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을 위해 비밀을 유지해주시기 바랍니다.”
밤의 이야기꾼들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월 ○일 자정까지 아래의 장소로 오시면 됩니다.
- XX시 XX구 장미 저택 -
『채록: 기이한 이야기』는 ‘밤의 이야기꾼들’ 취재 의뢰를 받은 ‘나’가 모임에 초대받아 장미 저택으로 향하는 「초대장」으로 시작한다. 장미 저택은 오컬트 마니아 사이에서 제법 유명한 흉가로, “성실한 화가가 지칠 때까지 몇 겹이나 어둠을 덧칠해놓은 것” 같은 곳이었다. 그저 어둠뿐인 공간이지만, 선명하게 느껴지는 존재들……. 사람인지 망자인지 모를 존재들과 함께 이야기는 시작한다.
「보내주는 사람」은 한 호스피스를 배경으로 한다. 췌장암 말기의 아버지를 호스피스에 입원시킨 딸 ‘선영’은 이제나저제나 아빠가 죽길 바랄 뿐이다. 사채를 끌어다 인터넷 도박과 명품 쇼핑에 탕진한 결과, 사채업자가 집 앞까지 찾아와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빚 때문에 근심이 가득한 선영의 표정을 효심이라 오해한 사회복지사는 ‘보내주는 사람’을 소개하며 오래 힘들어하신 아버지를 편히 보내드리고 싶다면 연락해보라고 하는데…….
“아, 안녕하세요? 혹시…… 뭐라고 할까, 그…… 보내주는 사람이 맞으신지…….”
“맞아요. 제대로 걸었네요.”
주저하며 물은 게 민망할 정도로 노인은 순순히 인정했다.
순간 말문이 막힌 나는 가만히 휴대폰만 들고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하지? 와서 우리 아빠 좀 죽여달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돈이 얼마인지 그것부터 물어야 하나?
내 마음을 읽었는지 노인이 다시 말을 꺼냈다.
“보내야 할 분이 있다면 절 쓰세요. 저는 전문가니까요.”
_본문 중에서
「원」은 굴러들어온 돌에게 부장 승진을 빼앗긴 ‘O’가 라이벌을 저주하는 이야기다. 작가는 누군가를 저주하고, 누군가에게 원한을 품는 감정이야말로 호러 장르를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말한다. 주인공 ‘O’는 어떻게 보면 그리 큰일이 아님에도 누군가를 저주하려 한다. 그게 크나큰 대가를 치르는 일이라고 해도. 그 원한의 마음이 어디서 생겨나고, 또 그 종착지는 어디인지 생각해본다면, 한층 더 서늘한 공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무당은 O를 보며 말했다.
“원은 자연스레 풀리지 않아. 시간이 지난다고 해소되지도 않고. 누군가를 몹시 미워하는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면 마음의 병 같은 건 생기지도 않겠지. 그러니 원을 털어내려면 결국 피를 보는 수밖에 없어, 피.”
피.
피를 본다.
그때는 그게 그야말로 유일한 해결책처럼 들렸다. 그랬기에 홀린 듯 무당의 제안을 수락했다. 거금을 내고 날짜를 잡았으며 주의 사항과 준비해야 할 것들에 대해 듣는 동안 서서히 현실감각이 돌아오긴 했지만, 그때는 이미 모든 게 너무 늦은 후였다.
_본문 중에서
“괴이는 그걸 나눌수록 더 구체화되고 생명력을 얻는 거야.”
섬뜩한, 그러나 멈출 수 없는 살아 있는 이야기
「보내주는 사람」과 「원」 외에도 탄약고 천장에 목매달려 흔들리는 시신에 얽힌 군대 괴담 「야간 경계 근무」, 이웃의 살인 현장을 CCTV로 지켜봐야 하는 아르바이트와 얽힌 「Watcher」, 기이하면서도 끝내는 따뜻함이 남는 힐링 계열의 괴담 「풋잠」 그리고 밤의 이야기꾼들을 취재 나간 ‘나’가 혹시 ‘전건우’가 아닐까 의심하게 만드는 메타픽션 「낯익은 이방인」까지. 살인적인 폭염을 물리칠 기이하고 괴상망측한, 그래서 더 매력적인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이제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조명을 낮춘 어두운 방에서 『채록: 기이한 이야기』 독서를 시작하자. 단, 방문은 조금 열어두어야 한다. 만약에 무언가가 당신에게 오고 싶어 한다면…… 그 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