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급인 1급을 가르칠 때의 나는 1형식 문장을 사랑한다. 나는 1급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해야 한다. 말이 짧아지고 목소리가 커지고 표정이 풍부해지고 손짓이 많아진다. 문제는 일상생활에 돌아와서도 모드 전환이 잘 안된다는 데에 있다. 2급을 가르칠 때의 나는 드디어 3형식과 4형식 심지어 5형식 문장을 말해도 된다. 의사소통 욕구에도 숨통이 트인다. 이제 기초 수준의 웬만한 단어는 다 가르쳤으니 하려고만 하면 뭐든 한국어로 말할 수 있다. 2급 학생들은 이제 수업 시간에 “화장실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지 않고 “화장실 가도 돼요?”라고 세련되게 말할 수 있다. 기역 니은 디귿부터 가르친 학생이 “선생님 주말에 뭐 하셨어요?”라고 물을 때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2급을 가르칠 때의 나는 드디어 3형식과 4형식 심지어 5형식 문장을 말해도 된다. 의사소통 욕구에도 숨통이 트인다. 이제 기초 수준의 웬만한 단어는 다 가르쳤으니 하려고만 하면 뭐든 한국어로 말할 수 있다. 2급 학생들은 이제 수업 시간에 “화장실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지 않고 “화장실 가도 돼요?”라고 세련되게 말할 수 있다. 기역 니은 디귿부터 가르친 학생이 “선생님 주말에 뭐 하셨어요?”라고 물을 때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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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문화 전성시대다. 언어에 대한 수요는 현재 K문화의 위상을 보여준다. K문화는 눈으로 즐기는 것을 넘어 직접 향유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책으로 치자면 책의 겉표지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내가 아는 언어로 책 내용을 읽고 소감을 나누고 필사를 하고 독서모임을 하는 그런 단계다. 그러려면 언어는 필수다. 한국어는 K문화에 대한 동경을 마음 밖으로 끄집어내 주는 수단이다. 그러니 어찌 한국어를 배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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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학생들을 가르칠 때의 나는, 내가 좀 더 박식했으면 그리고 언변이 좀 더 세련됐으면 생각한다. 이제부터는 한국인의 세계다. 그들은 선생님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를 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공부’와 ‘연구’가 다르듯이, 그들은 내 시각을 원하고, 내 표현 방식을 원하고, 내 사고방식을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보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한다. 그래서 고급 학생들을 가르칠 때의 나는, 종종 한국어 선생님으로서의 내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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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도현아!”라고 불러야 하는데, “여러분!” 한다. “엄마가~”라고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데, “선생님이~”라고 시작한다. 나는 선생님이다. 한국어 선생님이고, 무려 네이티브 스피커다. 한국어 원어민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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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면) 을수록’이라는 문법을 가르친 날, 집에 와서 인스타에 어떤 사진과 어떤 문장을 올릴까 한참 고민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아빠의 사진을 올리고 이렇게 글을 썼다.
“나이 드실수록 멋있어지는 우리 아빠, 사랑해요.”
‘얌체 같다’라는 단어를 가르친 날, 집에 오는 길에 운전을 하면서 그 단어를 사용할 만한 딱 맞는 상황을 맞닥뜨렸다. 그리고 주차하자마자 운전대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을 올렸다.
“출퇴근 시간에 운전을 하다 보면 얌체 같은 운전자를 많이 본다….”
학생들은 ‘얌체 같다’라는 단어를 내가 찰떡같이 사용한 것에는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그 문장에 모두 깔깔대는 반응을 보였다. 세상 모범적이고 단정한 선생님이 이런 글을 올리다니 웃겼나 보다. 사실 의도한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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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선생님이 되고 나서 모든 순간 한국어 선생님이다. 내가 이 말을 이렇게 쓰는구나, 한국 사람들은 이렇구나, 이 말을 학생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나는 한국어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외국어는 이럴 때 이렇게 문장을 조합하는구나 등등. 교실 속 나와 교실 밖의 내가 섞인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아이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한국어 선생님이니까 그렇지.”
“지금 한국어 선생님이라고 티 내는 거야?”
나는 한국어 선생님 유니버스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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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잔혹한 사람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택시 이용을 원하면 언제든지 제 번호로 연락 주세요. 24시간 이용 가능합니다. 차량을 충전해야 하니, 1시간 전에만 연락을 주십시오.”
