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숍에서 시작해 내 코와 눈, 주식 계좌까지, 이미 우리 일상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기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 기후 문제의 한가운데서 국회는 무엇을 하는지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기후위기를 걱정하자는 이야기는 너무 진부하다. 기후위기라는 도전과제에 인류가 어떻게 응전해야 하는가, 그래서 기후를 통해 세상의 다음이 보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국회에 들어온 첫날부터 내 머릿속에는 하나의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어렵게 결심해 시작한 정치다. 여기까지 왔으면 뭐라도 바꿔야 내가 만족할 것 같았다. 그것이 법 하나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삶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는 변화일 수도 있다.
- 8쪽, 프롤로그 중에서
결국 나는 막내 직원으로서 상당히 당돌한 일을 했다. 본부에 메일을 쓴 것이다. “우리 지부를 감사하러 와주세요!” 놀랍게도 정말 본부에서 감사를 나왔다. 플랜 인터내셔널 회장과 감사 담당자가 온 게 아닌가. 당시에는 영어를 하는 거의 유일한 직원이었던 내가 자연스럽게 그들과 함께 움직이게 됐다. 감사팀이 질문하면 답했고, 자료를 요청하면 가져다주며 조직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 일은 생각보다 큰 변화를 가져왔다. 본부는 한국 지부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외국인 CEO를 한국에 파견했다. 새로운 CEO가 오자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들어왔고 홍보 전략이 생겼다. 후원자를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달라졌다.
더불어 내 활동 영역도 넓어졌다. 나는 글로벌 홍보파트가 있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각 나라 담당자들과 함께 홍보 마케팅 교육도 받았다. 그 과정과 내용들이 나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진짜 내가 꿈꾸던 일을 하게 된 것이다.
- 27쪽, 1장 ‘세상을 배우다, 기후를 만나다’ 중에서
기후 문제에 대응하는 최전선의 움직임을 보면 볼수록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세계는 지금 ‘지구를 지키자’는 호소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세부적인 고민과 노력이 새로운 산업으로까지 빠르게 뻗어가고 있는데, 우리의 걸음이 너무 느린 것 같았다. 내가 관심 가졌던 탄소시장만 해도 곡물시장, 주식시장만큼 중요한 시장이 될 것이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큰 산업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정책 입안자들조차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내 안타까웠다. 2024년 세바시(세상을바꾸는시간 15분)에 출연했을 때에도 탄소시장을 소개했다. 열심히 뛰어다니며 설득하고 알리고자 했지만, 움직임은 더뎠다. 어떡하면 좋지!
- 62~63쪽, 1장 ‘세상을 배우다, 기후를 만나다’ 중에서
공약은 국민도 이해해야 하고, 기자도 한눈에 핵심을 알아야 했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공약의 생명력이 달라졌다. 나는 제일 먼저 ‘기후대응기금 확대’ 공약에 태클을 걸었다. 초기 내용은 ‘기후대응기금 확대’까지였다.
“숫자를 넣어야 해요. 몇 년도까지, 얼마를 하겠다! 이렇게 구체적이어야 와닿지요.”
나는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자고 제안했다. 기자 출신 지인에게 소위 ’야마‘가 잡히는 제목에 대해 조언을 구한 결과다. ‘기후대응기금 규모를 2조 4,000억 원에서 2027년까지 5조 원으로 2배 늘리는 기후 미래 공약’이라는 문구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목표가 구체적이어야 의지도 보이고 기사화도 된다. 그동안의 경험에서 터득한 것이다. 국제 NGO에서 마케팅을 담당하고 기후변화센터에서 사람들을 설득하며 이런 디테일을 배우게 됐다. 정책과 법안을 만드는 일도 역시 사람들을 설득하는 작업이기에 그동안의 노하우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 84~85쪽, 2장 ‘좌충우돌 의회 분투기’ 중에서
9월에는 ‘국민의힘 초선의원 공부모임’의 두 번째 행사를 내가 주최했다. 주제는 ‘저탄소 대전환 시대, 신·재생에너지는 해답이 될 수 있는가?’였다. 재생에너지 확대의 필요성만 이야기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좁은 국토와 높은 발전비용, 부족한 전력망, RE100의 현실적 한계 등 신재생에너지를 둘러싼 문제들을 제대로 짚어보자는 자리였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듣고 토론하다 보니 의원들도 평소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사실들을 접하게 됐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 많았다”, “정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바쁜 일정을 쪼개 참석한 의원들이 친목 이상의 무언가를 얻어 가게 하고 싶었는데, 그 목적만큼은 제대로 이룬 셈이었다.
다선 의원들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생초보 의원의 행보치고는 꽤나 적극적이다. ‘인싸’의 기질은 어쩔 수 없는 건가? 이후 나의 ‘일을 벌이고’ ‘벽을 넘나드는’ ‘인싸’ 행보는 스케일을 더 키워나간다. 나도 궁금하다. 내가 또 무슨 일들을 벌이게 될지.
- 113~114쪽, 2장 ‘좌충우돌 의회 분투기’ 중에서
어느 지역에서 폭염과 홍수, 산사태 등의 위험이 커지는지 조사하고 예측해야 한다. 노인과 어린이, 저소득층, 야외노동자처럼 기후위기에 더 취약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파악하고 지원해야 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각자의 적응 대책을 만들고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흩어져 있는 기후위기 정보를 한곳에 모아 국민과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도 필요했다.
