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적 상상과 시적 감각으로 빚어낸
어딘가 으스스한 이야기들
이장욱 첫 짧은 소설집 『호러는 아니지만 어쩐지』 출간
엉뚱하고도 정교한 상상력으로 인간과 세계를 탐사해온 이장욱의 첫 짧은 소설집 『호러는 아니지만 어쩐지』가 출간되었다. 인간과 비인간, 기억과 망각, 사랑과 죽음, 언어와 무의식 등 서로 다른 문제의식이 짧은 이야기들 속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펼쳐진다. 냉장고에 보관한 고기의 눈에서 시선을 느끼거나 한 여성의 연쇄 살인사건이 무심히 다뤄지거나 존재하지 않는 호텔 객실에서 연인의 머리통이 발견되는 등 변수와도 같은 기묘한 장면들은 섬뜩함을 야기한다.
이러한 설정은 이야기의 목적이라기보다 서사를 움직이는 동력에 가깝다. 작가는 익숙한 세계에 하나의 낯선 조건을 부여함으로써, 의심하지 않는 사고방식을 흔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건의 정체를 밝히는 일이 아니라, 그 상황을 통과한 뒤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대상을 바라볼 수 없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비껴 난 발상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인간과 삶에 관한 질문으로 연결되고, 진지하게 파고들던 이야기에 예상치 못한 장면이 끼어들면서 이장욱 특유의 리듬이 생겨난다. ‘호러는 아니지만 어쩐지’는 현실적이면서 이상하고, 웃기면서 서늘한 작품집의 분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제목이다.
무엇보다 이번 책에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25년까지 약 30여 년에 걸쳐 쓰인 작품들이 수록됐다는 것이 특징이다. 서로 다른 시기에 쓰인 작품들을 한 권으로 읽는 일은, 한 작가가 오랜 시간 축적해온 소설적 관심과 감각을 한눈에 살펴보는 것과 같다. 이장욱의 문학적 시간이 고스란히 포개져 있다는 점에서 『호러는 아니지만 어쩐지』는 작가의 소설 여정을 담은 뜻깊은 작품집이다.
일상에 드리운 이상한 기척
웃음과 불안, 태연과 기이 사이에서
이장욱은 「작가의 말」에서 “한 사람의 독자로서” “익숙한데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고, 그 감각이 “으스스”하다고 표현했다. 이 책에서 풍겨오는 으스스한 분위기는 특별한 공간이나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상에 작은 어긋남이 생기면서 평범했던 장면은 어느 순간 낯선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아…… 근데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모퉁이에 네 사람이 서 있어. 한 사람이 걸어가서 두 번째 사람의 등을 툭, 치잖아. 두 번째 사람이 걸어가서 세 번째 사람의 등을 툭, 치고. 세 번째 사람이 걸어가서 네 번째 사람의 등을 툭, 치고. 네 번째 사람이 다음 모퉁이까지 걸어가서 등을…… 근데 거기에는,
네 사람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누가 서 있는 거지?
_「당신의 등 뒤에서」
채식주의자 연인과 헤어진 뒤 육식에 집착하다 냉장고 속 고기의 눈이 자신을 바라본다 느끼고(「채식주의 스캔들」), 대학 시절 친구 네 명이 함께했던 게임이 실은 네 사람만으로는 성립할 수 없었음을 깨닫고(「당신의 등 뒤에서」), 남편을 살해한 여성이 도시를 떠돌며 저지르는 연쇄살인이 어느새 평범한 기삿거리가 되고(「리마 이야기」), 호텔에서 실종된 연인의 머리통을 존재할 리 없는 객실에서 발견한다(「호텔 야화」). 이처럼 황당하고 기이한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이야기는 좀처럼 심각한 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이상한 일을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인물들 사이로, 서늘한 장면에 뜻밖의 웃음이 끼어든다.
이와 같은 온도 차가 독특한 서사를 만든다. 작가는 불가해한 상황을 밀어붙이면서도 그것을 극적인 사건으로 과장하기보다 인물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끼워 넣는다. 죽음이나 실종 같은 사건이 벌어진 뒤에도 그들은 각자의 삶을 이어가고, 세계 역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간다. 오히려 그 태연한 지속이 사건의 기이함을 선명하게 한다. 이장욱의 소설이 남기는 으스스함은 바로 그 아무렇지 않음에서 생겨난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바라보기
우리가 안다고 믿는 것 너머에 남겨진 질문들
『호러는 아니지만 어쩐지』에서 이장욱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존재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형배 씨를 기억하시나요」에서는 누구에게도 제대로 기억되지 않는 한 사람을 통해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고, 「해후」에서는 죽음을 앞둔 아내의 옛 연인을 찾아 나선 남편을 통해 사랑과 기억의 불확실성을 들여다본다. 한 사람의 존재는 기억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지고, 그 기억이 언제나 실제 모습과 겹치는 것도 아니다.
한편 「괴물과 함께」에서는 해안에 나타난 괴물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점점 도시로 다가온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괴물을 공격해야 한다는 주장과 인류가 맞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팽팽히 맞선다. 그러나 거대한 괴물의 등장에도 개인의 삶은 멈추지 않는다. 이장욱은 괴물을 둘러싼 거대한 논란과 그 안에서 이어지는 개인의 일상을 나란히 놓으며, 하나의 사건이 사람마다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경험되는지를 보여준다.
밤이 오고 있었다. 어둠이 실내로 밀려들어 찬희가 사다 놓은 작은 벤저민 화분에 스며들고 있었다. 내 머릿속으로 엉뚱한 생각이 지나갔다. 괴물에게도 목적이라는 것이 있을까? 존재의 목적 같은 것? 사랑의 목적은? 아마 없겠지. 없을 거야. 괴물은 괴물이니까. 목적 따위가 무슨 상관이람. 그냥 존재하는 것들이.
_「괴물과 함께」
기억되지 않는 사람,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옛 연인, 수많은 해석 속에 놓인 괴물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존재의 본질을 규정하는 일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인식임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대상을 하나의 의미로 봉합하지 않고, 서로 다른 시선과 해석이 충돌하는 자리에 이야기를 세운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소설 속 존재를 바라보던 자신의 시선까지 돌아보게 된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믿으며, 무엇을 지나치며 살아가는가. 이장욱의 소설은 그 질문을 기묘한 이야기의 형태로 펼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