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농성할 때였다. 지지 방문을 하려 했는데, 입구에서 제지당했다. 다른 사람들은 들어가는데 왜 우리만 막느냐고 물었다.
“저 사람들은 ‘선량한 소비자’예요. 당신들은 노동조합이고. 눈빛만 봐도 압니다.”
동료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려 노력하는 사람이 선량하지 않다면, 누가 선량한 사람인가! 우리는 선량한 소비자는 아닐지 몰라도, ‘선량한’ 노동자다.
- 〈여는 글〉, 18쪽
어느 날,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산책하고 있는데, 갑자기 너무 행복한 거다. 완벽하게 행복해서, ‘이렇게나 행복해도 되나? 이 행복이 깨지면 어쩌지?’ 겁이 날 정도로 가슴이 벅찼다. 이에 대해서도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해 봤는데, 많은 엄마가 육아 과정에서 이런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아이가 고등학생 때, 이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줬다. 아이는 듣자마자 시크하게 대답했다.
“포유류 암컷에게 일어나는 호르몬 작용이에요.”
푸하하~! 우리는 함께 오래오래 웃었다. 모성애 강요는 거부하면서도, 은근슬쩍 나를 모성애로 포장하려 한 판타지에의 욕망. 그 이중성은 그날로 박살이 났다.
- 〈모든 첫 만남은 낯설다〉, 31쪽
“왜 샌드위치를 먹지 않았어?”
아이가 대답했다.
“다른 아이들은 다~ 김밥을 가져왔어.”
인생 첫 도시락. 대부분의 학생들이 김밥을 가져온다는 것을 몰랐던 아이는 김밥을 선택할 수 없었다. 나는 아이의 선택을 존중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없었다.
정보가 주어지지 않은 선택은, 민주주의의 절차를 거쳤을 뿐, 진정한 선택은 아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정보를 주지 않고, 선택과 결정을 강요하곤 한다. 그러고는 말한다. ‘네가 선택했으니, 네 책임’이라고. 정보 없는 선택은 어른들의 강요이자, 때론 폭력이기도 하다.
- 〈소풍 도시락은 김밥이 좋아, 샌드위치가 좋아?〉, 46쪽
많은 사람의 기대와 달리, 완벽한 교사는 드물다. 완벽한 사람이 드문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완벽한 부모도 드물다. 모든 사람은 살면서 계속 배우고 성장한다.
교사와 갈등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는 것이다. 교사가 적군이라고 확신할 때와 학생의 발달을 위해 교사가 보완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할 때는 문제 해결 과정이 전혀 다르다.
학생을 교육할 때, 교사와 학부모는 한 팀이다. 이는 학부모도 유의해야 할 부분이지만, 교사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
교육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신뢰는 시간과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법으로만 해결하려 하는 순간, 교육공동체는 무너진다. 무너진 교육공동체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이 될 수밖에 없다.
- 〈교사와의 관계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 55쪽
판사나 교사처럼 말하지 않기
판사나 교사라는 직책의 언어는 대화가 아니다. 판단이고, 결정이고, 통보이며 지시이다.
많은 양육자들은 본인들이 아이보다 지혜로운 말을 하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그러다 보니 판사나 교사처럼 말하는 데, 이런 말은 잘못에 대한 평가와 처벌일 뿐, 문제 해결을 돕지 못한다. 더욱이 관계 개선에는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최악으로 만들기도 한다.
부모는 그냥 부모이면 된다. 대화는 그냥 대화이기만 하면 된다. 판사 노릇은 진짜 판사에게 맡기고, 교사 노릇은 진짜 교사에게 맡길 일이다.
- 〈자녀와 대화하기 ABC〉, 57쪽
선생님이 학생들한테 모든 걸 잘하라고 요구하면, 그건 아동학대다. 미적분 못 푼다고, 영어 좀 틀린다고 능력으로 사람 평가하면 차별이다. 한 사람이 모든 걸 완벽하게 다 잘할 수 없고, 능력도 스타일도 사람마다 다르다. 어떻게 모든 걸 100점 받고 사냐, 그리고 100점이 뭐 중요하냐. 선생님이 원하는 대로 학생이 다 맞춰 줄 수는 없다.
이런 유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밑밥이다.
