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민섭 군은 고막에 패티 기름이 낀 듯 굼뜨게 대꾸했다. 그는 내가 단지 넋이 빠져서 재미없는 농담을 하는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말했다.
“결혼하자고. 여기서.”
“뭐라고?”
“롯데리아에서 결혼하자고.”
“……뭐라고?” 민섭은 그제야 고개를 쳐들고 나를 응시했다. 엎드린 채로 있던 나의 정수리가 그의 시선으로 뜨거워졌던 그때 그 기억.
- p.70
그녀는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금방 뽑아낸 신선한 척추를 갈아버렸다. 그러고 나서 즉사한 남자의 사체를 레이저로 소각해 버리는 데까지 십 초 남짓이 걸렸다. 문득 주변을 둘러본 그녀는 대여섯 명의 눈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아뿔싸, 이런 실수를! 이래서야 킬러 실격이군.
그녀는 등뼈에서 날개가 솟아나기 무섭게 하늘로 날아가 사라졌다. 새벽에 가까운 시간 홍대에서 술에 취한 채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은 민진이 사라진 궤적을 좇아 오랫동안 하늘을 응시했다.
- p.116~117
“진짜, 진짜 귀여워…… 사육사 선생님은 저런 거 매일 보시나요?” 레서판다의 귀여움에 뇌가 절여진 젊은 여자가 묻는다.
“네. 원치 않아도 매일 보지요.” 내가 대답한다.
“아. 너무 부럽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이의 목소리.
“사육사 선생님도 좋아하세요?”
“네?”
“레서판다, 좋아하세요?”
“아,” 나는 뒤늦게 질문을 이해하고 나서 대답한다. “정말 좋아합니다.”
- p.142
살다 보면 지구온난화로 섬이 잠길 수도 있고, AI의 발전으로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 유튜브로 잘 나가던 친구가 자살을 할 수도 있고, 몇 년을 만났던 여자 친구가 더 나은 신랑감을 찾아 이별을 통보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때 그 프리킥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다른 게 다 변하고, 깎여나가고, 이내 사라지더라도 그 프리킥만큼은 잊힐 수 없다. 그것만큼은 잊혀선 안 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p.195
창가 쪽 자리에 앉아 버릇하는 효진은, 이날 수업 시간에도 별생각 없이 창밖 운동장이 있는 쪽을 바라보다가 돌연 기함할 듯이 놀랐다.
“으아악.”
덩달아 놀란 주변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효진은 교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후 고개를 쭉 내밀어 보고서는 말했다.
“탱크야.”
“탱크라고?” 옆에 있던 아이가 물었다.
“민주가 탱크를 몰고 왔어.” 효진이 대답했다.
-p.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