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이 없겠어? 동네가 다 죽어버렸으니 죄다 떠난 거지.”
주인아주머니가 뜬금없이 뒤늦게 아까 물었던 것에 대답을 했다.
“원래 조용한 동네였는데 몇 년 전부터 재개발이다, 뭐다, 시끌시끌하더니 동네 꼬락서니가 이상하게 변해버렸어. 염병, 재개발이라도 빨리 될 것이지 벌써 몇 년째 저러고만 있으니 동네 전체가 흉가처럼 뒤숭숭해지지. 원래 여기가 풍수적으로 기운이 좋았거든. 내가 그런 데 좀 관심 있어. 그래서 여기서 가게 열었던 거고. 근데 하루아침에 땅 기운이 흉흉해지면서 악지가 되어버렸어.”
“그런 게… 갑자기 바뀌기도 하나? 풍수라는 게 배산임수? 뭐, 그런 거로 따지는 거라고 알고 있는데?”
“거, 모르는 소리 하지 마쇼. 이게 사람마다 기운이라는 게 다 다른 법이거든. 어떤 사람은 운이 좋고 어떤 사람은 더럽게 운이 없어서 하는 족족 죄다 망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동네가 후져지잖아? 그럼 결국 후진 종자들만 갈 곳이 없어서 남게 되는 거야. 동네에 거지 떼들만 득실거리는데 기운이 좋을 리가 있겠어!”
(p.54)
“어제 북쪽 끝 방에 묵었다며. 빈방도 많은데 왜 하필 그 방을 배정했대?”
“그 방이 왜요?”
말이 자연히 퉁명스럽게 나갔다.
“그 방이 어떤 방인지 얘기 못 들었어?”
“아니요, 별말 없던데요.”
판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누가 보는 사람 없는지 주위부터 살폈다. 그러고 나서는 목소리를 슥 깔고 말했다.
“옛날에 회장님 위로 형님이 두 분 더 계셨거든. 그 방이 원래 큰형님 방이었어. 근데 어느 날 둘째 형님이 도낏자루를 들고 와서 침대에 누워 있던 큰형님 목을 댕강….”
손으로 목이 잘리는 시늉까지 해보이며 판오가 실감 나게 옛날얘기를 시작했다. 어쩐지 입가에 문 웃음이 비열해 보였다.
“그렇게 몸통은 침대 위에 전시해놓고, 머리는 욕조 안에 담가둔 채로 연기처럼 사라졌어.”
“그걸 직접 봤어요?”
봉수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끼어들며 물었다. 판오가 예상 못 한 질문이었는지 눈썹을 꿈틀대며 말했다.
“당연히 못 봤지, 아주 오래전 일이야. 나도 얘기로만 들었어. 여기 동네에서는 유명하거든. 물론 직접 목격했던 사람들은 죄다 떠났고 지금은 소문으로만 남았고.”
(p.96)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작지만 불규칙적으로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자신의 발에서 나는 소리 말고 어디선가 희미한 기척이 느껴졌다.
정우는 그 자리에 멈춰 숨까지 참으며 귀를 기울였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자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다시 한 걸음씩 내디뎠다가 잠깐씩 멈춰 서야 했다. 문득 문득 정체를 알 수 없는 발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어느 방향에서 들려오는지 가늠이 안 돼 혼란스럽고 막막했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정우는 그리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갔다. 그곳엔 짙은 어둠 속에 파묻힌 시커먼 뭔가가 꿈틀꿈틀 흔들리고 있었다.
정우는 뒷골이 서늘해져 섣불리 다가설 수 없었다. 굽힌다리가 연신 후들거렸다. 그래도 뒤로 물러서지는 않았다. 적어도 상대는 덩치 큰 사람도, 괴물도 아니었다. 때마침 구름을 걷어낸 달빛이 들이치며 마침내 그것의 형체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쥐 떼였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수십 마리도 넘어 보였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또 하나의 끔찍한 형체. 그건 이 많은 쥐들에게 살점을 뜯어먹히는 고양이였다.
(p.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