“그런데 부모도 사람이다. 엄마든 아빠든 완벽할 수 없거든. 부모한테도 완벽함을 요구하거나 모든 걸 잘하라고 하면, 이것도 학대고 차별이야. 노력은 하겠지만, 100점을 요구하지는 마. 암튼, 내 남편 좀 잘 봐주라.”
요리 덕분인지, 정성이 가상해서인지, 그다음부터 아이는 많이 참아 줬다. 충돌을 피했다.
- 〈이건 뇌물이야, 내 남편 좀 잘 봐주라!〉, 68쪽
교육에서 ‘무엇을 가르칠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나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에 먼저 답해야 한다. 이는 학교뿐 아니라, 모든 교육에서의 화두이기도 하다.
우리의 공동체가 지향하는 사회는 어떤 인간형을 원하는가? 어떤 가치와 능력, 어떠한 성품과 역할을 요구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담은 교육 내용과 교육 활동을 ‘교육과정’이라고 한다.
오늘의 교육은 사회의 미래가 결정되는 공간이다.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입장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치는 전선이며,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기도 하다.
- 〈교육이 뭔데?〉, 105쪽
한국에서 교사를 선발할 때, 착한 사람, 도덕적인 사람 등의 조건을 요구하는가? 전혀 아니다. 내 사례에서도 말했지만, 한국에서 교사가 되려면 공부를 좀 잘해야 한다. 다른 조건은 없다.
한국 전체 인구 중 좋은 사람의 비율과 교사 중 좋은 사람의 비율은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아마도 치킨집 사장님 중 좋은 사람의 비율, 또는 의사 중 좋은 사람의 비율과 비슷할 것이다.
만약 교사들이 다른 업종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고 한다면 다른 업종보다 좋은 사람이 적은 업종은 과연 무엇일까? 말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면서, 특정 직업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얼마나 근거 없는 착각인가!
- 〈어쩌다 교사〉, 143쪽
성적이 좋거나 낮다는 것으로, 또는 키가 크거나 작다는 것만으로 사람을 차별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차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서로 다를 뿐이라는 인권 의식이 사회적으로 자리 잡았다. 차이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이제는 모두가 인정하는 인권 감수성이다.
그런데 키가 크는 속도가 사람마다 다른 것처럼, 마음이 성장하는 속도도 사람마다 다르다. 마음이 성장하는 속도가 느린 경우에도 기다림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발달이 더디거나 늦어진 상태이지, 도덕적으로 비난할 일은 아니다. 이 또한 차이를 인정하고 지원해야지, 차별해서는 안 된다.
- 〈몸과 마음, 정신은 성장 속도가 달라요〉, 173쪽
공교육 제도는 평등한 교육권을 실현하는 도구이다. ‘교육 공공성’은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의미한다. 교육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과 세상을 바꿔 교육을 바꾸려는 노력은 결국 하나이다.
그래서 학생을 교육하는 모든 선생들은 항상 스스로를 성찰하며 답해야 한다.
“나는 평등한 교육권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여기에 답할 수 있어야, 공교육의 교사이다.
- 〈공교육이란 무엇인가〉, 188-189쪽
사무금융노조 조합원을 만났다. 보험 관련 상담을 하는 노동자다. 그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이런 말을 해도 될까, 많이 망설였습니다.”
요즘 악성 민원으로 고통받는 공무원·교사의 고통에 대해 누구보다 공감하지만, 언론과 시민들이 함께 분노하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많은 자괴감이 들었다고 한다. ‘교사와 공무원은 그런 일을 당하면 안 되는 사람들이고, 우리는 그런 일을 당해도 되는 사람인 건가?’ 하는 좌절과 무력감이다.
“죄송합니다. 미처 살피지 못했습니다.”
- 〈악성 민원에 연대로 맞서기〉, 199쪽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교육과 성장은 언제 어디에서 일어났는지 생각해 보면, 솔직히 학교는 아닌 것 같다. 나는 노동자로서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노동조합에서 배웠다.
보통 선생은 말로 가르치고, 좋은 선생은 행동으로 가르치며, 훌륭한 스승은 삶으로 가르친다고 한다. 노동조합에는 훌륭한 스승이 너무나 많았고, 그들로부터 나는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히며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노동조합 활동을 헌신이라거나 희생이라고 표현하지만, 나에게 노동조합은 새로운 도전이고 배움이고 성찰이자 성장의 공간이었다.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은 노동조합이다.
