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국가 기원적 힘과의 밀접한 관계로 언제나 권력과 동일시되었으며, 긴밀한 가족 관계에 대한 집중과 사회에 대한 무관심으로 그들은 항상 모든 사회 구조의 파괴를 위해서 일한다는 의심을 받았다고 아렌트는 분석한다. _58쪽
아렌트는 «사회적 친유대주의»는 항상 정치적 반유대주의에 신비스러운 광신주의를 보탰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유럽 국가들에서의 반유대주의가 결코 대중들을 조직하는 최상의 강령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드레퓌스 사건 후에 유대인이 누렸던 모호한 영광이 바로 유럽에서 그러한 상황을 불러왔고, 그것은 “정치적 동기와 사회적 요소가 서로 녹지 않는 혼합물”로 나타난 결과라는 해석이다. _114쪽
아렌트에 따르면 축적되고 독점된 권력에 기반을 둔 국가는 각 개인을 무력하게 만들고, 그의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힘을 모두 빼앗는다. 그리고 개인을 단순히 권력 축적 기계의 한 부속품으로 전락시킨다. 여기서 개인은 이 기계의 궁극적 운명에 대해 단지 장엄한 사유를 하며 스스로 위로하고, 이 기계는 자신의 내적인 법칙을 단순히 따름으로써 전 지구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도록 작동한다고 한다. _176쪽
아렌트는 국민국가의 원칙인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의 분명한 내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분명하게 민족주의가 제국주의적 경향을 발전시켰는가 하면, 그것은 바로 이 심연을 ‘종족적 민족
주의tribal nationalism’와 ‘철저한 인종주의outright racism’로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고, 또 그렇게 해 왔기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_181쪽
당시 그들은 국민국가가 계급 투쟁으로 인해 심각하게 위험에 처해 있다는 판단 아래 국민의 불만과 잉여 자본을 비자본주의 국가로 보낼 수 있는 제국주의 팽창이 국가 전체에 공동의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더군다나 팽창은 영원할 것 같이 보였으므로, 대중들조차도 팽창을 구원자로 보면서 «애국주의에 붙어사는 기생충»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_181쪽
아렌트는 그러나 아프리카 인종 사회에서 전체주의 정권에게 덜 즉각적이기는 했지만,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경험은 바로 ‘이윤 모티브’가 항상 신성한 것은 아니며 파기될 수도 있다는 것, 사회는 경제 외의 다른 원리에 의해서도 작동될 수 있으며, 그럴 때 합리적 생산과 자본주의 체제의 조건에서 혜택을 덜 받은 사람들을 선호한다는 경험이었다고 지적한다. _236쪽
아렌트에 따르면 선전과 교화의 관계는 한편으로는 운동의 규모, 다른 편으로는 외부의 압력에 달려 있다. 선전의 필요성은 항상 외부 세계에 의한 것이고, 운동 자체는 선전보다는 교화의 방법을 쓴다고 한다. 하지만 테러와 짝을 이루는 교화는 운동의 힘이 세지고, 전체주의 정부가 더욱 고립되고,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느낄 때 강화된다. _364쪽
그는 모든 직분자를 임명할 뿐 아니라 그들은 지도자의 살아 있는 화신이고, 모든 명령은 그렇게 영원한 하나의 기원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 아렌트에 따르면 이 지도자와 모든 임명된 하위 지도자 간의 완벽한 동일화와 모든 행해진 것에 대한 책임의 독점이 다른 일반적인 독재자 또는 전제군주와 전체주의 지도자와의 결정적인 차이이다. _395쪽
아렌트에 따르면 한 인간의 도덕적 인격이 살해되었을 때 그가 산 송장이 되는 것을 막는 것은 여전히 그의 개인적인 것, 그에게 고유한 ‘동일성identity’을 구별하는 일이다. 불모의 형태 속에서 그런 개성은 “끝없는 금욕a persistent stoicism”을 통해서 유지될 수 있는데, 전체주의 통치 시절 많은 사람이 권리나 양심도 없이 이 인격의 절대적인 고립 속에서 도피처를 찾았다고 한다. _459쪽
역사에서 모든 종말은 “새로운 시작”을 포함하고 있고, 이 새로운 시작은 종말이 가져올 수 있는 “약속the promise”이고, 유일한 «메시지»라는 것이다. _503쪽
제국주의 시대 국민국가가 무너지고 부르주아 자본주의 사회의 철저한 이익 중심과 한계를 모르고
뻗어 나가는 팽창욕과 권력욕 앞에서 무너져 내린 사람들, 제쳐지고 소외된 사람들, 자기 자리를 얻지 못하고 뿌리 뽑히고, 집 없이 쫓겨나서 익명의 잉여 인간으로 ‘인권’을 잃은 사람들, 이들 속에서 유사하게 집을 잃고 뿌리 뽑힌 경험을 가진 전체주의 지도자가 탄생했고, 이 지도자는 그와 같은 처지의 대중을 모으고 이끄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_5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