잔혹한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니! 여행지의 바가지를 조심하라는 말인 걸 알면서도 나는 조금은 무서웠지만, 그보다는 훨씬 많이 유쾌해졌다.
도대체 태국말의 어떤 단어를 AI는 ‘잔혹하다’라고 번역한 걸까. 한국어로 말할 때 ‘잔혹한’을 말하려면 ‘잔혹한 살인’ ‘잔혹하게 살해당하다’ 이런 말이 세트로 따라오는데 진짜 기사가 의도한 것이 저 단어라고? 별의별 생각을 다하면서 나는 어휘의 세계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외국어를 외국어로 바꾸는 것이 얼마나 흥미롭고 어마어마하고 진지한 작업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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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학생들의 에세이를 첨삭하다 보면 필체만 보고 누구의 글인지 딱 알아차릴 때가 있다. 듬성듬성 성기게 쓴다면 일본 학생, 촘촘하고 오밀조밀하게 쓴다면 태국 학생, 리을의 머리를 둥글게 쓴다면 베트남 학생, 글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 페이지 전체에 띄어쓰기가 하나도 없다면 중국계 학생, 이런 식이다.
한국어 선생님이라면 나의 이런 유형 분류법에 이마를 탁 치면서 “맞아, 맞아”를 외칠 것이다. 즉, 우리는 필체만 보면 ‘이 학생은 어느 나라 사람이구나’ 대충 짐작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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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 들어가 의기양양하게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학생들에게 묻는다.
“여러분, 선생님 발걸음 소리가 어떻게 나요?”
우리는 요즘 각종 의성어와 의태어를 배우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척 알아듣고 이것저것 말해 보기 시작한다. 반 구성원 중 가장 기발한 학생이 외친다. “구두구두? 하하하.” 시작부터 흥미진진하다. 다 같이 웃으면서 연달아 여러 가지 답안이 나온다.
나는 원래 의성어랑 의태어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니 라임을 사랑한다고 해야 하나. 말맛과 표준어가 싸운다면 나는 말맛을 살린다. 국어 선생님이 이래도 되나 싶은데 비표준어를 가르치지는 않으니 최소한의 양심은 지키는 편이다. 사람들과 카톡을 주고받을 때 내 기분을 의성어나 의태어로 말하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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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눈이 펑펑 오더니 곧 거리에 소복소복 쌓였고 바닥이 미끌미끌 미끄러워서 조심조심 걸었다. 감기약을 먹고 나서 꾸벅꾸벅 졸다가 허겁지겁 서둘러 아이를 데리러 갔다. 아이는 추운지 손을 쓱싹쓱싹 비비며 차에 타서는 종알종알 오늘 있었던 일들을 말하기 바빴다.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아이의 뱃속에서는 꼬르륵꼬르륵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내가 바라고 내가 말하고 싶은 내 하루다. 써 놓고 보니 마치 어린이책에서 텍스트만 옮겨 적은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내가 꿈꾸는 하루는 이런 하루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남발하는 하루. 다정하고 살짝 소란한 하루. 내일도 그런 하루이길 바라며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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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영어+하다’ 조합의 단어를 가르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메모하다’, ‘다이어트하다’, ‘조깅하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단어로는 ‘힙하다’등. 워낙 한국어에도 ‘하다’로 끝나는 동사와 형용사가 많기 때문에, 학생들은 잘 모르겠으면 다 ‘하다’를 붙여서 말하기도 한다.
“선생님, 사진 찍어해도 돼요?” 이런 식이다.
