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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들판

침묵은 어떻게 역사를 드러내는가


  • ISBN-13
    979-11-7213-454-9 (03840)
  • 출판사 / 임프린트
    한겨레출판 주식회사 / 한겨레출판
  • 정가
    22,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6-08-13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마거릿 주혜 리 Margaret Juhae Lee
  • 번역
    장상미
  • 메인주제어
    인물: 역사인물, 정치인, 군인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인물: 역사인물, 정치인, 군인 #이철하 #항일운동 #독립운동가 #한국계 미국인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40 * 210 mm, 408 Page

책소개

1970년대 휴스턴 교외 지역에서 거의 유일한 한국계 미국인 가족의 일원이던 저자 마거릿 주혜 리는 ‘너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는 타인의 질문, 지금보다 더 나은 어딘가를 향해 끊임없이 떠나고 싶은 충동,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을 안고 살아갔다. 전과자이자 집안의 수치인 할아버지. 가족은 그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고, 삶에서 필요한 것을 알기 위해 ‘나’가 누구인지 알아야 했던 마거릿의 질문과 의문에 대한 답은 번번이 침묵으로 돌아왔다. ‘침묵’이 가족의 유산으로 대물림되었다고 말하는 저자는 가족사의 공백이 자신이 겪어온 모호한 정체감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리라 예감하며 자랐다. 

60여 년 만에 침묵이 깨진 건 성인이 된 마거릿의 청에 할머니가 응답하면서부터였다. 병에 걸려 할아버지에 관한 조사를 끝내지 못한 아버지의 작업을 언론학을 전공하고 기자가 된 마거릿이 이어받으며 시작된 인터뷰였다. 이후 마거릿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할아버지를 추적하는 데 몰두한다. 저자와 아버지의 노력으로 알아낸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최초 항일 동맹휴학을 이끌고 수차례 항일 시위를 조직한 1909년생 학생 운동가이자 공산주의 혁명에 뿌리를 둔 독립운동가, 또 사상가였다. 조선학생과학연구회에 가입해 비밀결사 활동을 하다 투옥되었고, 빨치산 활동을 주도한 이현상의 동지였던 그는 손녀의 추적 끝에 사후 60여 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야기는 잊힌 독립운동가 한 사람의 삶을 복원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비밀만큼이나 저자와 ‘아버지’가 성장 과정에서 겪은 소외와 이름 붙일 수 없는 공허가, 남편의 삶을 숨기고 부정해온 할머니의 생애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분단 이후를 통과하며 한 가족의 기억에 무엇이 남고 무엇이 지워졌는지를 보게 하고, 묻어 둔 ‘비밀’과 ‘애도되지 못한 역사’는 사라지지 않은 채 끝없이 현재를 점유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목차

저자의 말

 

프롤로그: 기원에 관한 이야기

 

유골

이장

유산

 

1. 할머니와의 첫 번째 인터뷰

 

얌전한 소녀

소녀 시절

사진

잃어버린 역사

탈출

새출발

상처 난 조직

저항

우화

치료

결핵

독재

반체제 인사

 

2. 할머니와의 두 번째 인터뷰

 

자유의 맛

이주

신 박사

잃어버린 아이러니

단서

부역자

독방 감금

기록

항거

제물

 

3. 할머니와의 세 번째 인터뷰

 

부화장

화양연화

영웅

생존

빈소

내용

종손

 

에필로그: 천국의 정원

 

참고자료

감사의 말

추천의 말

본문인용

부모님은 관 없이 유골만 남기기를 바랐다. 아버지가 2018년 4월에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우리는 아버지에게 유골을 어디에 뿌리면 좋겠냐고 물어볼 시간이 없었다. 어머니는 의견을 내기에는 상태가 너무 나빠져 있었다. 부모님이 은퇴한 지역인 오리건? 가장 오래 살았던 텍사스? 태어난 나라인 한국? 두 분은 유해가 어디에 안치되기를 원했을까? 두 분에게는 어디가 집이었을까? _30쪽

 

지금까지 알아낸 바로, 할아버지의 존재가 지워진 사실은 할머니에게서 아버지에게로, 또 내게로, 대를 거치고 대륙을 가로질러 전해져온 우리 가족 유산의 일부이다. 나는 미국에서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그 어느 도시에 살면서도 진정으로 내 집에 머무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나는 그 이유가 할아버지의 삶이 잊히고 만 사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이리저리 떠도는 성인기의 내 삶에서 단 하나 변함없는 것은 더 전망 있는, 더 흥미로운, 더 ‘나은’ 어딘가로 이동하려는, 탈출하려는 충동뿐이다. 내 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_57~58쪽

 

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들은 바로는 아기 때 자신에게 결핵을 옮긴 이가 할아버지였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아마도 감옥에서 옮았을 것이다. 그 세균이 20년 넘게 잠복해 있다가 아버지가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인 1958년에 본격적으로 발병했다. 전쟁 후 결핵은 유행병이 되었다. _123쪽

