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러한 특정한 종말 환상을 숭고한 사건으로서의 종말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외부에서 폭력적으로 느닷없이 닥치는 장엄한 대재앙으로서의 종말이다. 우리 시대로 좁혀서 생각해 보자면, 지구의 전면적 파괴를 수반하는 이 종말론은 냉전 종식기에 일어난 광범위한 이념적 전환의 맥락 속에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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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의 위협에서 살아남으려면,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공포와 불안을 감당하는 능력을 키우고 종말론적 인식을 길러야 한다. 안더스의 표현을 빌리면, “‘상상력을 확장하라’는 우리의 과제는 구체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능력을 키우라’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공포 그 자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두려워할 용기를 가져야 하고, 나아가 타인에게도 그 두려움을 일깨워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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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의 저작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쾌락원리를 넘어서는 죽음충동이다. 여기서 죽음충동은 주체가 ‘비유기적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경향일 뿐 아니라, ‘모든 존재의 총체적 멸종’과 자연의 생명 순환 과정의 파괴까지 포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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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은 부채와 절망이 확산하는 현실을 드러내지만, 정작 자본주의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 비판도 제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작품은 겉으로는 문제를 제기하는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악마적 속성에 가담해 그 체제의 논리를 더 증폭시킨다. 그렇다면 이 기묘한 이데올로기적 역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_115쪽
엔트로피 명제는 보편적 죽음충동 법칙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지구와 우주의 궁극적 멸종을 예고한다. 모든 고립계에는 소멸과 쇠퇴, 죽음으로 나아가는 비가역적 경향이 존재한다. 열역학 제2법칙이 전달하는 궁극적 파멸의 메시지는 전후 일부 비관적 사상이 오랫동안 엔트로피 개념에 매료된 이유를 어느 정도 설명해 준다.
_146쪽
생태적 반출생주의가 자연을 위해 우리 자신을 희생하라고 권유한다면, 멸종 복원론은 가속주의적 과학이 자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라고 요청한다. 이 두 입장은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듯 보이지만, 이데올로기적으로 비슷한 지점을 공유한다.
_179쪽
자본주의는 종말을 맞이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곧 우리 문제의 종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더 살 만한 삶, 새로운 공동체적 삶의 양식을 향한 투쟁은 여전히 정치적 투쟁으로 남아 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다시 제기된다. 우리는 현재의 손상된 삶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가?
_2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