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개를 숙여 보이자, 편집장은 은밀한 이야기라도 하듯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최 기자, 큰 거 하나만 물어와. 진짜 자극적이고 센 거. 박 기자 퇴사했어. 거기가 공석이니까 내가 넣어줄 수 있어. 그러니까 잘 부탁해.”
“네.”
힘주어 대답한 다음 편집장실에서 나왔다. 그 순간 생각났다. 부고의 주인, 오수희가 누구인지.
- p.12
핸드폰은 예기치 못한 순간 진동했다. 밤이었고, 이 시간에 내게 전화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모르는 번호였다.
전화는 끈질기게 계속됐다. 마치 내가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안다는 듯이. 나는 몇 번 더 참다가 결국 전화를 받았다. 그 순간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강우 씨! 지금 힙노스에 접속했죠?”
- p.51
나를 감시하는 놈이 있다면, 이곳까지 올 수도 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다만 이런 병원에서 대범하게 나를 덮치거나 하지는 않으리라. 쉽게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없을 테고.
그렇게 생각하며 커튼을 열었다.
침대 한가운데 종이가 올려져 있었다. 흰색이었고 깨끗하게 반으로 접혀 있었다. 펼치면 아마 A4 크기 정도 될 것 같았다.
그 종이를 손가락 끝으로 집어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펼쳤다. 종이에는 빨간색 볼펜으로 딱 두 문장이 적혀 있었다.
- p.85~86
말도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여기서 눈을 뜨면 그와 마주친다. 반쯤 빠져나와 덜렁거리는 그의 눈알이 무방비 상태로 침대에 누운 내게 고정되어 있다. 서늘한 공기와 비릿한 냄새가 그 증거다. 게다가…… 그는 조금씩 다가온다. 발치에 머물러 있던 그가 침대 중간을 지나 어느새 내 옆에 바짝 붙어 섰다. 내 옆에 있다. 그가, 저세상으로 가야 했을 죽은 자가 환하게 웃으며 서 있다. 죽음이란 이토록 달콤하고 행복하다는 듯.
그러니 같이 갈래?
- p.104
“힙노스 이야기라고 추측한 건 부고를 받았기 때문입니까?”
“네. 수희 님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땐 그러려니 했어요. 물론 마음은 아팠지만.”
“하지만 빈소에도 가지 않으셨죠.”
“그때 마침 B형 독감에 걸린 상태였어요.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죠. 그래도 철민 님과 통화는 했고, 수희 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얘길 들었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철민 님 소식도 날아왔어요. 평범한 부고였지만 전 바로 알았어요. 철민 님 역시 자살했다는 걸.”
“어떻게…….”
“어떻게 알았느냐고요?”
“네.”
조수경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는 한눈에 다 들어오는 좁은 카페 안을 둘러보더니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목소리를 낮췄다.
“다른 그룹에서도 자살자가 나왔거든요.”
- p.121~122
화평제약 연구진은 힙노스에 대해 거의 말해 주지 않았다. 사실 치유의 소리를 빼면 대부분은 너무나 직관적이어서 궁금증을 품을 만한 구석이 없기도 했다. 당신은 행복합니다, 라고 말하는 여성의 음성을 따라 똑같이 중얼거리게 만드는 앱에 뭐 그리 궁금한 점이 많았겠는가.
“여기 보이죠? 이 그래프가 치유의 소리를 들을 때 분비되는 도파민 양을 뜻해요. 이 정도 수치면 중증의 우울감을 호소하는 환자가 아니라면 꽤 만족스러운 경험을 했을 거예요. 행복감과 안정감을 느끼고, 희망을 품을 의지도 생겼겠죠. 문제는…….”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민수지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 p.206~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