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바로 사르트르가 자유를 논할 때, 보부아르가 억압을 숨겨진 기전을 드러낼 때, 키르케고르가 불안을 통찰할 때, 카뮈가 저항을 논할 때, 하이데거가 과학 기술의 잠재성을 분석할 때, 또는 메를로퐁티가 인지과학을 논할 때 종종 최신 뉴스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다. 그들의 철학은 여전히 흥미롭다. 그들이 옳거나 틀리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 철학이 삶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며 인간의 가장 큰 질문 두 가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선생님, 실존주의는 참 끔찍해요!」, 52쪽
만일 당신이 창문을 통해 엿본다면, 우선 친근하게 서로 기대고 있거나 파이프를 뻐끔거리며 논쟁하거나 주장을 강조하고 있는 친근한 광경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웨이터는 테이블 사이를 미끄러지듯 지나가고, 유리잔 부딪치는 소리, 달그락거리는 컵 소리도 들린다. 앞쪽 가장 많은 사람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는 땅딸막한 이와 터번을 두른 우아한 여성이 젊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다. 뒤쪽에 있는 비교적 조용한 테이블에는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다. 몇 명은 댄스플로어에 나가 있다. 아마도 누군가는 위층의 객실에서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딘가에서 성난 목소리들이 들려오는가 하면 어두운 곳에서 연인들이 속삭이는 소리도 들린다. 우리도 들어가서 아마도 앞쪽이나, 아니면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다. 엿들을 수 있는 대화들이 너무도 많아서 어느 쪽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 고민이 된다. 하지만 우선 웨이터가 주문받으러 오기까지 들어보고 싶은 것은…
「선생님, 실존주의는 참 끔찍해요!」, 56쪽
하이데거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닐세, 나는 내가 맡은 일에 충실하겠네. 이제 와서 보고서 전체를 물리고 쓰지 않겠다고 할 수는 없네. 사람들은 이미 내가 대학 당국에 보고서를 제출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일세. 할 수 있는 게 없네. 나를 원망하지는 말게.” 이 마지막 말이야말로 뮐러를 가장 황당하게 만들었다. 하이데거가 다른 사람에게 닥칠 위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일에만 신경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날 헤어질 때 하이데거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문제는 제가 당신을 원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문제는 저의 생존입니다.”
「모두이면서 아무도 아닌」, 154쪽
해나 아렌트는 1949년 야스퍼스에게 쓴 편지에서 하이데거가 나쁜 인격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다만 그에게 인격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르트르도 1944년의 에세이에서 하이데거의 나치주의에 관해 언급하며 매우 유사한 말을 했다. “하이데거의 안에는 인격이란 것이 없었다. 그것이 진실이다.”일상성의 위대한 철학자가 정작 일상적 인간의 삶에 관한 무언가만큼은 끝내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모두이면서 아무도 아닌」, 155쪽
가스통 갈리마르는 그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좀 더 좋은 제목을 생각해 보라고 했다. ‘멜랑콜리아’라는 제목으로는 잘 팔릴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대안들을 제시했다. 그가 이 책 의 제목에 관해 1932년에 메모해 두었던 “우연성에 관한 진실”, 아니면 “정신적 고독에 관한 에세이”는 어떻겠냐고 했다. 이런 제안들에 갈리마르가 질겁하자, 사르트르는 방침을 바꿔 어떤 모험 이야기도 없다는 것을 구태여 설명하는 표지 카피와 함께 역설적인 제목인 “앙투안 로캉탱의 기이한 모험”으로 하려 했다. 결국엔 갈리마르 자신이 나서서 간단하고도 충격적인 제목인 『구토』로 하자고 제안했다.
