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에서 시작하면 기존 가격의 몇십 분의 일로 로켓을 만들 수 있다. 그 계산이 2002년 스페이스X 창업의 출발점이었다. 훗날 머스크는 이 원자재 비용 대비 완성품 가격의 비율을 ‘바보 지수idiot index’라고 명명했다. 이 지수가 높을수록 제조 공정이 비효율적이라는 뜻이었는데, 로켓의 바보 지수는 극도로 높았다. p.32
우주왕복선은 다시 날 수 있도록 유지하는 데 급급한 체계였다면, 팰컨 9은 처음부터 다시 날기 위해 설계된 체계였다. ‘재사용’이라는 같은 단어가 한쪽에서는 기체를 매번 분해해 조립하는 작업을 뜻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공항에서 비행기가 다음 편 승객을 싣는 장면을 뜻했다.p.86
그의 강점은 감정의 강도에 있지 않았다. 실패를 견디는 방식에 있었다. 실패를 숨기지 않고 원인을 쪼개고, 쪼갠 원인을 다시 실험과 일정으로 바꾸며, 이를 토대로 다음 시도를 가능하게 만드는 체계를 세우는 것이다. 나 역시 지난 10년 동안 1,300개가 넘는 기업을 실사하거나 투자 심사를 하면서 깨달은 창업의 가장 잔인한 질문은 단지 ‘할 수 있는가?’가 아니었다. ‘다음날도 할 수 있는가?’였다. p.104
이 전환이 스페이스X에 길을 열었다. 재사용과 수직계열화로 비용 우위를 쥔 스페이스X는 화물 보급 서비스CRS에 이어 상업 유인 수송Commercial Crew, 유인 달착륙선Human Landing System: HLS 계약을 잇달아 따냈다. 빌이 자신의 사업에 있어 불가능한 원인으로 지목한 바로 그 NASA가 스페이스X에는 최대 고객이자 파트너가 되었다. p.108
짐을 싣던 캡슐은 그렇게 사람을 싣는 우주선이 되었다. 2010년 궤도에서 우주선을 회수한 첫 민간 기업으로 출발한 드래곤은 국제우주정거장을 50번 넘게 오갔다. 유인 비행은 19번 모두 성공했고, 2020년 이후 20개 나라의 우주인 78명이 드래곤으로 궤도에 올랐다가 전원 무사히 돌아왔다. 화물선에서 출발한 우주선이 한 사람도 잃지 않고 사람을 실어 나르는 수단이 되었다. p.202~203
1단계에서는 60년 동안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통념, 즉 부스 터에 착륙 다리가 필요하다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했고, 2단계에서는 착륙 다리를 통째로 제거했다. 이를 통해 약 6톤의 질량을 절감했다. 3단계에서는 그리드 핀이 방향 제어와 캐치 포인트 역할을 동시
에 하도록 통합했다. 4단계에서는 2023년 1차 비행부터 2024년 5차 비행까지 18개월 동안 스타십을 다섯 번 발사하며 데이터를 쌓았다. 그제야 5단계가 가능해졌다. 모델 3의 생산 지옥과 정확히 반대순서였다. p.222
더 큰 이유는 두 인프라가 같은 장벽 앞에 서 있기 때문이었다. AI 연산과 우주 발사는 장기적으로 전력, 냉각, 스케일이라는 동일한 물리적 제약을 공유한다. 칩을 더 키우려는 쪽과 질량을 궤도로 올리려는 쪽은 결국 같은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값나가는 칩 회사의 수장이 로켓 발사장까지 온 이유가 거기 있었다. p.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