마법의 동사, 영어+하다. 그리고 동시에 블랙홀의 동사 ‘하다’. 모든 것을 문제라고 보는 것은 안 되지만, 문제의식은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당시 임원의 질문은 매우 예리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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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 내 담당 학생 수는 13명, 국적은 프랑스, 베트남, 스페인, 인도네시아, 중국, 대만, 홍콩, 알제리, 일본, 태국 등 총 9개국이다. 이들의 공용어는 한국어다. 하지만 쉬는 시간에 그들끼리 놀 때는 영어다. 체감상 점점 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예전에는 동남아시아 학생들은 영어를 전혀 못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안 그렇다. 그래서 가끔은 한국어를 배우러 왔지만 갑자기 영어 공부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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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세계 공용어다. 영어는 재플리시(Japlish), 싱가포르인이 하면 싱글리시(Singlish) 이렇게 다시 그루핑(Grouping) 된다. 영어가 모어가 아닌 사람들이 영어를 사용하면서 특유의 억양과 발음, 문법 구조 등이 도드라지게 되는 현상이 생기는데 그게 다시 범주화된다. 콩글리시는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은 것이, 콩글리시라 말하면 한국인이 사용하는 특정 단어의 사용만 떠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교실에서는 종종 ‘브로큰 잉글리시(Broken English)’가 발생한다. 9명이 누구는 프랑스식 영어, 누구는 태국식 영어, 누구는 스페인식 영어를 하고 있어서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영국식 발음과 미국식 발음의 문제는 아니다. 어쨌든 다들 조금씩 ‘브로큰’이긴 하지만 의사소통은 된다. 그럼 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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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절한 내용의 에세이를 쓴 학생은 보수적인 문화권의 학생이었다. 내가 일하는 학교에는 매우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오는데 그런 나조차 가르쳐 본 횟수를 손에 꼽는 국적이었다. 너도나도 한국어를 배우러 달려오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아마도 부모님은 많은 고민 끝에 많은 돈을 들이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유학을 보냈을 것이다. 학생이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나마 자신의 마음을 글로 써 본 것이 아닐까. 부모님은 영원히 읽지 못할 한국어로 된 이런 편지를.
“언제 부모님이 보고 싶어요?”
“돈 없을 때요.”
“언제 부모님께 전화해요?”
“안 해요. 아! 돈 없을 때요.”
“부모님께 전화하면 무슨 이야기해요?”
“돈 보내 달라고요.”
다 같이 키득키득. ‘부모님’ 하면 ‘기승전’ 저런 농담을 막 쏟아내는 젊은이들. 하지만 사실 마음속에 부모에 대해 빚진 마음 한 덩이쯤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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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글을 읽으며, 나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마음을 읽는다. 이제 막 초급을 벗어 난 학생들은 이제 더 이상 “학교에 가요”, “지난 주말에 놀이공원에 다녀왔어요” 이런 글들을 쓰지 않는다. 생각해서 쓰고 글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어떤 학생들은 이렇게 깊어진 글쓰기가 매우 힘들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점점 익숙해지고 곧 진솔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나는 매일매일 학생들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한 명 한 명, 젊은이들의 인생 서사가 보인다.
아름답고,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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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살이 몇 개예요?”
“선생님, 제 살이 20이에요.”
“저는 아직 살이 적어요.”
처음 초급반에서 이런 문장을 들었을 때 몇 초간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바로 감을 잡았다. 한국 사람들이 나이를 말할 때 ‘한 살’, ‘두 살’ 이렇게 숫자 뒤에 ‘살’을 붙이니까 영어권 화자들은 이것이 ‘에이지(Age)’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가 나이가 적어서…”라고 말하고 싶거나 상대방의 나이를 묻고 싶을 때 앞에서 말한 것과 비슷한 부류의 문장을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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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極)존칭형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오늘 숙제가 있으십니까?”
(과다)친근형
“숙제 늦어서 미안해!^^”
구글 번역형
“10분이 될 것이다. 택시에서 오고 있는데 교통량이 많다.”
한국친구 찬스형
“선생님, 일찍 연락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오늘 급한 일이 생겨서 학교에 못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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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잘 못한다고 해서 학생들을 어린이라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아마 학생들을 마냥 귀엽게만 보다가 도가 지나쳐서 ‘제대로’ 가르치는 일을 소홀히 하게 될까 봐, 기본적인 것을 놓치거나 실수할까 봐, 성인에 대한 예의를 다하지 않을까 봐, 염려했던 것 같다. 맞는 말이다. 학생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에 취해, 본연의 목적에 소홀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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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여러분, 고향의 가족 중에 누가 제일 보고 싶어요?”
