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저무는 인텔의 시대, 멀고 먼 제왕의 귀환
인텔의 경영에는 크게 세 가지 실책이 있었다. 2000년대 후반에 아이폰을 기점으로 한 모바일 인터넷의 도래를 예측하지 못한 점, 2010년대 중반에 10나노미터급 제조 기술 개발의 실패로 첨단 경쟁에서 물러난 점, 2010년대 후반에 엄청난 전력이 소모되는 AI 시대를 예측하지 못하고 전력 절감 성능을 소홀히 다룬 점이다. 각각의 실책이 현재의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
수직 통합 모델을 고수하는 인텔에게 제조 기술은 자사 제품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게다가 성장 영역으로 보는 위탁 생산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면 수익의 주축인 서버용 CPU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본문 61쪽〉
제2부 AI 패권을 잡은 엔비디아, 왕위에 오른 자가 짊어진 숙명
화웨이의 새로운 AI 서버는 이 구도를 뒤바꿀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성능이다. 우리는 사고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라는 목소리가 퍼졌다. 황 CEO 본인도 “중국이 우리 바로 뒤에 다가오고 있다.”라며 경종을 울렸다. 황 CEO는 2025년 5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기술 행사에 참석해서 “우리가 중국에 수출 제한을 받고 있는 동안, 중국의 AI 반도체 시장은 앞으로 몇 년 안에 5백억 달러에 육박할 것이다. 원래라면 얻을 수 있었던 비즈니스 기회다.”라고 기회 손실의 규모를 주장했다. 〈본문 90쪽〉
엔비디아는 개발자를 위한 소프트웨어 환경을 조성해서 개발자를 끌어들여 GPU 분야에서 독주하는 상태를 만들었다. 그 결과 대량의 데이터 처리가 필요한 AI 분야에서 꽃을 피웠다. 앞으로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이 엔비디아 없이 독자적인 AI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한다면 미국과 중국 이외의 제3국에서도 엔비디아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본문 91쪽〉
제3부 견고한 TSMC, 최첨단 제조를 주도
반도체 제조에서 최강이 된 TSMC에도 과제가 있다. 대표적으로 대만 경제가 직면한 ‘다섯 가지 부족’이다. 바로 전력, 물, 토지, 현장 작업자, 고급 인재의 부족을 의미한다. 전 세계 첨단 반도체 수요의 상당 부분을 떠안고 있는 TSMC의 성장을 뒷받침하려면 전력과 물, 토지, 인력 같은 막대한 자원이 필요하다. 규슈와 비슷한 면적에 인구 약 2,300만 명이 사는 대만 안에서 자원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본문 164쪽〉
제4장 메모리 특수를 맞은 삼성과 SK, 반도체 양강 선두 경쟁
삼성과 SK가 제시한 제조 목표 실현은 정부와 지자체와의 협력에 달려 있다. 정부는 전력과 용수를 2031년까지 공급하겠다고 약속하고, 인프라 정비를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 프로젝트 규모가 지나치게 큰 탓에 토지 매입이나 법적 절차가 쉽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
용인 지역은 대만의 TSMC, 미국의 인텔, 일본의 반도체 클러스터와의 치열한 ‘국가 경쟁’의 최전선이기도 하다. 한국이 반도체 강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이 메가클러스터의 성공 여부, 그리고 정부와 민간이 함께 인프라를 갖춰 나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 광활한 땅에 한국 경제의 미래상이 그려지고 있다. 〈본문 187쪽〉
이번 AI 특수를 구조적인 전환으로 보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KPMG FAS의 오카모토 준 집행임원 파트너는 “반도체 사이클의 침체 폭이 이전보다 작아지면서 시장이 계단식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SK하이닉스의 곽노정 CEO는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한 10일에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은 2030년을 지나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강한 수급 전망을 보여주었다. 〈본문 232쪽〉
제5부 자립자강을 추진하는 중국의 반도체 공급망
