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 너머 유토피아를 그렸던 ‘붉은 예술가’들의 희망과 좌절
소련·동유럽·중국·북한·일본·재일조선인…철의 장벽에 가려진 ‘냉전의 미술사’
‘사회주의 리얼리즘’ 아래 유토피아를 화폭에 담았던 예술가들의 굴곡진 삶과 작품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예술가들 그리고 150여 점의 희귀 그림과 사진 수록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사회사이자 문화사…근대미술의 넓이와 깊이를 한층 확대”
꽤 오랜 시간 동안 소련과 동유럽, 중국과 북한, 일본과 재일조선인 예술가와 작품들은, 최소한 한국에서는 ‘존재했으나, 존재하지 않은’ 것이었다. 미술사 연구자인 홍성후는 냉전 시기, 이른바 공산주의 진영의 ‘붉은 미술’과 ‘붉은 예술가’들을 현대사의 한 축으로 불러낸다. 그리고 우리가 미처 몰랐던 혹은 몰라야 했던 냉전의 미술사를 이 책에 담았다.
미술사학자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은 “냉전 시대 사회주의 진영의 미술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회주의 이념과 역사, 전쟁과 평화,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까지 깊이 있게 규명하는 ‘장벽 너머의 사회사이자 문화사’”라며, “그의 연구가 집대성된 이 책은 근대미술의 넓이와 깊이를 한층 확대할 뿐만 아니라 미술의 진정한 사회적 기능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성찰로 이끈다.”라고 말한다.
굿바이, 스탈린!
수십 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는 북한이 풍선에 실어 보낸 ‘삐라’가 심심치 않게 발견됐다. 과장된 인물과 거친 문구로 치장된, 한눈에 봐도 기이한 붉은 종이 쪼가리였다. 이 ‘삐라’의 형식적 기원은 소련의 ‘카리카투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리카투라는 용어는 캐리커처의 러시아식 표기이다. ‘인민대중에게 쉽고, 친근하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자본주의와 부르주아들을 폭로하고 풍자’하기 위한, 그라피카(그래픽) 예술의 한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소련의 예술은 거칠고 미학적으로 볼품없는 것이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 사회의 분위기(특히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예술가들이 시대와 조응하는 방식에 따라 변주되었다. 예컨대 소련의 예술가들은 레닌의 초상화를 정적이고 극히 사실적으로 그려내는(〈스몰니의 레닌〉, 이삭 브로드스키 작, [33쪽]) 한편, 붉은 깃발에 둘러싸여 격정적인 연설을 하거나 군중을 향해 손을 뻗는, 전형적인 ‘붉은 그림’(〈단상 위의 레닌〉, 알렉산드르 게라시모프 작, [38쪽]) 또한 그리기도 했다.
소련은 공식적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예술의 기치로 내걸었지만, 언제나 이견이 있어서는 안되는, 단일한 형식으로 강제되었던 것만은 아니었다고 책은 말한다. 특히 스탈린이 사망한 이후 일종의 ‘해빙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스탈린이 사망하자 그동안의 억압에 맞서 동유럽(헝가리, 폴란드 등)에서 항쟁이 분출했다. 이에 직면한 모스크바는 잔인하게 그들을 진압했지만, 한편으로 기존의 질서만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예술에도 다소나마 숨통이 틔었다. 그동안 서구적인 것으로 금기시되었던 인상주의 화풍이 화실마다 쏟아져 나왔다. 나아가 예술가들이 창작의 자유와 권리를 요구했지만, 어디까지나 세계 공산주의 진영의 맏형을 자임하던 소련의 통제 내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북한으로 간 재일조선인 예술가들
1959년 12월 ‘귀국선’(북송선)을 타고 재일조선인들이 북한으로 향했다.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닌 경계인들이 ‘조국’으로 북한을 택한 것이다. 이들 중에는 조선인을 가족으로 둔 일본인도 있었으며, 예술가들도 포함되었다. 북한은 이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1960년 북한에서 제작된 포스터 〈재일 동포들의 귀국을 열렬히 환영한다〉(곽흥모 작, [395쪽])를 보면, 인공기를 배경으로 저고리를 입은 어머니가 자식을 반기듯 두 팔을 벌려 이들을 맞이한다. 북한을 어머니의 나라로 표현한 것이다. 일본에서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머니의 나라에 안겼던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들은 어땠을까?
