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 네 번째 시집 『나는 산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출간
도시 생활 이십 년 만에 몸과 마음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 시인 최정은 서른아홉 살의 나이로 도시를 떠났다. 강원도 홍천에서 2년간 유기농법을 배운 뒤 경북 청송의 작은 골짜기에 정착해 홀로 밭을 일구며 살아온 지 어느덧 열네 해, 그사이 『산골 연가』(2015), 『푸른 돌밭』(2019)을 통해 산골 농부의 삶을 시로 옮겨 온 그가, 이번에는 새로운 노동의 자리에서 길어 올린 시들을 묶어 네 번째 시집 『나는 산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를 펴냈다.
소규모 유기농만으로는 생계를 잇기 어려워진 데다 갱년기까지 겹치면서, 시인은 골짝 밖으로 나가 산불감시원 일을 시작했다. 종일 산을 바라보며 마을과 마을을 오가는 이 노동은 뜻밖에도 그에게 새로운 시적 자리를 열어 주었다. 낯선 동네에서 만난 사람들, 밭에서 불을 피우다 눈이 마주친 어르신, 언 손을 녹이려 불을 피운 외국인 계절노동자들. 산불감시원으로 지나친 짧은 순간들이 시가 되어 1부와 2부를 채운다. 3부와 4부는 시인이 살아가는 청송 골짜기, 흙과 몸으로 통과한 계절의 기록이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 — 사투리가 살아 있는 산불감시원 연작
1부 “아주 마캉 조심하니더”와 2부 “조팝꽃 하얀 꽃줄기를 따라”에 걸쳐 이어지는 ‘산불감시원’ 연작 열여덟 편은 이 시집에서 가장 뚜렷한 개성이다. 경북 사투리의 억양이 시행 사이에 그대로 살아 있어, 낭독하면 한 편의 짧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콩을 터는 아흔 넘은 두 할매의 대화, 밭에서 마주친 외국인 계절노동자들과의 서툰 소통, 봄기운이 옮겨 가는 산골 풍경까지, 소멸 위기의 농촌을 관찰자가 아니라 그 안에 섞여 사는 이의 눈으로 담아 냈다.
몸을 통과한 흙과 노동의 언어
3부 “쓸쓸함에도 풀물이 들었다”는 홀로 농사짓는 몸의 시간을 다룬다. 갱년기와 이명을 다룬 「내 귀에 풀벌레」, 흙을 밟지 않고 살아온 도시의 삶을 되짚는 「어씽」 등은 자연 예찬에 머물지 않고 몸의 변화와 노동의 피로까지 정직하게 옮겨 적는다. 시인은 산문에서 “몸을 통과한 흙과 풀의 이야기가 시가 될 때 나는 큰 위로를 받는다. 그래서 내 시는 촌스럽다”라고 적었다. 화장기를 걷어 낸 얼굴을 닮은 언어들이 이 시집을 채우고 있다.
풀과 나무, 지구를 향한 상상력
4부 “초록으로 단결”에서는 시야가 밭과 골짝을 넘어 기후위기 시대의 지구로 확장된다. 『공산당 선언』의 문구를 뒤튼 「만국의 식물들이여」, 칡과 등나무의 얽힘에서 갈등(葛藤)의 어원을 읽어 낸 「갈과 등」 등은 생태적 상상력과 유머를 함께 쥔 작품들이다.
산문 두 편 — 산과 시, 그 사이의 이야기
시집 말미에는 시인의 산문 두 편이 함께 실렸다. 이번 시집을 위해 새로 쓴 「산의 높이와 능선이 주는 안정감 — 산과 시」는 산불감시원이라는 낯선 노동이 어떻게 새로운 시적 자리로 이어졌는지를 들려준다. 이어 실린 「노동과 흙과 시가 뒤엉켜 사는 삶 — 귀농과 시」는 2022년 7월 창비주간논평에 발표했던 글을 이번 시집에 다시 수록한 것으로, 첫 귀농을 결심하던 순간부터 『산골 연가』, 『푸른 돌밭』이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이 글에서 시인은 “올해로 십 년째 홀로 농사를 짓는다”라고 썼는데, 발표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은 열네 해째다. 두 산문을 나란히 읽으면 시인이 지나온 지난 시간을 한 호흡으로 조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