떻게 권력의 자의성을 막을 수 있는가.
옛 제도를 그대로 되살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왕부지는 유가의 전통을 중시했지만, 과거의 제도를 무조건 복원하려는 복고주의자는 아니었다.
그가 강조한 것은 ‘통변(通變)’, 즉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제도를 바꾸는 일이었다. 봉건제가 가능했던 시대와 군현제가 작동하는 시대는 다르며, 과거에 성공했던 제도라고 해서 후대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전제와 부병제의 문제를 지적하고, 부세 제도와 변방의 둔전, 절도사 제도 등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다.
역사에서 배워야 하지만 역사를 그대로 반복해서는 안 된다. 『독통감론』이 오늘날에도 흥미로운 이유 가운데 하나다.
오늘의 독자가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왕부지
물론 왕부지의 모든 판단을 오늘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족과 주변 민족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그의 민족관은 매우 배타적이다. 왕부지는 북방 이민족에 의한 중원 지배를 왕조 내부의 찬탈보다도 더 심각한 위기로 바라보았다.
이는 명 왕조가 만주족의 청나라에 의해 무너지는 시대를 경험한 그의 개인적·역사적 조건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독통감론』은 왕부지의 주장에 동의하기 위한 책이기보다, 한 시대의 지식인이 어떤 조건 속에서 역사를 해석하고 자신의 정치적 원칙을 만들어 갔는지를 읽는 책이기도 하다.
원고지 1만 2,350매, 2년 6개월에 걸친 완역
이 방대한 고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데에는 약 2년 6개월이 걸렸다.
완성된 번역 원고는 원고지 약 1만 2,350매. 왕부지의 역사적 논평뿐 아니라 수많은 고전 인용과 인물, 제도, 사건을 하나하나 따라가야 하는 작업이었다.
흔히 왕부지는 ‘기(氣)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독통감론』에서 만나는 왕부지는 무엇보다 역사를 읽는 정치사상가다. 그는 수많은 왕조와 인물의 성패를 검토하면서 국가가 무엇으로 유지되고 무엇으로 무너지는지 묻는다.
한 사상가가 평생의 역사 독서를 통해 남긴 질문
좋은 역사책은 과거의 답을 알려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독통감론』에서 왕부지는 끊임없이 묻는다.
권력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군주와 신하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좋은 인재는 어떻게 등용해야 하는가.
낡은 제도는 언제 버려야 하는가.
한 왕조가 오래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자치통감』이라는 거대한 역사서를 통과해 왕부지가 도달한 것은 결국 정치와 인간에 관한 질문이었다.
수천 년 중국사의 흥망성쇠를 한 사상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다시 읽고 싶은 독자, 왕부지의 철학을 역사와 정치의 현장에서 만나고 싶은 독자라면 『독통감론』은 피할 수 없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