북한은 “단순히 감동과 연대의 정서로만 재일조선인 미술가들의 작품을 이해할 수는 없는”, “여전히 부르주아 예술의 형식적 잔재와 개인주의적 표현의 잔재가 남아 있다”고 폄훼했다. 재일조선인들이 북으로 향하기에 앞서, 1956년 8월 평양에서 김일성 반대파들의 정치적 쿠데타 시도가 있었으나 처참히 실패했다. 소위 ‘8월 전원회의 사건’. 이 사건의 여파로 대숙청이 뒤따랐다. 이 여진은 예술계도 피해갈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국을 찾은 재일조선인 예술가들의 처지가 어땠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한우영의 〈궐기한 남조선 청년 학생들〉[406쪽], 이철주의 〈피로 물들인 교복〉[406쪽], 박일대의 〈궐기한 남조선의 인민〉[405쪽] 등 남한의 현실(4·19혁명)을 폭로하고 재현하는 ‘붉은 미술’에 몰두한 것은 나름의 방편이었을 것이다. 유토피아로 여겼던 조국의 현실과 마주한 재일조선인 예술가들은 체제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일부를 빼면 대부분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다. 중앙 화단에서 밀려나 지방을 떠돌거나 ‘붓’이 아닌 ‘망치’를 들어야 했다.
제각각의 ‘붉은 미술’
그렇다면 소련과 북한 등 공산주의 진영이 채택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실패한 산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저자 홍성후는 “단순히 미학적 파산이나 정치적 오류로만 환원되기 어렵다”라고 설명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많은 경우 체제의 요구에 봉사하며 예술의 자율성을 제한했지만, 그와 동시에 계급적 불평등과 식민의 경험, 전쟁과 빈곤이라는 구체적인 현실을 가시화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단순한 국가권력의 언어만이 아닌, 미래를 상상하기 위한 또 하나의 시각적, 역사적 언어의 일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미-소 핵무기 경쟁과 전쟁의 위협 속에서 동독의 반전·평화의 예술, 일본의 진보적 예술가들의 반핵·평화의 예술이 단순히 프로파간다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배경이 2차대전의 전범국인 독일과 일본이라는 점은 매우 역설적이기도 하다. 책에서는 이 역설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당시의 국제관계, 정치적 분위기에 예술가들이 어떻게 조응하고 이를 작품으로 남겼는지를 상세히 묘사한다.
책에는 총 150여 개의 희귀 도판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작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꽤 흥미롭다. 특히 1924년에 이삭 브로드스키가 그린 〈코민테른 제2차 세계 대회에서의 레닌〉[32쪽]에는 수많은 군중들이 묘사되어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나비 넥타이를 메고 있는 유일한 동양인 참가자가 눈에 들어온다. 한인사회당을 대표해 대의원 자격으로 국제 공산주의 운동 기구인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참여한 최초의 조선인 사회주의자 박진순이다.
이렇듯 책은 미술사뿐만이 아니라 사회·문화사까지 입체적으로 조명하며 당대 역사의 한 장면, 한 장면을 기술한다. 이를 두고 미술사학자 최열은 “예술은 언제나 시대와 하나였고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해 왔다…연구자 홍성후는 아주 오랫동안 냉전의 장막에 가려졌던 한 시대의 미술을 우리 앞으로 불러낸다. 《붉은 미술》을 펼치는 순간, 우리가 외면하고 왜곡해 온 미술사의 한 페이지가 장엄한 극장처럼 펼쳐진다.”라고 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