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종은 온 세상에 널리 분포하며, 그곳에는 삶과 문화, 종교 그리고 염원이 스며들어 있다. 나는 종소리는 절대 권위와 함께 평화, 사랑 그리고 소통의 소리라 생각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는 ‘소통’이라 믿는다.
[책 속 내용]
중세 유럽 성당의 공통적 특징은 높이 솟은 종탑인데, 성당의 종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기도 시간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만큼 종탑은 높았고 종의 크기도 점차 커졌다. 독일 쾰른성당의 종탑은 157.4m나 되었고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의 종 한 개는 500kg이나 되었다. 동양종은 밖에서 때리나 서양종은 잡아당기는 힘으로 무거운 종과 종에 달린 쇠막대(shaft)를 흔들어 울려야 하기에 힘이 많이 들고, 횟수와 리듬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다. 온 힘을 다해 종을 흔들던 노트르담의 꼽추 콰지모도를 생각해 보면 된다.
이를 위해 종지기들은 많은 연습을 해야 했으나, 큰 소리가 나는 종을 아무 때나 칠 수는 없기에 추를 떼어낸 종을 치는 연습을 했다. 이 소리가 나지 않는 연습용 종을 벙어리종(dumbbell)이라 했다.
-p. 78, ‘아령’ 중에서
가고일 탁상종은 코코넛 열매껍질을 자르고 내부를 파내어 태엽을 장치해 스위치를 누르면 감아둔 태엽이 풀리며 소리가 나는 탁상용품이다. 헤헤 웃는 괴물의 혓바닥을 누르면 따르릉 소리가 난다. 몸체는 무서운 가고일 얼굴이나 전혀 무서워 보이지 않는 해학적인 황동 조각이다.
2015년경 미국 플로리다에서 오랫동안 영업을 하던 ‘세상에 이런 일이’란 사립 박물관이 문을 닫으며 소장품을 판매하기에 경매에 참가하여 구입했다. 이 박물관에서는 오랫동안 세상에 이런 탁상종도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할 일 없는 사람들이 귀중한 시간을 소비하는 사소한 잡동사니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나는 이런 잡스러운 생활용품에도 최고의 정성을 쏟아부었던 장인정신과 이를 용납한 그 사회의 쓸데없는 저력을 높이 평가한다.
세상은 넓고 사람들을 즐겁게 놀라게 하는 일도 많다.
-p. 136, ‘웃는 얼굴의 괴물 가고일’ 중에서
고깔 모자를 쓴 남성 모양 도자기 종은 데시모네 공방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20세기 중반, 1964년에 제작되었다. 입체파 화풍이 유행하던 시절 데시모네 도자기 그림의 독특한 패턴을 잘 보여주는 종이다. 나는 데시모네 공방의 도자기들이 풍기는 은은한 멋을 사랑한다.
1991년 그가 사망한 뒤에는 딸이 중심이 된 가족 공방으로 유지되었으나 2008년 문을 닫았다. 이후 대량의 상업적 도자기 판매는 하지 않고, 딸이 소수의 작품을 제한적으로 만들고 있다.
생활용품에도 멋과 애교를 넣던 그 남부 이탈리아식 여유로움은 실용화의 큰 물결에 밀리며 사라졌다. 사라져 간 그 무엇을 살피는 감정은 그리움과 아쉬움이다.
-p. 160, ‘입체파를 좋아했던 데시모네 도자기’ 중에서
1900년경 독일에서 제작된 뮌헨의 10월 맥주 축제(Oktoberfest)에서 가득 찬 생맥주 4잔을 나르는 바이에른 전통 의상(Dirndl)의 여성 인물종을 발견했다. 크기 22cm의 경화 석고(gypsum)로 만든 크고 귀한 종이다. 수년 전 경매에서 이걸 발견하고 구입하려고 노력했으나, 높은 가격을 지른 사람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이번 경매의 판매자 설명글은 수집가들이 무슨 물건인지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었고, 시작 가격이 20달러였다. 미국 보스턴의 판매자는 이걸 단순한 도자기 인형이라 썼지만 나는 그림을 보고 이 제품의 가치를 바로 알아봤다. 결국 일주일을 숨죽여 관찰하다가 마지막에 들어가서 그때 300달러에도 사지 못한 걸 시작가 20달러에 횡재한 것이다. 판매자는 야드 세일에서 구입한 것이라 만들어진 시기도, 종에 새겨진 글자의 의미도 몰랐고 그냥 도자기 인형이라 생각했다. 만약 1900년 독일 바바리안 여인 인형종이라 올렸으면 수집가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을 것이다.
-p. 170, ‘뮌헨 옥토버페스트의 메이드’ 중에서
영어로 Daffy는 ‘어리석은’ ‘모자란’이란 뜻인데, 이들에게는 Daffy Bell이란 이름이 붙어있다. 다양한 모습의 ‘모지리 아저씨, 아주머니, 천사, 소녀, 루돌프 사슴’까지 다양하다.
이들을 앞에 두고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해맑아지지 않을까? 전후 우울함이 팽배했던 그 시절에 코믹한 ‘모지리(Daffy)’들이 내는 종소리는 미국인들에 큰 위로를 주었기에, 서로에게 아름다웠던 그 시절을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것이다.
나도 왠지 나보다 IQ가 낮고 사회에 적응도 못할 것 같아 만만하고, 1946~1971년에 탄생하여 같은 베이비부머 세대이기도 한 ‘바보(Daffy)’들을 매우 사랑한다. 빡빡하고 적대적인 이 시대에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모습이다.
-p. 224, ‘나의 사랑스러운 못난이’ 중에서
오컬트 영화 〈검은 사제들〉(2015)과 〈검은 수녀들〉(2025)의 시작 부분에 등장하는 금속종을 협찬하였다. 두 오컬트 영화의 주연인 강동원 김윤석 송혜교 배우의 구마의식 장면에서 강렬한 종소리로 마귀를 쫓았다.
1900년대 초 영국 엘킹턴 은회사에서 제작한 ‘복음전도자(Evangelist)의 종’이라 불리는 15cm 크기의 아름다운 은도금 기독교 제례종이다. 이탈리아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이 밤길을 걸을 때 이 종의 소리로 악령이 다가오는 것을 막았다고 해서 ‘프란체스코 종’이라고도 한다. 종에는 라틴어로 마르코, 마태, 루카, 요한 이름과 이들의 상징 동물이 새겨져 있다. 이 영화의 주제와 잘 어울릴 것 같아 구마의식 소품을 찾는 제작진에게 추천했다.
-p. 278, ‘복음전도자의 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