 

내가 그랬듯이 할아버지도 대도시의 삶이 잘 맞았다. 그래도 정체성이라든지, 인생에서 정말로 원하는 것을 찾는다든지 하는 나의 고민은 할아버지의 투쟁에 비하면 너무 시시하게 느껴진다. 할아버지는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우는 십 대 혁명가였고, 그로 인해 수감되었다가 스물일곱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당신이 죽은 지 60년이 지난 1996년에 새로운 직업 경력을 쌓으러 온 이 대도시의 공원 벤치에 앉은 서른두 살의 독신 여성인 손녀처럼 ‘자기 자신을 찾고자’ 고민하는 사치를 누릴 시간은 전혀 없었다. _146쪽

 

만약 그가 말한 그대로라면 이 문서들은 한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고, 학자와 언론인, 유가족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보존해두어야 한다. 심 씨는 일제강점기의 역사적인 문서를 왜 서울 변두리의 먼지 쌓인 계단식 2층 주택에서 팔고 있는 걸까? _288쪽

 

“이 기록이 왜 보존되지 않았나요?”

심 씨는 이렇게 대답한다. “감당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아무도 일제강점기 기록에 담긴 정보를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이제는 그 시절에 공산주의자였다는 사실이 죄가 되지는 않지만, 자기 가족이 식민 지배 세력, 즉 일제에 협력한 인물로 지목될지 모를 기록을 누가 밝히고 싶어 하겠는가? 그것은 아무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오점이다. _290~291쪽

 

할머니가 남편의 신념이 담긴 물적 증거를 파기한 것은 이런 이유였다. 할머니는 내용에는 관심이 없었다. 전쟁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할머니의 임무는 목숨을 지키는 것이었다. 자신, 그리고 자식들의 목숨을. _306쪽

 

그렇다 해도 나는 여기에 와 있다. 지구 반대편이기는 하지만 우리 할아버지 생전에도 존재했던, 할아버지의 신념과 가까운 어떤 것을 지지하는 정치 잡지사에서 일하면서. 여기에는 분명 어떤 의미가 있다. 

내 가족을,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과 우리 할아버지의 활동을 밝혀내는 일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간극이 있다. 가족의 유산이 애초에 우리 부모님이 한국을 떠난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까? 어째서 두 분은 휴스턴의 해리스카운티 전체에서 몇 안 되는 진보주의자였을까? 내가 언론대학원을 졸업하고 얻은 첫 직장은 어째서 화려한 패션지가 아니라 《더 네이션》인 걸까? _147쪽

 

나는 그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걸 느낀다. 어쩌면 전쟁 이전, 자신과 만나기 전 남편의 삶에 관해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아내 앞에서 기억나는 것을 말하기가 불편한 것일 수도 있다. 아내에게 충은 그저 밤 농사꾼일 뿐이다. 그런 이름으로 충분하다.

충의 아내는 거의 50년 동안 함께 지낸 남편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낸다. 나는 확실히 알아본다. 충의 입장을 존중해 나는 물러난다. _254쪽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우리 할머니가 다음 세대는 물론 그 후대까지 가족의 생존을 위해 싸운 분이라는 사실이다. 종조부 완이 말했듯이 할머니는 홀로 살아남아 두 아들을 키워야 했던 사람이다. 일제강점기, 광복, 조국의 분단, 한국전쟁, 자식들의 미국 이민, 그리고 국가 재건의 과정을 다 겪으며. 할머니는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조국이 어떤 길을 걸을지 궁금해한 적도 없다. 다만 먼저 떠난 남편의 행적을 다른 이들이, 가족이든 당시의 지배세력이든 누군가가 악용할 수 있다는 것만 알았다. 할머니의 목적은 명확했다.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겠다는 것. _381쪽

 

서평

“오랜 시간 추적한 가족사이자 일제하 독립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을 관통하는 대한민국 현대사” _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작가

“기억과 증거, 가족사를 능숙한 솜씨와 넘치는 애정으로 엮은 장대한 태피스트리” _한요셉, 《핵가족》 작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아는 것이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가는 여정에 힘이 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_수잔 최, 《신뢰 연습》 작가

“가족사에 등장하는 영웅이 꼭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이 아닐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_캐럴 스미스Carol Smith, 《강을 건너며Crossing the River》 작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2024년 올해의 책

 

“그 괴로운 일을 내가 왜 이야기하고 싶겠니”

침묵은 어떻게 역사를 드러내는가

비밀이 된 과거가 끝없이 현재로 되돌아오는 것에 대하여

 

1970년대 휴스턴 교외 지역에서 거의 유일한 한국계 미국인 가족의 일원이던 저자 마거릿 주혜 리는 ‘너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는 타인의 질문, 지금보다 더 나은 어딘가를 향해 끊임없이 떠나고 싶은 충동,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공허를 안고 살아갔다. 전과자이자 집안의 수치인 할아버지. 가족은 그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고,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자신의 뿌리를 궁금해했던 저자 마거릿 주혜 리의 질문에 대한 답은 번번이 침묵으로 돌아왔다. 할머니에게서 아버지로, 아버지에게서 자신에게로 ‘침묵’이 가족의 유산으로 대물림되었다고 말하는 저자는 가족사의 공백이 자신이 겪어온 모호한 정체감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리라 예감하며 성장했다.