그럼 “강아지요.”, “고양이요.”라는 대답이 꼭 나온다. 처음 그 답을 들었을 때는 그게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머지않아 내 곁을 떠날 사춘기 아이를 둔 엄마여서 그런지, 엄마도 아니고 아빠도 아니고 심지어 형제자매나 단짝 친구도 아니고 강아지와 고양이라니. ‘정말 진짤까?’라는 생각도 한 것 같다. 쑥스러워서 그냥 웃기는 대답을 한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 후 우리에게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생겨났고 이제는 그 대답이 전혀 낯설지가 않다. 그렇게 난 반려동물의 존재에 익숙해져 갔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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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언어가 미흡함을 통탄하면서까지 다른 누구를 설득하려고, 내 마음을 설명하려고, 의도가 오해 없이 전해졌음을 확인하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직 한국어 교실에서만큼은 오해 없기를, 내 마음이 제대로 전해졌기를, 바라고 노력하고 행한다. 그리고 학생들도 그러하다. 우리는 언어를 배운다는 목적하에 서로의 진심이 닿기를 바라는 마음, 순진한 마음이 된다. 나는 이 직업을 가진 후 줄곧, 인생에 다시 없을 공감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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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식, 나쁜 소식, 밝은 소식, 어두운 소식, 모든 소식들에 교실과 학교가 함께 들썩인다. 그런 날들이 참 좋고, 감사하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진심으로 내 마음을 설명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옆에는 항상 누군가가 있지만(가족이건 동료이건 간에) 내 언어가 미흡함을 통탄하면서까지 다른 누구를 설득하려고, 내 마음을 설명하려고, 의도가 오해 없이 전해졌음을 확인하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직 한국어 교실에서만큼은 오해 없기를, 내 마음이 제대로 전해졌기를, 바라고 노력하고 행한다. 그리고 학생들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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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 많은 눈. 나는 그런 학생들의 눈을 사랑한다. 그리고 저 눈 속에 담긴 사연들을 듣고 싶다고 자주 생각한다. 아무리 다정하게 접근해도 나는 선생님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긴장한다. 알던 것도 잊어버리고 지난주를 다음 주라고 말한다거나 ‘맛있다’를 ‘멋있다’로 바꿔 말한다. 급기야 지난주에는 “선생님, 앤디 씨가 배가 아파서 학교에 못 온대요.”라고 말하려던 학생이 “선생님, 앤디 씨가 배가 고파서 학교에 못 온대요.”라고 말하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왜 사고라고 말하냐면, 본인의 실수를 바로 깨달은 학생이 얼굴이 새빨개지며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내가 외국인 앞에서 영어를 할 때와 똑같다. 나는 그들이 느끼는 곤란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그들의 한국어가 나아지는 것을 보면 대단히 흡족하다. 그리고 “우와, 너무 잘했어요.” 칭찬을 남발하면서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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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에 다녀오느라 수업에 늦은 학생은 울었는지 눈이 젖어 있었고 오랜 시간 경찰서에 있었는지 얼굴은 고단하고 차림은 남루해 보였다. 수업에 늦어 송구스러워하는 학생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밥은 먹었어요?”
순간 눈과 눈이 마주쳤지만 우리는 둘 다 말을 할 수 없었다. 밥은 먹었느냐니. 지금 생각해도 내가 너무나도 한국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참 후 학생이 천천히 말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죄송해요, 선생님.”
진짜, 눈물을 삼키며 하는 말. 학생의 그렁그렁했던 눈물과 그 눈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그날 쉬는 시간에 학생을 불러 간식으로 싸 온 두유와 빵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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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근태가 너무 안 좋은 우리반 학생들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동료 선생님이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이 왜 미안해요. 선생님은 엄마가 아니잖아요.”
그때 뭔가 깨달았다.
아, 내가 너무 과몰입했구나. 나의 역할은 한국어 선생님이지.
그러고 나서 다소간 나는 내 다정함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내 정체성을 찾게 되었다. 나는, 한국어 선생님이지 그들의 엄마가 아니다.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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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째 한국에 살고 있고 팬데믹 기간에도 노동하며 공부하는 외국인 신분으로 한국에서 살았고 앞으로도 언제까지일지 예정할 수 없지만 계속 한국에 살 학생이 있었다. 그날은 인터뷰 시험 예상 질문을 연습하는 중이었다.
“왜 한국어를 배워요? 왜 한국이 좋아요?”
“선생님. 저는 그 질문이 제일 싫어요. 저는 그냥 한국이 좋아요. 그래서 여기에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 거예요. 언제까지 살지 나도 잘 몰라요. 하지만 계속 살 것 같아요. 이유 없어요.”
모든 행동에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결과의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듯이 ‘어쩌다 보니’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똑 떨어지는 대답을 반복해서 강요한다.
