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백골’이 사랑에 이르기까지
이소회
아이들을 키우면서 살림살이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았다. ‘살림’이 그저 들어간 말이 아니란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느린 손이지만 열심히 쓸고 닦고 치우고 또 끓이고 볶고, 한다고 하는데도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었다. 구석구석 너저분하게 쌓이는 것들은 늘어갔다. 우리 아이들은 다른 집 애들처럼 쑥쑥 자라는 것 같지 않았다. 물론 하루만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말도 못 할 지경으로 살림이 엎어져 있었다. 세간이 반짝반짝 빛나는 살림 고수들의 집이 부러웠다. 어찌저찌 아이들은 자라주었지만, 생활은 매일반이다. 내가 전업주부가 아니라 서툴러 그렇다고 자위도 하지만 직업 생활에서도 허덕지덕, 뭐 하나 능수능란한 것이 없다.
하지만 원래 먹고 산다는 게 아무 티도 없고 끝도 없는 일의 연속, 난관의 연속이 아니던가. 김수영도 그처럼 어쩔 수 없이 계속되는 생활의 고난을 자주 절감한다. 시 「애정지둔愛情遲鈍」에서는 “조용한 시절 대신/ 나의 백골이 생기었다/ 생활의 백골”이라며 “생활무한生活無限/ 고난돌기苦難突起”라고 표현한다. 또 시 「생활」에서는 “생활은 고절孤絶이며/ 비애이었다/ 그처럼 나는 조용히 미쳐간다”라고도 했다. 한편 산문 「양계養雞의 변명」에서는 양계 경영을 ‘난리’로 묘사하는데, “우리네 사는 게 다 난리인 것처럼”이라고 하며 그것을 삶 전체의 문제로 수긍한다.
근 10년 경영에 한 해도 재미를 보지 못한 한국의 양계는 한국의 원고료 벌이에 못지않게 비참합니다. 이 비참한 양계를 왜 집어치우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중략)…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나는 도둑의 이 말이 무슨 상징적인 의미같이 생각되어서 아직까지도 귀에 선하고, 기가 막히고도 우스운 생각이 듭니다. 도둑은 철조망을 넘어왔던 것입니다.
…(중략)…
내가 양계를 집어치우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장면을 바꾸어 생각한다면, 도둑은 나고 나는 만용이입니다. 철조망을 넘어온 나는 만용이에게 ‘백번 죽여주십쇼, 백번 죽여주십쇼’하고 노상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하고 떼를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양계養雞의 변명」에서
아내 말대로 “지긋지긋한 원고료 벌이 하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될 줄 알았으나 양계는 또 다른 덫 같은 것이었다. 물론 김수영은 글 가운데서 “이제는 오히려 이 고역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는 양계를 통해서 노동의 엄숙함과 그 즐거움을 경험했습니다”라며 몸과 마음의 고생으로 점철된 생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원고료 벌이에서도 양계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양계 일을 보느라고 담양에서 올라온 만용이라는 머슴아이 학비까지 챙겨야 하는 삼중의 덫에 걸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인데, 하필 그때 집에 도둑까지 든 것이다.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너무도 우습고 서러운 말이다. 긍정과 희망의 순간들이 있지만 사실 생활 전체는 곤욕이다. 정말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인가, 어떻게 나갈 수 있는 것일까. 미궁 속인 듯 앞도 뒤도 없이 망연해질 때가 있지만 우리는 또 어쩔 수 없이 걸어가는 것이다.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