- 〈노동자의 학교, 노동조합〉, 206쪽
나는 생태·인권·평화·노동에 관해 교육했고, 민주주의와 정의를 가르쳤다. 교사로서 행복했으나, 내 교육은 내 교실에서만 먹히는 것이었다. 유효 기간 1년짜리였다. 교실 밖 현실에서는 학생들의 삶을 지켜 내지 못했다.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했는데, 결과적으로 ‘나’만 좋았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열심히 공부시킨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우는 학생이 다른 학생으로 바뀔 뿐이다. ‘의자놀이’다. 좋은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불안정 노동이 판을 치며, 학벌이 인생을 결정해 버리는 경쟁 사회에서는 결국 누군가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아동·청소년이 주체적이고 협력적이며 평등과 정의를 중시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그런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도 함께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부모와 교사가 해야 할 AS이자 책임이다.
교실의 학생이 모두 노동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모든 노동자는 한때 교실의 학생이었다.
- 〈모든 노동자는 한때 교실의 학생이었다〉, 208쪽
당시 전교조에는 전교조 규약을 지키며 활동하다 해직된 조합원이 9명 있었다. 당연히 전교조는 해직된 조합원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만약 정부가 원하는 대로 해직되는 순간 조합원 자격을 잃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정부는 노조를 탄압하며 새 집행부를 계속 해직함으로써 아주 쉽게 노조를 길들일 수 있게 된다. 전교조 투쟁을 지지하던 한 청소년은 “동아리 회원은 동아리에서 정한다. 전교조 조합원을 전교조에서 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규약 개정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물에 빠진 친구의 손을 놓으면 너는 살려 주겠지만, 놓지 않으면 너도 물속으로 밀어 넣겠다’는 협박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친구의 손을 놓으면 정말 나는 살 수 있는지, 아니면 그 뒤에는 나마저 죽일지 알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어느새 장르는 누아르가 되어 버렸다.
인간은 위기를 만나면 솔직해진다. 손을 놓고 살아남자는 의견과 손을 놓아도 살아남을 방법은 없다는 의견으로 나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어느새 선택의 프레임에 갇혀 버렸다. 이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프레임을 깨는 것이었다.
“내가 물에 빠진 친구의 손을 잡을지 놓을지를 왜 네가 관여하는데!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는데!”
- 〈우리는 한명도 버리지 않는다: 법외노조 투쟁의 시작〉, 230쪽
그 교수는 보고서를 만들면서 촛불 광장 참가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를 ‘선물로 드리겠다’고 말했다.
“촛불 광장 참여자 가운데 이전에 민주노총의 집회와 행사 또는 민중총궐기에 참여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몇 퍼센트일까요?”
답하기가 애매했다. 민중총궐기의 최대 참가자는 13만 명이었고, 촛불집회의 누적 연인원은 1700만 명이었다.
“저도 놀랐는데, 40%였습니다. 꼭 전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민주노총,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날 콩나물시루가 떠올랐다.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어 물을 부으면 그대로 다 쏟아져 내리는 콩나물시루. 부은 물이 곧바로 다 쏟아지니 물을 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 허무하지만, 가만히 기다리다 보면 콩나물이 쑥쑥 자란다.
우리의 운동도 콩나물시루에 물을 붓는 일이다. 들인 노력에 비해 세상의 변화는 더디고, 눈에 보이지 않아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변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계속해서 반복하는 꾸준함이다.
- 〈노동자가 사회 변혁의 중심이 되다: 박근혜 퇴진 촛불〉, 270쪽
가끔 큰아이가 일요일에 찾아왔다. 아무 말 없이 백팩에서 포장된 소고기를 꺼냈다. 빈 사무실에서 둘이 일회용 가스레인지를 켜고 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냥 엄마에게 소고기를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단다. 둘째 아이는 가끔 들러 나를 꼭 안아 주고 갔다. 분명 속상한 일이 있었을 텐데 차마 수배 중인 엄마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돌아보면 수배라는 조건 때문에 2017년의 ‘6.30 사회적 총파업’ 성사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에는 이 사업을 완수할 때까지만 잘 버티면, 그다음에는 구속되고 구속 기간을 채운 뒤 집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절차였다.