「꽃이 만발한 아몬드 나무를 씹다」, 181쪽
메를로퐁티는 보부아르보다 단지 두 달 정도 앞선 1908년 3월 14일에 태어났으며 그녀보다 훨씬 더 자신에게 관대했다. 그는 매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덕분에 태연자약한 성격으로 사회적 상황들을 순조롭게 헤쳐 나왔다. 그는 아이였을 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랑과 격려의 칭찬을 받고 자랐다고 느꼈고, 그 덕분에 평생토록 밝은 성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가끔은 짜증스러웠지만, 본인이 1959년의 라디오 인터뷰에서 말한 바와 같이 거의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며 지냈다. 그는 이 책 전체에서 그렇게 느끼며 살아간 거의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소중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메를로퐁티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에게서 발산되는 행복의 광채를 느꼈다.
「꽃이 만발한 아몬드 나무를 씹다」, 187쪽
보부아르에게 삶이 주는 육체적 달콤함은 전혀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리 많아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이였던 시절, 그녀는 보이는 모든 것이 먹고 싶었다. 그녀는 사탕가게 진열장을 탐욕스러운 눈으로 노려보곤 했다. “찬란하게 반짝이는 설탕에 절인 과일들, 은빛 구름 같은 젤리들, 형형색색으로 피어난 꽃봉오리 같은 초록색, 빨간색, 주황색, 자주색의 신맛 나는 과일 사탕들. 나는 그것들이 내게 약속하는 맛의 즐거움만큼이나 색깔들 그 자체를 갈망했다.” 그녀는 생강 과자로 만들어진 집부터 먹어치웠던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처럼 우주 전체가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어른이 되어서도, “꽃이 만발한 아몬드 나무를 오도독 깨물어 먹고 싶었고, 무지갯빛 누가 사탕 같은 해 질 녘을 베어 물고 싶었다”라고 적었다.
「꽃이 만발한 아몬드 나무를 씹다」, 196쪽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사르트르는 강박적일 정도로 관대했다. 돈이 들어오기 무섭게 마치 손에 든 수류탄을 자신에게서 멀리 던져버리려는 듯이 남에게 주어버렸다. 만일 자신 스스로가 돈을 써야 할 경우라 해도, 물건을 사는 데 쓰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밤 외출 비용으로 썼는데, 무도장에 가서 큰돈을 쓴다든지 택시를 타고 간다든지, 기타 등등, 간단히 말해 돈을 쓰고 남은 자리에 추억, 혹은 추억 이하의 무엇만을 남겨야 했다. 그가 웨이터들에게 주는 팁은 전설적이었다. 어디든지 커다란 뭉치의 지폐 다발을 들고 다니면서 지폐들을 껍질 벗기듯이 뿌렸다. 그는 자신의 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관대했다. 아낌없이 에세이를 써 주거나 강연을 하는 것은 물론, 누구든지 부탁하기만 하면 서문을 써 줬다. 그에게는 말조차도 신중히 아껴 써야 할 것이 아니었다.
「꽃이 만발한 아몬드 나무를 씹다」, 199쪽
오랜 세월을 보낸 여느 결혼생활에서나 존재하는 함께 나눈 추억과 서로의 관찰 내역 및 둘 사이의 농담들이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었다. 서로 만나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이 늘 써먹는 농담 하나가 생겼다. 동물원에 갔을 때, 둘은 굉장히 뚱뚱하고 불쌍하게 생긴 바다코끼리를 보았다. 그놈은 관리인이 입에 물고기를 쑤셔 넣는 동안 탄식했다가 마치 애원하는 것처럼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 후부터 사르트르가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면, 보부아르는 그에게 그때의 바다코끼리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 사르트르는 눈을 위로 뜨고 우스꽝스러운 한숨을 크게 내쉬었는데, 이로써 둘 다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꽃이 만발한 아몬드 나무를 씹다」, 201쪽
소설가인 로제 마르탱 뒤 가르는 1936년 9월 친구에게 적은 편지에서 당시의 일반적인 정서가 담긴 목소리를 들려준다. “전쟁만 아니라면 뭐라도 좋아! 그것이 어떤 것이라 해도! 스페인을 파시즘이 장악해도! 그러니 내게 윽박지르지 말게. ‘프랑스를 파시즘이 장악해도!’ 마찬가지로 나는 찬성일세.” 보부아르도 비슷한 생각으로 사르트르에게 말했다. “프랑스가 전쟁에 휘말리는 것보다 차라리 나치에게 장악되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하지만 사르트르는 가까이서 직접 나치당을 봐왔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 그의 상상력이 제공한 끔찍스러운 세부 설명과 함께 답했다. “내 원고들을 먹어버려야 하거나, 니장이 찻숟가락으로 눈이 파내지는 상황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소.”