60여 년 만에 침묵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성인이 된 마거릿의 청에 할머니가 응답하면서부터였다. 병에 걸려 할아버지에 관한 조사를 끝내지 못한 아버지의 작업을 언론학을 전공하고 기자가 된 마거릿이 이어받으며 시작된 인터뷰였다. 이후 마거릿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할아버지를 추적하는 데 몰두한다. 아버지와 저자의 노력으로 알아낸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최초 항일 동맹휴학을 이끌고 수차례 항일 시위를 조직한 1909년생 학생 운동가이자 공산주의 혁명에 뿌리를 둔 독립운동가, 또 사상가였다. 조선학생과학연구회에 가입해 비밀결사 활동을 하다 투옥되었고, 빨치산 활동을 주도한 이현상의 동지였던 그는 손녀의 추적 끝에 사후 60여 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야기는 잊힌 독립운동가 한 사람의 삶을 복원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비밀만큼이나 저자와 ‘아버지’가 성장 과정에서 겪은 소외와 이름 붙일 수 없는 공허가, 남편의 삶을 숨기고 부정해온 할머니의 생애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분단 이후를 통과하며 한 가족의 기억에 무엇을 남고 무엇이 지워졌는지를 보게 한다.

저자는 한 번도 만나지 못한 할아버지의 비밀이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 될지”(387쪽)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며 “나는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야겠다”(45쪽)고 결심한다. 개인의 정체성이나 소속감은 가족사와 공적 역사를 어떤 서사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이 책은 비추며, 나아가 사적인 ‘비밀’과 ‘애도되지 못한 역사’는 사라지지 않은 채 끝없이 현재를 점유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특히 전쟁 중에는”

생존의 조건으로서의 할머니의 기억 삼키기

 

“우리 가족은 괴로운 일을 털어놓지 않는다. 그것을 통째로 삼켜 대를 넘어 곪아 터지게 내버려둔다. 두려움, 공포, 고통을 삼키고는 그대로 영영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꾹꾹 누른다. 그것이 할머니가, 또 아버지가 살아남는 방법이었다.”(311쪽)

 

할아버지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은 동시에 왜 할머니는 그 역사를 은폐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한국을 떠난 지 오래였고 아들인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기를 강하게 요구했음에도 할머니는 왜 입을 열지 못했을까. 저자는 고통과 기억과 두려움을 삼키는 것이 할머니에게는 곧 생존의 조건이었음을 알게 된다.

공산주의자 전과자의 아내라는 낙인은 남편의 죽음 이후에도 할머니를 따라다녔다. 재산을 모두 잃고 재봉사와 보육원 일을 전전하며 두 아들을 키워야 했던 할머니는 무엇보다 살아남아야 했다. 할머니는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조국이 어떤 길을 걸을지 궁금해한 적도 없다. 다만 먼저 떠난 남편의 행적을 다른 이들이, 가족이든 당시의 지배세력이든 누군가가 악용할 수 있다는 것만 알았다”(381쪽). 북한군이 공주에 도착하기 전날 밤, 할머니는 수감 관련 서류와 편지, 정치 이론에 관한 저술, 신문 기사, 남편의 책을 모두 불태운다. 어떻게 닥쳐올지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남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대가였다. 북한군이 남하하면 남편의 흔적이 이들 가족에게 좋은 지위를 보장하리라 기대한 친척도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모든 기록을 불태우고 땅에 묻는다. 더는 불확실한 상황에 삶을 맡길 수 없었다. 할머니는 차라리 표백된 과거를 생존의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더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꿈꾸고 셈하는 것마저 배제했다.