‘어쩌다 보니’라는 말을 조금 일찍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다. 똑 떨어지는 답을 할 수 없을 때, 그냥 인생이 그렇게 흘러갔다고 말하고 싶을 때, 한국 사람이 자꾸 있지도 않은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를 물어 댈 때, 저 말을 하라고 해야겠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얼마나 홀가분할까. 얼마나 저 대답이 마음에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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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내가 항상 먼저 학생들에게 손을 내민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학생들도 자주 나에게 손을 내민다. 한 학기에 적게는 30명, 많게는 50명까지. 1년이 4학기니까 적게는 120명, 많게는 200명을 만난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학생들은 있지만 사실 5년 넘게 연락이 이어지는 학생은 거의 없다. 단 10주, 하루에 2시간씩 만난 인연일 뿐이다. 하지만 그걸로 족하다. 나는 또 다른 학생들을 만나 그들에게 집중할 것이다. 단 10주의 인연이 반복되고 그때그때 그들과 사랑에 빠진다. 한국어 선생님으로서의 나의 애정은 그렇게 길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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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한국어 선생님이 됐을 때는 집에서 뭔가 사부작사부작 많이 만들었다. 이름표도 만들고 언어별 주의 사항도 만들고 마지막 수료식에는 꼭 손글씨 엽서도 써 줬다. 편지의 한국어 난이도는 꼭 현재보다 한 단계 어렵게 썼다. 그리고 지금 말고 조금 더 한국어를 배우고 나서 읽어 보라고 당부했다. 좀 간지러운 말들도 여럿 얹었는데 지금은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니 부끄러움이 아직 나의 몫이 아닐 테니까 가능했다.
그리고 코로나로 몇 년이 휘리릭 흐른 후 오랜만에 엽서를 써 봤다. 이런저런 이유로 조기 귀국하게 된 학생에게 또 옛날 레퍼토리를 읊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행복하길 바란다, 우리 각자 부디 잘 살자, 그리고 우리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또다시 만나자고 말하며 나보다 훨씬 키가 크고 체격도 큰 커다란 학생을 안아 주었더니, 교실이 눈물 바람이 되었다.
그래, 마음껏 충분히 슬퍼하자. 해 봤자 눈밖에 더 붓겠니.
그러면서 본래의 나로 급격히 원복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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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같이 적의가 가득한 학생을 만나고 온 날이 있다. 그 시선과 목소리를 온전히 온몸으로 받아내고 온 날은 호의 어린 눈빛만 봐도 마음이 녹는다. ‘아, 이거였어. 이런 게 있었어.’ 다만 한 순간 궤도를 이탈했을지언정 대다수가 나를 바라보는 눈길엔 호의가 그득하다. 호의와 적의가 공존했던 초급 학생들은 언젠가 중급이 되고 고급이 된다. 호의도 반짝거리고 적의도 반짝거렸던 학생들은 한국어와 한국에 익숙해지면서 호의도 적의도 희미해진다. 적의가 사라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호의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미지근해진다고 해야 할까. 날카로움이 사라지면서 호의도 호기심도 함께 사라진다. 나는 초급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왠지 그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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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인 지금도 시장 상황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한국어 선생님의 무임금 노동에 대한, 대학 측과의 단체 교섭에 대한, 어학당의 파행 운영에 대한, 속 쓰린 기사들이 주기적으로 포털에 등장한다.
근본적인 이유는 나아지지 않는 한국어 선생님의 처우다. 거기에 피고용인을 대하는 고용주의 부당하고 무성의한 태도가 더해진다. 내가 일하는 학교는 아니지만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해서 내 일이 아닌 것은 아니다. 교실에서는 하하호호 즐겁지만 내 직업의 이런 어두운 면을 볼 때 나는 한숨이 나온다. 문제가 있는 것들은 바뀌어야 하는데 어떤 일들은 어디서부터 뭐가 문제인지 찾아내기가 힘들기도 하다. 선명하고 간결한 해결 방법이란 건 상상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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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해 어학당에 와서 만난 동료들은 함께 하는 시간이 매우 적다. 기본적으로 서로 수업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매우 길고 자리 이동이나 담당 수업의 변경도 잦다. 당연히 소수의 특정 사람들과 길게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그리고 협업의 양과 질이 일반 회사와는 매우 다르다.
‘나의 직업과 내가 만난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사실이다. 중년이 되면 본인의 얼굴에 책임져야 하듯이 마흔 살이 넘은 지금의 날 만들어 낸 것은 그동안 내가 만난 사람과 내가 겪은 일이다. 그중 직장 동료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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