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철없는 저는 당장 적게 일하고 싶은 마음만 급했습니다. 결국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들이밀고는 소위 ‘프리터족’이 되었습니다.
……물론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9쪽, 〈프리터족이 되었습니다〉
퇴사 후 3~4년 정도 시간이 흘렀다. 나는 “신생 제작사에 스카우트된 것 아냐?”라는 뜬소문을 전해 들으며 피식 웃고는 바삐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할 일이 산더미였다. 요령이 생겨도 끝이 없다. 그새 마음이 바뀌어 이력서를 고치고 있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결혼 준비? 그럴 리가.
나는 중고 거래로 옷을 파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15쪽, 〈옷 포장할 때 희열을 느낍니다〉
대표의 퉁명스러운 말투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수한 아르바이트와 회사 생활로 다져진 사회성을 쥐어짜 입만 웃는 가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신입 사원에 빙의한 것처럼 또랑또랑하고 당찬 스타카토식으로 대답하며 “넵!”을 연달아 시전하기도 했다. 대표는 두 번째 질문을 이어갔다. 생각지도 못한, 난데없는 질문이었다.
“명품 좀 알아요?”
-23쪽, 〈용 문신을 한 대표님〉
대표의 ‘너무나 친절한’ 합격 발표 후 나는 두 시간가량을 종종거리며 고민하고 있었다. 관성의 법칙처럼 이번에도 나와 상극인 사람을 피하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궁금증이 조금씩 커져갔다. 다르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다’라며 함께하기로 결정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어느덧 비슷한 색깔의 사람들만 모여 있는 내 작은 테두리를 넓혀본다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28쪽, 〈‘굳이’와 ‘억지로’의 세계〉
그렇게 나는 어쩔 수 없지만 지극히 자의적으로 프리터족이 됐다.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일들로 하루를 채우는 극히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생활이 가능해졌다. 앞으로 일주일 내내 텅 빈 하루가 계속될 것이다. 매일이 주말인 셈이다. 낯설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하루를 전부 내 마음대로 조각내 채울 생각에 설레고 후련했다.
-48쪽, 〈내가 회사를 그만둔 진짜 이유〉
하지만 그새 정이라도 든 걸까? 달라진 태도 때문인지 상냥함에 약한 나는 자꾸만 그들을 이해하게 되는 게 문제였다. 그래도 사과만은 잘하던 모습을 굳이 또 떠올리며 대표들의 배려심은 없었던 게 아니고 가려져 있었을 뿐이었다고, 어쩌면 모두 오해였을 거라고 합리화하고 있었다. 심지어 하루는 주문 목록에 대표 중 한 명이 적은 듯한 ‘누나 선물’이라는 글자를 보고 나도 모르게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105쪽, 〈“나쁘기만 한 사람은 세상에 없어”〉
“사람들 만나기 안 창피해?”
친구는 허슬러(치열하게 일하며 기회를 스스로 만드는 사람)였다. 다른 말로 갓생러. 나는 그가 미래를 위해 하루하루를 얼마나 계획적이고 열정적으로 살고 있는지 알았기에 그 의문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고, 내 대답을 딱히 믿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굳이 나를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행여 열심히 사는 태도가 옮을라 슬쩍 자리를 피할 뿐이었다.
-189쪽, 〈30대에 아르바이트만으로 버틸 수 있는 유형〉
이처럼 종종 궁상맞고 난처한데도 여전히 취직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로 연명하고, 손가락 빨며 버틸 수 있는 이유는…… 현재의 만족도가 그 초라함과 불안정함을 거뜬히 이기기 때문일까?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199쪽, 〈청첩장을 받으면 식대부터 검색하는 현실〉
그러니 몸도 마음도 편한 현재에 마냥 드러눕고 싶다가도 미래의 몸과 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포장 아르바이트를 하며 ‘꼼꼼’과 ‘대충’ 사이를 한없이 오갔던 만큼 성실과 여유 사이, 지금의 만족과 내일의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 이게 프리터족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지 않을까.
-209쪽, 〈애증의 명품 포장 아르바이트〉
잘 풀린다면 프리랜서로서 적당한 불안과 적당한 자유를 가진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나는 기약 없는 아르바이트생이다. 솔직히 아직까지는 불안을 기반으로 한 자유가 너무도 짜릿하다. 마치 오늘처럼 말이다.
-215쪽, 〈도망친 곳에서 발견한 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