- 〈퇴근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수배의 시간〉, 284쪽
“출소하고 집밥 좀 먹었어요?” 하고들 물었다. 그런데 이건 남성들의 시각이다. 나에게 집밥은 내가 만든 밥이다.
수배·구속 기간에 정말 먹고 싶었던 것은 내가 만든 김치찌개였다. 집마다 뭔가 조금씩 다른 묘한 차이가 있지 않은가! 딱 내 입에 맞는, 내가 만든 김치찌개를 먹고 싶었다. 드디어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출소하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큰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비지찌개 만들어 줄 수 있어요?”
일주일을 참은 것이다. 아니, 3년을 참은 것일 테다. 딱 그 맛이 먹고 싶었겠구나. 마음이 울컥했다. “또 없어?” 엄마가 만든 비빔국수, 닭볶음탕, 볶음밥, 잡채 등등. 매일매일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 〈드디어 집에 돌아오다〉, 305쪽
수배·구속되었던 동지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정말 다양한 후유증을 겪고 있었다. 나처럼 공간 감각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었고, 차를 타지 못하는 분도 있었으며, 염증이 심해지거나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물론 아무런 이상 증세가 없는 분들도 있었는데, 정말 없는 것인지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후유증이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안심이 되었다. 나도 자연스럽게 회복 중이구나 싶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피해자가 있고, 정의로운 사람들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를 도우려 한다. 그런데 국가 폭력 피해자들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국가 폭력 피해자들은 힘들다고 티 내면 안 되고, 모든 것을 감수하도록 요구받는다. 투쟁은 함께했지만 피해의 극복은 개인이 한다.
활동가들은 강한 자가 아니라 버티는 자들이다. 그래서 힘껏 버티다가 부서지기도 한다.
부서지기 전에 서로의 나약함을 드러내야 서로를 치료할 수 있다. 그래야 오래 이 일을 할 수 있다.
- 〈국가 폭력 피해자가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314쪽
복직 투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복직이 가능한 조건을 만드는 투쟁이다. 더 이상 복직 못하는 해고자가 없도록 하는 투쟁이다. 바로, ‘박근혜 시행령’ 폐기 투쟁이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전교조 해직 교사의 복직을 막기 위해 시행령을 개정하였다. 해고된 지 3년이 지나면 채용할 수 없게 바꾸는 등의 내용이었다. 아직까지도 전교조 해고자들은 그 시행령에 막혀 복직을 못 하고 있다. 박근혜는 탄핵되었으나, 박근혜 퇴진 투쟁을 한 사람은 해고되어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시행령 개정은 법외노조 투쟁의 마무리이자, 박근혜 정권과의 싸움에 종지부를 찍는 과정이다. ‘교사’로서 하는 내 마지막 투쟁이다.
- 〈다시, 교실에서 수업하는 꿈을 꾸다〉, 327-328쪽
현재의 분절된 노동 조건에서의 노동조합 투쟁은 노조 밖 노동자들의 삶에 바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 원청의 임금 인상은 하청의 임금 인상과 무관하다. 이는 원청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고임금이라는 의미일 뿐 아니라, 노동조합의 투쟁이 노조 밖 노동자들과 연결되지 못하고 섬처럼 고립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조합의 투쟁에 노조 밖 노동자들이 지지를 보내지 않는 현실은, 우리의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책적인 노동 개악의 위험성보다 현재 나의 근로 조건이 더 열악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노동자도 노조 없는 노동자도 서로에게 서운하다. 하지만 이러다간 다 죽는다.
- 〈노조 없는 노동자들과 노동조합〉, 345쪽
내가 살면서 만난 선량한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한국 사회에서 ‘불온하다’고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한국 사회는 선량한 사람들을 불온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선량한 사람들이 참고 견디기에는 고통스러운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의 차별과 혐오, 서열과 경쟁을 견디지 못하는 선량한 사람들은, 불온하게도 늘 평등을 이야기하게 된다. 그렇게 평등 세상을 꿈꾸는 불온한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노동조합 조합원을 만났을 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나는 돈만 내는 조합원이에요.”
“일제 강점기에 일본 순사 앞에서, ‘나는 독립운동 자금에 돈만 냈어요’하면 그냥 봐줄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합비를 낸 건, 이미 가장 중요한 걸 한 거예요.”
- 〈불온한 노동자의 기도〉, 3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