 

“두 차례에 걸쳐 봉기해서 동학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렴. 그들은 자신들이 들고 일어난 결과 중국과 일본이 전쟁을 벌일 줄은 몰랐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야. 역사가 그 증거다.”(269쪽)

 

과거를 지우기로 한 단호한 결정에 대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묻자, 할머니는 동학농민운동을 떠올렸다. 할아버지의 집안과 같은 양반 지주층과 외세에 저항하며 시작된 토착 사회운동은 조정의 청나라 파병 요청과 이에 맞선 일본의 군사 개입을 거쳐 1894년 청일전쟁으로 비화했고, 결국 조선은 식민지의 길로 들어섰다. 할아버지의 집은 당시 동학 농민들이 점거해 사용하던 항쟁 본부였다. 할머니는 그들이 남기고 간 창 두 자루를 오래 바라보던 순간을 들려준다. 동학농민운동에서부터 일제강점기로, 다시 해방과 분단으로 이어지는 역사는 할머니에게 인간의 의지나 신념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할머니를 통해 할아버지의 삶을 복원하는 과정은 무엇이 밝혀지는가만큼 무엇이 사라졌는가를 보게 하는 여정이 된다. 그리고 이는 할아버지에 대한 결정적 자료를 발견하는 국면에서도 되풀이된다. 자료 소장자에게 왜 이처럼 중요한 기록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았는지를 묻자, “감당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요”(292쪽)라는 답이 돌아온다.

무엇이 기록되었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기록될 수 없었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가는 이야기 속에서 사적인 침묵과 공적인 망각은 별개의 현상이 아니다. 공적 역사의 공백은 가족 안의 비밀이 되었고, 가족이 삼킨 비밀은 공적 역사에서 다시 하나의 결락으로 남았다. 저자가 복원하는 것은 어느 독립운동가의 전기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 역사에서 사라지는 과정 자체다. 그리고 그 과정을 더듬는 끝에서 저자는 비로소 자신이 오래도록 설명할 수 없었던 공허와 모호한 정체감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를 건너 이어진 역사적 침묵의 유산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나에게 집이란 장소가 아니다. 존재의 상태다”

내가 누구인지는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긴 추적 끝에 저자는 범죄자였던 할아버지가 사후 60여 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어 국립현충원으로 이장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아버지에게 상속된 줄조차 모르고 있던 토지를 정리해, 일제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던 공주고등학교에 할아버지의 이름으로 기부한다. 그리고 공주고등학교로부터 할아버지의 명예 졸업장을 받는다. 마거릿은 자신의 아이에게 할아버지의 호인 ‘성야星野’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지워졌던 이름이 다시 쓰이고, 가족은 잃어버린 계보를 회복한다.

나아가 이야기는 한 독립운동가의 명예뿐 아니라, 저자가 자신을 현재의 자신으로 존재하게 만든 시간을 되찾는 데로 뻗어간다. 저자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있는 것이었다. 할머니에게 과거를 지우는 일이 살아남기 위한 조건이었다면, 손녀에게는 그 과거를 되찾는 일이 비로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잊힌 역사를 되찾고, 할머니의 오랜 침묵이 어떠한 시대적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언어였는지를 이해하면서 저자는 비로소 “집에 온 기분”(389쪽)을 느낀다. 여기서 집은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단절되지 않은 상태,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된 존재의 상태다.

이 책의 한국어판이 출간되며 독립운동가 이철하와 그 가족의 역사가 그 역사가 시작된 이곳의 ‘집’으로 찾아온 지금, 우리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말해지지 않은 것은 없거나 사라진 것이 아님을 상기하며 무엇을 응시하고 무엇을 말해야 할까.

 

“그 괴로운 일을 내가 왜 이야기하고 싶겠니? 

나는 할머니가 감옥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그간의 일을 물었던 질문과, 내가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할머니에게 던진 질문에 비슷한 응답이 돌아왔다는 점을 마음에 새겨둔다.”(314쪽)

 

“너희는 알았으면 해. 너희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 될지는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387쪽)

저자소개

저자 : 마거릿 주혜 리 Margaret Juhae Lee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더 네이션》의 문학 편집자로 일했으며, 《더 네이션》, 《뉴스데이》, 《엘르》, 《더 럼퍼스》 등에 기사, 비평, 인터뷰를 기고했다. 하버드대학교 래드클리프연구소의 번팅 연구 펠로십과 한국국제교류재단 한국학 연구 펠로십에 선정되어 《비밀의 들판》을 집필했다. 2020년에는 할아버지인 애국지사 이철하의 명예 회복에 기여한 공로로, 충청남도 공주의 상철문화복지재단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다.
번역 : 장상미
시민사회운동을 공부하고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하면서 사회운동, 인권, 생태에 관한 책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2012년 자립, 공존, 연대를 주제로 서울에서 '어쩌면사무소'라는 다중적 공간을 꾸렸고, 현재는 이를 목포로 옮겨 책방 및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
거주하던 재개발 지역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독립출판물 《지금은 없는 동네》를 제작했고, '어쩌면사무소'의 실험 과정을 담은 책 《어쩌면 이루어질지도 몰라》를 썼다. 옮긴 책으로 《마틴 루서 킹》, 《감각의 주술》, 《먹고, 싸고, 죽고》, 《휴식은 저항이다》, 《교도소 대학》 등이 있다.
  • (54866)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중동로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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