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의사가 들려주는 늙음과 죽음,
그리고 가족 이야기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치매와 간병, 돌봄과 임종까지, 이제 늙음은 어느 특별한 가족에게만 찾아오는 사건이 아니다. 모두가 언젠가 당사자가 되거나 가족으로서 마주해야 할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현대사회는 모든 게 빠르고 편리해졌다. 하지만 그 화려한 풍경 뒤편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다. 홀로 남은 노인, 자식과 떨어져 살아가는 부모, 치매를 의심받는 노인, 가족이 감당하기 어려워 요양병원과 요양원으로 향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수많은 늙은 몸들이다.
늙고 병들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들어가 그곳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는 일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가족이 직접 병든 부모를 돌보기 어려워졌고, 부모와 자식이 서로 다른 도시와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시대가 되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변화를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요양병원의 노인들은 정신이 들 때마다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 목소리는 병원 바깥의 빠르고 분주한 세상에 좀처럼 닿지 않는다.
소설로 읽는 요양병원 풍경
요양병원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이 있고,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있으며, 치매와 질병을 둘러싼 가족들의 판단과 갈등이 있다. 의학적 설명만으로 그들의 삶을 정리할 수 없다. 현직 의사인 저자는 주인공 길상연의 시선을 통해 늙음과 질병 뒤에 가려진 한 사람의 생을 묘사한다. 송 영감과 명주 할매, 장씨 할매, 박 사장 등 진료실과 병실에서 만나는 노인들의 모습과 가족의 사정, 요양병원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은 바깥에서는 그저 시설로만 보이는 요양병원 안에도 수많은 사람의 삶이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저자는 요양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마주한 사건과 사람들을 통해 우리가 외면해 온 것에 질문을 던진다. 늙고 병든 부모를 시설에 모시는 것은 과연 불효인가. 반대로 가족에게 돌봄을 온전히 떠맡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치매는 어떤 순간부터 한 사람을 설명하는 이름이 되어 버리는가.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이 좋은 죽음인가.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존엄한 죽음’은 과연 무엇인가.
늙은 부모와 성공한 자식들
책에는 지방에 사는 늙은 부모와 그들을 떠나 서울에 정착한, 소위 말하는 성공한 두 아들의 이야기로 우리 현실을 보여 준다.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자식을 잘 키웠다는 말은 자식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더 큰 도시로, 때로는 외국으로 나아가 성공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식의 성공 뒤에는 역설적인 풍경이 남는다.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는 고향에서 둘만 남고,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결국 혼자가 된다. 그렇게 늙은 부모와 성공한 자식 사이에는 물리적인 거리뿐 아니라 돌봄의 거리가 생긴다. 부모는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고, 자식은 부모를 외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직장과 자녀,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자식들이 병든 부모를 직접 돌보기는 쉽지 않다.
사랑과 책임감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가족들은 갈등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저자는 책에서 어느 한쪽을 쉽게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늙고 병든 부모의 마지막 길과 그 길을 배웅해야 하는 자식들의 고충과 애환을 함께 바라본다.
소설도 르포도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
‘존엄한 죽음’과 ‘존엄한 삶’
이 책은 소설이라는 형식을 취했지만 저자는 그저 ‘이야기’라고 부른다. 한 노부부와 가족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 우리 부모의 이야기가 되고, 결국 미래의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된다. 요양병원 의사인 길 과장이 본 늙음과 돌봄, 죽음의 풍경이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다.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죽음이다. 우리는 ‘존엄한 죽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저자는 정말 존엄한 죽음과 그렇지 않은 죽음이 따로 존재하는지 묻는다. 죽음 그 자체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죽음의 가치는 죽음 그 자체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닐까. 저자의 질문은 결국 죽음에서 삶으로 시선을 되돌리게 한다.
『임종』은 우리가 보고 싶지 않아 한쪽으로 밀어 놓았던 늙음의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때로는 어둡고, 불편하고, 슬프다. 초고령사회의 가장 그늘진 곳으로 독자를 데려가 우리가 애써 보지 않았던 늙음과 죽음을 바라보게 한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해 보자고 권한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이라면 존엄한 죽음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존엄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