「원고를 먹어버려야 하는 상황을 바라지 않소」, 206쪽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카뮈를 인간적으로 매우 좋아했지만, 누구도 카뮈의 부조리에 대한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삶은 아무리 광대한 관점에서 본들 부조리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부조리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들에게 삶이란, 비록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나타나긴 해도 진정한 의미로 충만한 것이었다.
「점령, 그리고 해방」, 253쪽
그녀에게 있어서 멈춰서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들길 원하는 사람은 계속 전력을 다해 자신의 일을 해 나가는 사람만큼 본받아야 할 모델은 아니다. 그녀는 묻는다. 어째서 우리는 멈춤과 무심함에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만일 “나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다면, 우리는 그 아이를 지혜로운 아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문제가 있거나 우울한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격리된 어른들은 곧 권태를 느낀다. 연인 사이라 할지라도 너무 오랫동안 그들만의 밀회 장소에만 박혀 있으면, 그들은 서로에게 흥미를 잃는다. 우리는 포만과 휴식의 상황에서 번성하지 않았다. 인간의 실존이 의미하는 것은 ‘초월성’ 혹은 넘어섬이지, ‘내재성’ 혹은 자기 내부에서의 수동적 휴식이 아니다. 즉 인간의 실존은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날까지 끊임없이 행동함을 의미한다. 그런 날은 당신이 숨을 쉬는 한 오지 않을 것이다.
「점령, 그리고 해방」, 267쪽
1914년 이래로, 특히 1939년 이후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사람들은 우리 자신을 완전히 알 수도 신뢰할 수도 없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어떤 변명도 어떤 설명도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언가 단단한 것에 우리의 존재와 관계를 딛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황폐」, 329쪽
그들 모두가 휘청거리며 밖으로 나왔을 때, 카뮈는 쾨슬러의 어깨에 손을 올려 그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쾨슬러는 그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카뮈도 응수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그들을 가까스로 떼어놓았다. 그리고 거리에 쾨슬러와 마메인을 남겨둔 채 카뮈를 급히 그의 차에 밀어 넣어 그 자리를 떠났다. 카뮈는 집으로 가는 내내, 운전대 위에 기대 흐느껴 우느라 차를 이리저리 몰면서 말했다. “그는 내 친구였다! 그런 그가 나를 때렸어!”
「등 돌리는 철학자들」, 413쪽
실존주의자들이 어떤 때는 너무 멀리 나갔거나, 너무 많이 쓰면서도 거의 다듬지 않았거나, 터무니없이 거창한 주장을 했거나, 심지어 스스로 망신을 자초했을지라도 그들이 삶의 농밀함과 끊임없이 맞닿아 있었으며 중요한 질문들을 던졌다는 것만은 분명히 말해두어야 한다. 나라면 언제든 그쪽을 택하겠다. 품위 있는 세밀화 따위는 벽난로 장식으로나 남겨두면 그만이다.
「가장 불리한 자들의 눈」, 479쪽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지금 그의 근본적인 무신론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단지 더 강한 형태의 신비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자신의 신앙을 버렸던 하이데거의 무신론과는 너무도 달랐다. 사르트르는 뿌리 깊은 무신론자였고 뼛속까지 인본주의자였다. 어떤 초월적 존재도 존재하지 않으며 이 땅 위의 그 어느 것도 대신해 줄 신의 보상은 없을 거라는 확신 속에서 용감히, 그리고 사려 깊게 살아갔던 그의 능력은 니체조차 뛰어넘었다. 그에게는 지금의 삶이 인간이 가진 전부였으며, 그러므로 그는 그 안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야 했다.
「계측불가의 꽃」, 5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