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엔 진입장벽이 있습니다. 막연히 어렵고, 나와는 거리가 먼 세계처럼 느껴지죠. 그런데 이게 발레 진입장벽의 거의 전부이기도 합니다. 줄거리와 등장인물 정도만 가볍게 알고 들어가면 발레가 먼저 말을 걸어오거든요. 저도 직접 보기 전까지는 몰랐어요! p.4
소설책처럼 술술 읽히지만, 책을 덮고 나면 주요 개념이 머리에 남아 공연 볼 때 저절로 적용되는 발레 교양서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제가 천천히 넘었던 진입장벽을, 여러분은 이 책 한 권으로 훨씬 빠르게 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뒤에는 막연히 “아름답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껏 들떠서 '어떤 점이 그렇게 흥미롭고 재밌었는지' 이야기하게 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p.5
발레는 대사가 없기 때문에 주로 유명한 그리스 로마 신화나 인기 소설에서 줄거리를 따와요. 그러니 기본적인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많은 무용수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여러 인물들을 사랑과 음모 등의 관계로 줄줄이 엮어요. 우리 입장에서는 낯선 외국어로 된 이름들이 아침 드라마처럼 얽히고설키니, 줄글로 읽어도 기억하기 어려운 거죠. 그래서 이 책 2막에서는 각 작품을 소개할 때 두 가지를 먼저 짚어 드려요. p.21
좁은 의미의 고전 발레는 클래식 발레를 가리키지만, 넓게는 〈고집쟁이 딸〉 같은 초기 작품부터 낭만 발레, 클래식 발레까지를 아우릅니다. 반대로 현대 발레는 넓은 의미에서 발레 뤼스 이후 신고전주의부터 컨템포러리까지를 가리켜요. 발레 뤼스는 그 경계에 있어요. 기존 문법을 뒤집으며 현대 발레의 문을 열었지만, 그 뿌리는 여전히 고전 발레에 있었거든요. 지금은 이 정도의 큰 그림만 기억해 두세요. 발레의 역사는 앞선 시대의 것을 이어받으면서 동시에 거기에 도전해 온 과정이에요. p.22
발레를 처음 보고 나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어요. “뭘 봐야 할지 모르겠어요.” 2시간 동안 대단한 걸 본 것 같기는 한데, 정확히 뭔지는 알 수 없는 그 느낌, 익숙하신가요?
사실 발레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 친절한 예술이 아니에요. 현대미술이 아는 만큼 보이듯이, 발레도 보는 법을 알아야 보이기 시작해요. 그래서 이번 장에서는 발레를 보는 눈을 만들어 드리려고 해요. p.25
발레를 처음 보면 당황하는 순간이 있어요. 공연이 시작됐는데 주인공이 안 나오는 거예요. 스토리 중심의 작품이었다면 이건 이상한 구성이었겠지만 발레는 춤이 메인이에요. 그래서 관객의 눈과 귀가 발레라는 세계에 완전히 적응하고 나면 주인공이 나오는 거예요. 조연들의 춤에도 각자의 하이라이트가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볼거리가 계속 이어지죠.
같은 맥락에서 음악도 단순한 배경이 아니에요. 장면이 전환되기 전에 음악이 먼저 바뀌어요. 특정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반복되는 선율이 있으면, 그게 그 인물의 테마예요. p.35
이 책이 여러분에게 발레라는 새로운 취향 하나를 더해 주고, 그 취향 덕분에 평범한 삶에서 기다리고 설레고 아름답다고 느낄 일이 조금이라도 늘어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p.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