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
쓰레기 문제와 나의 인연은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식물에 관심이 많고 썩 잘 길러낸다는 이유로 원예과학과에 진학했는데, 대학에서는 내가 생각했던 평화롭고 목가적인 들판의 풍경 속의 농장이 아닌 산업형 농업에 대해 공부하게 됐다. 좋아하는 식물을 원 없이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기대와는 달랐던 것이다.
‘식량 산업’의 눈으로 바라보는 식물은 마치 생명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인간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먹어야 하고, 농민은 계속적인 수입이 필요하기에 계절과 상관없이 작물을 길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설비와 자재가 필요하다. 그 속에서 펼쳐진 식물의 삶은 낮과 밤, 계절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평생을 너무 많은 생명들과 밀식된 채 부대끼며 자라야만 한다. 인간에게 속아넘어가 통제된 환경 속에서 살다 가는 식물의 생이 안타깝고 미안하게 느껴졌다.
다른 산업 영역과 마찬가지로 농업에도 기술과 기계가 발전하고 첨단 설비가 빠르게 쏟아져 나온다. 사람들은 할 일 없으면 시골 내려가서 농사 지으며 살겠다는 말을 쉽게 하는데, 농사에 이토록 많은 장비와 자재가 필요한 줄은 알았을까? 거기에 그 거대한 설비들이 기술의 변화에 뒤처지거나, 고장나거나 또는 농사를 그만두어서 못 쓰게 된다면 거대한 폐기물 더미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그뿐 아니라 농사 짓는 과정에서의 편의를 위해 필요한 멀칭 비닐이나 끈 같은 사소한 것들뿐 아니라, 타산이 맞지 않아 버려지는 농산물까지 버려진다. 결국 우리가 먹는 것들은 많은 자본을 투입해 많은 쓰레기를 생산하며 만들어지는 구조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진 채 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농업과 상관없는 일을 하며 밥벌이를 했지만, 나는 돌고 돌아 다시 농업으로 돌아왔다. 학교에서 배운 농사는 아니었다. 내 바람대로 땅에 비닐을 덮지 않고, 식물이 제 본성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자재만 사용하는 농민들을 만나 그 방식을 배웠다. 지금은 동네에서 작은 텃밭 두 곳을 일구고, 공원에서는 음식물쓰레기를 퇴비화하기 위한 정원을 가드닝한다.
이렇게 땅을 일구고 식물을 기르면 농사로 인해 발생되는 쓰레기보다 없애는 쓰레기가 더 많아진다. 이런 방식의 삶을 누구나 살아갈 수 있다면, 쓰레기 문제가 조금이나마 줄어들지 않을까? 내가 실천하기에 너무 멀고 거창한 방식이 아니라 만만해 보일 정도로 쉽고, 서로 조금씩 돕는 방식이라면 정말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 여정에 대한 이야기다.
쓰레기가 문제라면 아예 없애 버리면 되지 않을까?
기후 위기가 인류의 생존을 좌우한다는데 세상은 끊임없이 소비만을 말한다. 언제부턴가 기후 위기에 대한 대안이라며 “친환경 제품으로 바꿔보세요”라는 권유가 쏟아져 나온다. 환경에 좋다는 말에 나도 텀블러, 스테인리스 빨대, 소프넛, 밀랍 코팅된 헝겊, 대나무 칫솔을 사기 시작했다. 단지 친환경적 실천을 하려던 것뿐인데, 소재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쌓여가는 물건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친환경 제품은 기성품보다 값이 비쌌고, 어떤 물건들은 아무리 써 보려고 노력해도 손에 익지 않아 서랍 한구석에 방치되기 일쑤였다. 이렇게 반복되는 소비를 친환경이라고 불러도 될까?
어떤 소재의 물건이 더 친환경이라는 조언은 대부분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플라스틱이 섞여 있으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환경 파괴범 대하듯 잔뜩 열을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숨만 쉬며 살자’는 결론을 내고 싶을 만큼 소모적이었다.
