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선택이다. 잘된 선택이 반복된다면 더없이 행복하겠지만 잘못된 선택이라도 끝은 아니다. 다음 선택에서 만회할 기회는 끊임없이 주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야말로 내게 주어지는 가장 소중한 기회다. 누구라도 현재의 선택을 잘 살려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꽃피워야 한다. 사과 고르기가 곧 인생인 것처럼 모든 이들에게 반복되는 선택은 스스로를 한 송이 꽃으로 피워 올리는 과정일 수도 있다. 살면서 선택의 목적은 분명 각자 행복한 삶을 꽃피우는 데 있고 우주 만물의 모든 존재 의미 속에 피고 지지 않는 생명은 결코 없는 법이니까. -〈피고 지는 꽃〉 중에서
오른발을 떼면 이승이고 왼발을 떼면 저승일 것처럼 끊임없이 오가며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 하여 이승에서 그리운 사람들, 저승에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이여! 죽음, 그다음은 제발 다시 삶이기를. 세상 모든 사별 역시 다시 만날 약속이기를. -〈나의 윤회론輪廻論〉 중에서
사전적 의미는 다르지만 운영하는 식당이 없던 시골 마을 풍경으로는 말하자면 집 안에서 먹는 외식 같은 거였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또 왜 그렇게 마른 침이 넘어가고 친구가 부러웠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 밖에서 먹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먹지 못한 것을 먹는 것이야말로 내가 처음 경험한 외식外食의 정의다. -〈외식外食〉 중에서
오직 자식 자리 높아지기만 바라다 황망하게 가신 내 어머니의 꿈은 분명 나였을 것이다. 내게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바라셨을 거다. 혹시 그 짐작이 맞는다면 어머니의 꿈은 늦게나마 이루어졌다. 강산이 세 번 바뀌도록 변하지 않고 나는 어머니를 기억하므로. 그리워하므로. -〈대를 이은 꿈〉 중에서
저승 문턱까지 한 발을 내디뎠던 아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 회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 세상은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더니. 나는 이제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입을 틀어막고 싶었던 의사의 모습이 천사로 다가왔다. 고마웠다. 존경스러웠다. 그러나 이겨낸 아들에게 더 고마웠다.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마웠다. 지옥에서 생환한 아들과 함께 우리 가족은 이제 다시 태어났다. -〈아들의 생환〉 중에서
맨발로 뛰어나가 베란다 유리창을 열어젖히고 여자를 번쩍 들어 올렸다. 내 기준으로는 작지 않은 여자였는데 몸무게가 종잇장처럼 가벼웠다. (...) 살다 보면 나처럼 직접, 아니면 뉴스를 통해 이런저런 자살 소식을 접하게 마련인데 이 좋은 세상에 자살이라니, 지금 이 순간에도 단 하루의 삶이라도 간절하게 갈구하는 그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8층 여자〉 중에서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도 사람의 꽃은 핀다더니 그 집의 며느리들 심성이 그랬다. (...) 기꺼이 감수하는 그 마음들이 나로서는 보기 좋았다. 정말 좋았다. 비로소 노인의 지난 삶이 보였다. 농사를 지으며 평생을 사셨다는데 어떻게 모든 가족이 저렇게 한결같을까.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농사일이라더니 할아버지는 농사를 짓듯 자식을 키웠나 보다. 그러고 보니 자식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삶에서 큰 농사다. -〈격格이 있는 농사農事〉 중에서
아들아! 살면서 세상에는 하나씩, 하나씩 거북이걸음으로 가는 즐거움도 있단다. 불편하더라도 그것이 느리면 느린 대로 삶 자체라서 그래. 누나를 낳고 너를 기다리면서 남동생일지, 여동생일지 느긋하게 기다리던 재미조차 얼마나 행복했는지 너는 모르지? -〈거북이의 행복〉 중에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파는 것처럼 진열해 놓고 매일 판매 대금을 아들의 주머니에서 밀수품 정산하는 것처럼 은밀하게 지급되었다. 아버지는 속도 모르고 아들이 장사 수단이 좋다며 싱글벙글 농산물을 나르고 계셨는데 보는 사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였다. (...) 사위 자격으로 장인의 생산물을 최고가에 매입하여 거래처에 무상으로 선물해 온 것이다. (...) 세상에는 대가를 바라는 뇌물도 많지만, 선물과 뇌물은 향기로서 확연하게 구분된다. -〈향기나는 선물〉 중에서
삶에서 세월이란 어쩌면 찬장 속에 꿀단지 같은 것이다. 젊은 날에는 맛나서 아낌없이 퍼먹다 보면 어느 날에는 결국 빈 단지만 남게 되는 것이라 그렇다. (...) 가만히 앉아서 자식이 채워주는 꿀을 먹기에는 뭔가 미안한 것 같아 단념하고 하염없이 빈 꿀단지를 바라보는 게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소망하기를 미래 자식의 꿀단지에는 더 많은 꿀이 담겨 있어 부족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내 인생의 꿀단지〉 중에서
무릇 나무는 길을 낼 때 하늘로 내고 물은 바다로 낸다. 하늘과 하늘 사이로, 물과 물 사이로 서로는 서로를 자유롭게 허락한다. 그런 길에게 무슨 제한이 소용일까. 사람 간의 문제도 다르지 않다. 사람의 길이란 주고받는 마음인데 그 마음이 바로 서로를 이어주는 통로가 된다. 그런 통로를 막는 법이라니 얼마나 어색한가. 더 깨끗한 사회를 만드는 길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하늘처럼 바다처럼 온기 가득한 사람들의 가슴처럼 선물이란 무엇인가 주고받으며 행복하려고 존재한다. 기왕에 만들어진 법이라 금세 없어지긴 어려울 테지만 그렇더라도 나는 그 법이 아주 유명무실해지길 바란다. 친구의 관사에 살았던 염소 선물처럼 서로는 서로를 허락하면 좋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 중에서
모으기만 하다 죽었더라도 매일 통장 불어나는 숫자가 맛난 음식을 먹는 것보다 더 행복했다면 어떨까. 내가 지금 당장 즐기는 것보다 훗날 자식이 누리는 게 더 즐겁다면 또 어떨까. (...)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매 순간 가장 행복한 삶을 고르는 것이다. (...) 모으는 자체로 가장 행복한 당사자는 이미 그만의 방식으로 천국에서 살다 간 것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삶이란 어쩌면 일종의 복식부기처럼 때로 합리적인, 가끔은 불합리한, 매 순간 선택을 하다 어느 순간 훌쩍 가는 과정이다. -〈삶도 출납出納이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