그 문제의식에서 2026년 2월 「기후위기 적응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발의했다. 법안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사전 대비’였다. 기후재난이 벌어진 다음 얼마나 보상할 것인가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위험을 파악하고 줄이는 체계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앞서 추진해 온 기후보험 역시 그 체계 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회에서는 내가 발의한 법안을 포함해 여러 의원이 낸 적응 관련 법안을 함께 논의했다. 여야 법안은 하나의 대안으로 통합됐고, 2026년 8월 13일 기후특위에서 합의로 의결됐다.
- 142~143쪽, 3장 ‘법으로 세상에 답하다’ 중에서
태안발전본부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충현 씨 사건도 비슷했다. 제보를 받고 태안의 작업장만 간 것이 아니다. 고인의 고향까지 찾아갔다. 지인을 만나고 사회관계망서비스 기록을 확인하며 괴롭힘 정황을 모았다. 고용노동부는 따돌림 정황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답만 내놓았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의원실에서 현장에 가 몇 사람만 만나도 확인할 수 있는 정황을 왜 정부는 찾지 못했을까? 찾지 못한 것인지, 찾으려 하지 않은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감에서 노동부의 조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따졌고, 장관으로부터 재조사 약속을 받아냈다.
나는 다음 국감에서도 아마 얌전히 앉아 자료만 읽지는 못할 것이다. 작업복이 필요하면 또 입을 것이고, 현장에 가야 하면 직접 갈 것이다. 정부가 못 찾았다고 하면 내가 찾아올 것이다. 약속을 받았으면 실제로 지켰는지 다시 물을 것이다. 국회의원이 국감장에서 가장 무서워 보일 때는 호통을 칠 때가 아니다. 지난해의 약속을 다시 꺼내, 이행 여부를 물을 때다.
- 174~175쪽, 3장 ‘법으로 세상에 답하다’ 중에서
민생법은 거창하지 않을 수 있다. 국제회의에서 박수를 받지도 않고, 정치권 전체를 뒤흔드는 뉴스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부모가 공원에서 안전하게 걷고, 아이가 한순간의 실수로 평생 가해자의 짐을 지지 않게 만드는 법이라면 충분히 중요하다.
나는 기후 전문가로 국회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기후법안만 만드는 의원으로 남고 싶지는 않다. 국민이 매일 겪는 불편과 위험을 찾아내고, 사람들이 “정치가 이런 것도 바꿀 수 있구나”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민생정치다.
킥라니 금지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부터다. 통과될 때까지 부처를 찾아가고, 여야 의원을 설득하며, 사고가 날 때마다 다시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이 법만큼은 정말 ‘김소희법’으로 남기고 싶다. 그 이름이 붙는 날, 시민들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인도를 걸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 192쪽, 3장 ‘법으로 세상에 답하다’ 중에서
기후는 더 이상 환경 분야의 작은 시장이 아니다. 에너지와 제조업, 금융과 건설, 농업과 물류, 데이터와 인공지능까지 모두 다시 짜는 거대한 산업 전환이다. 그래서 나는 강연을 할 때마다 말한다. “기후변화 때문에 우울해하지 마세요. 이제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에 기후를 붙여 보세요. 기후위기를 기후 기회로 만들어 보세요.”
생각해 보자. 동해에서는 명태와 오징어가 줄어든 자리를 방어가 채우고 있다. 사과의 생산지가 북상해 강원도 철원까지 이르렀다. 대신 사과의 고장이던 경북에서는 한라봉과 천혜향, 애플망고 같은 아열대 과일이 새로운 소득원이 되고 있다. 기후변화는 많은 것을 빼앗았지만, 동시에 다른 가능성도 함께 가져오고 있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모든 것이 기회가 된다. 금융을 공부했다면 탄소시장과 기후금융을 다룰 수 있다. 회계사는 기업의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검증하 는 일을 할 수 있고, 법률가는 기후규제와 국제무역 문제를 다룰 수 있다. 공학자는 에너지를 덜 쓰는 기술을 만들고, 문과 출신은 국제협상과 사업기획, 커뮤니케이션에서 역할을 찾을 수 있다.
- 217~218쪽, 4장 ‘다음은 당신 차례’ 중에서
오랜 고심과 여러 차례의 수정을 거친 끝에 2026년 8월 27일 「기후테크기업 육성 및 기후테크산업 생태계 조성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우리나라 기후테크 기업 육성과 생태계 조성을 전담할 ‘기후테크진흥원’을 만들도록 하고, 기술의 실증과 사업화부터 시장 진입, 투자와 금융 지원, 해외 진출까지 기업의 성장 단계별로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담았다. 공공이 초기 시장을 열어주고 실증의 기반이 되어주는 한편, 새로운 기술이 낡은 규제에 막혀 시장에 나오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규제특례와 임시허가의 길도 열었다.
좋은 기술을 개발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가진 기업이 살아남아 성장하고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고 싶었다. 기후테크 기업과 산업 생태계를 함께 키우자는 나의 취지에 공감한 의원 42명이 뜻을 모아 법안을 발의했다.
- 225쪽, 4장 ‘다음은 당신 차례’ 중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많다. 앞으로 무엇을 더 하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궁금한 것은 계속 물을 것이고, 문제는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필요하다고 생각한 일이라면 될 때까지 방법을 찾아볼 것이다.
나도 정치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밖에서 오랫동안 정책을 제안하고 정부를 설득해 봤지만, 국회에 들어와 보니 법 하나와 예산 하나가 움직일 때 만들어지는 변화의 크기는 달랐다. 그래서 정치를 정치인들만의 일로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시민들이 정치인을 지켜보고, 질문하고, 요구해야 한다. 투표도 하고, 의견도 내고, 잘하면 잘한다고 말하고, 못하면 왜 못했느냐고 물으면 된다. 그렇게 지켜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정치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 246쪽,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