뉴스나 다큐멘터리는 세계 각지에 쓰레기 산이 생겨나고, 그 쓰레기가 국경을 넘나들며 다른 나라의 환경과 노동자, 지역 주민, 동물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혹시 내가 버린 쓰레기도 저곳에 섞여 있는 건 아닐지 두렵지만, 평범한 내가 만들어 낸 쓰레기가 버려진 이후에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재활용되는지 모든 과정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이 문제는 나에게 부끄러움과 죄책감, 답을 구할 수 없는 고민을 안겨 주었다. 그렇다면 쓰레기를 만들지 않거나 아예 없애 버리는 방법은 없을까?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소비를 줄이는 방법으로 시도해 볼 수 있지만, 쓰레기를 없애는 방법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리사이클’, ‘재활용’으로 둔갑해 더 복잡한 소재의 새로운 쓰레기를 낳는 가짜 친환경 대신 아예 없애 버리는 획기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적어도 음식물쓰레기 만큼은 완전히 없앨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바로퇴비화다. 플라스틱이나 비닐은 아무리 깨끗이 씻고 버려도 결국 제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음식물쓰레기는 내 손으로 완전히 흙으로 돌려보내 소멸시킬 수 있는 유일한 쓰레기였다. 이 배움은 무력했던 나에게 다시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강렬한 자기효능감을 주었다. 플라스틱이나 금속과 달리, 음식물은 원래 흙에서 왔다. 그러니 흙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퇴비화는 소비하는 대신 소멸하는 방식이다. 고가의 음식물처리기도 필요 없고, 부엌에서 나오는 것들이 그대로 재료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모든 과정이 끝난다. 쓰레기를 내놓는 순간 그것은 내 손을 떠난다. 어딘가로 실려가고, 뒤섞이고, 누군가의 노동에 맡겨진 뒤에 어디로 닿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 퇴비는 부엌에서 시작해 흙에서 끝난다. 전기를 스스로 만들어 쓰는 사람들off the grid처럼, 거대한 시스템에 실려 보내는 대신 내가 사는 자리에서 완결시키는 것이다. 필요한 건 통 하나와 약간의 실천뿐이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처음에는 혼자 시작했다. 집 부엌에서 작은 퇴비통 하나에 조금씩 음식물쓰레기를 모았다.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는 퇴비화 방법을 온라인에서 찾아보고 시도했지만, 실시간으로 조언을 얻을 수도 없었고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에 두려웠다. 하지만 몇 주를 무사히 보내며 괜찮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어찌저찌 퇴비를 만드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문제가 생겼다. 퇴비통을 비울 곳이 필요해진 것이다.
퇴비통을 비우기 위해 동네 공원에 분해정원이라는 장소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나를 포함해 네 명이 시작했는데 지금은 이웃들이 드나들며 열 명 남짓으로 유지되고 있고, 또 동네 카페 한 곳이 참여한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모여 각자의 퇴비통을 비우고, 정원을 가꾸고, 일상을 나눈다. 매주 정원에 나와 식물을 돌보는 사람도 있고 모임 날에만 얼굴을 비추는 이도 있다. 어떤 이는 1년에 한두 번 겨우 얼굴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느슨하게 연결되어 서로를 다독이며 이 실천을 6년째 이어오고 있다.
분해정원을 넘어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하기 위해 퇴비클럽을 만들었다. 농민과 소비자가 모이는 농민시장에서 농가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 특별한 비용과 에너지를 쓰지 않고도 도시에서 만든 퇴비가 농가로 가고 다시 먹거리로 돌아오는 순환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과 나눈 이야기, 함께 겪은 시행착오를 이 책에 담았다. 퇴비화는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는 실천이 아니다. 내가 먹는 것이 어디서 왔는지, 내가 버리는 것이 어디로 가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농민을 만나고, 이웃을 만나고, 흙을 만날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우리는 저마다 혼자 살아갈 수 없이 연결된 존재라는 걸 느끼게 된다.
유기농펑크 선언
유기농펑크(Organic Punk)는 헤비메탈 밴드를 하는 친구가 내게 장난스레 지어준 별명이다. 어쩌면 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태도일지 모른다. 거창한 환경운동에 뛰어들거나 완벽한 무결점의 활동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끝없이 소비하라고 등 떠미는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 대신, 부엌에서 생긴 음식물쓰레기를 직접 흙으로 소멸시키며 눈에 보이는 순환의 고리에 참여하기만 하면 된다.
이 책은 완벽한 정답지나 착한 환경 에세이가 아니다. 쓰레기를 흙으로 돌려보내며 기후우울증을 씹어 먹은 분해자의 기록이자, 더 많은 동료를 이 판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선언문이다. 실패도 많았고, 좌절도 많았다. 그래도 계속했다. 이것이 끊임없이 사고 버리는 굴레 속에 사는 인간인 나를 더 당당하고 즐겁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쓰레기를 만드는 대신 소멸시키는 이 은밀하고 짜릿한 과정에 동참하는 유기농펑크 크루가 되기를 바란다. 아파트에 살아도, 마당이 없어도, 틈을 낼 수 없는 1인가구여도 괜찮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방법 중 하나만 골라 시도해보면 된다. 가능하다면 소수라도 좋으니 누군가와 함께하면 좋겠다. 혼자서는 금방 지치지만, 함께하면 오래 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많은 우리를 만들면 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