한국 정부는 반도체를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하고, 기업에 기술자 명단 제출을 요청해서 출 입국을 관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 기업이 제시하는 고액 연봉에 끌리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한국인 기술자들이 가져온 기술 덕분에 CXMT는 DRAM 양산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CXMT는 생성형 AI용 고속 처리 메모리인 HBM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허페이의 주요 거점에서 HBM 생산을 시작했으며 상하이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본문 280쪽〉
제6부 부활을 목표로 하는 일본
일본은 과거 30년 동안 반도체 국가 프로젝트 실패를 거듭해 온 역사가 있다. 2001년에는 미세화 기술 개발 ‘MIRAI’ 프로젝 트와 설계·제조 기술 개발 ‘아스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지만, 전부 도중에 흐지부지되었다. 2025년 6월까지 경제산업성 정보산업 과장을 역임한 가나자시 히사시는 과거 국가 프로젝트에 관해서 “국내에서 자국중심주의에 빠지고 해외 제휴에 소극적이었다.”라고 지적했다. 이제 일본에는 첨단 기술 기반이 없다. 따라서 라피더스 지원에서는 해외 기관과의 제휴를 적극적으로 촉진하고 있다. (중략)
경제산업성의 관료들은 예전부터 “임기가 끝나면 책임도 끝난다.”라는 부처 문화가 깊게 자리하고 있다.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고도 처참한 실패의 흔적만 남긴 국가 프로젝트는 경제산업성의 그런 무책임주의가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본문 326쪽〉
제7부 국가 유치를 통해 확산으로
역사는 반복된다. 중국의 노동 비용도 상승하면서 전자기기 공급망은 새로운 터전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이 동남아시아이며, 그 흐름은 다시 인도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14억 명의 인구를 가진 인도는 미래 시장으로도 유망하게 평가되며, 공급망의 ‘종착역’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본문 351쪽〉
말레이시아는 알려지지 않은 반도체 강국이다. 2023년 반도체 수출액은 748억 달러(약 113조 원)로 10년 전과 비교해 4배 확대되었다. 일본보다 2배 이상의 규모를 자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에서 말레이시아 기업의 존재감은 거의 없다. 그 주체는 미국 인텔,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독일 인피니언 테크놀로지스 등 서구 기업들이다. 이런 기업들이 반도체 칩 조립을 담당하는 후공정 공장을 말레이시아에 집중시키고 있으며, 이를 통해 세계 각지에 반도체 칩을 수출하기 때문에 반도체가 말레이시아의 주요 수출 품목이 된 것이다. 〈본문 360쪽〉
“만약 신이 다시 기회를 주면서 ARM과 엔비디아 중 어느 쪽을 살지 선택하라고 해도 나는 1초도 망설임 없이 ARM을 고를 것이다.”
소프트뱅크 그룹의 손정의 회장 겸 사장은 2024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런 생각을 밝혔다. ARM은 2016년에 SBG가 3조 3,000억 엔에 전 주식을 매입했다.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반도체에 기본 설계도를 제공하는 ARM에 대해 손정의 회장은 ‘기술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수정구슬’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다양한 제조업과 IT 서비스에서 기술 혁신의 원동력 이 되는 반도체. 그 설계도의 지적 재산(IP)이라는 최상위 단계를 장악해 세계 테크 기업들이 다음에 무엇을 내놓으려 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본문 380쪽〉
SEMI에 따르면, 2025년에 착공 예정인 반도체 공장은 전 세계에서 18곳에 달한다. 또한 2030년까지 전 세계에 새로 100곳의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 있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이런 증산 투자에 걸맞은 수요가 같은 기간에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TSMC 창업자 장중머우가 “세계화는 거의 죽었다.”라고 말했듯이 반도체 산업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국제 분업 시대는 끝을 고했다. 앞으로도 국가와 지역에 따라 반도체 공급망은 분열을 향할 것이다. 생산 거점을 확대함에 따라 반도체 산업은 이제까지 없었던 수준의 공급 과잉 리스크에 직면하게 되었다. 〈본문 3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