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퇴고의 시간은 초고를 쓰던 시간만큼 어렵고, 또 초고를 쓰는 것만큼 창조적인 일이기도 합니다. 이번엔 정말, 정말 ‘마지막’이라며 쓴 글을 다시 들여다보며 다듬는 일은 더 좋은 말, 더 적확한 말, 더 나다운 말을 찾아가는 최후의 전선에서의 일입니다.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순간이 되지요. 퇴고는 단순히 ‘틀린 것을 고치는’ 과정이 아닙니다. 독자에게 닿는 언어를 다듬는 과정이며, 자기 글의 매력을 스스로 발견하고 강화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없어도 좋을 말은 버리고, 있어야 하는 말은 남기고, 부족한 말은 채우면서 말이지요.- 11~12p
퇴고의 모든 과정은 결국 어떤 것은 버리고 어떤 것은 남기려고 끊임없이 선택하는 과정입니다. 버리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고, 살리는 데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공들여 쓴 문장이라도 글의 목적에 맞지 않거나, 의미를 흐리게 하면 꽉꽉 눌러 채운 글에 숨통을 틔우기 위해서도 용기 내어 버려야 합니다. 반면, 그렇게 버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내 것으로 살려서 남겨 놓을 것을 가려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막연한 취향이 아니라 기준을 세워 줄 안목이 필요합니다. 글의 목적을 분명히 알고, 자신만의 톤과 리듬이 명확해야 합니다. 이것은 자신만의 기준과 문장과 세계를 보는 방식과 관련된일이기도 합니다. -20p
어떤 문장은 버리고 어떤 문장은 남기는 과정을 반복하고 고민하면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결국, 인생의 많은 일처럼 안목을 기르는 일도 시간과 공을 들이지 않고 이룩될 방법은 없습니다. 시간과 공이라니...... 징글징글하지요. 애착을 거두고 수정하는 연습이란 좋아하는 문장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공들인 문장이어도 전체 글의 균형을 위해서라면 과감히 버릴 수 있는 훈련까지 포함합니다. -27~28p
처음 쓴 원고에는 설명하고 싶은 마음, 오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 잘 썼다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문장 곳곳에 남아 있곤 합니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마음이 문장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퇴고는 그런 마음을 하나씩 거둬 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때 유용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이 문장에서 없어져도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 말이 있나?’ 보통 문장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듯하지만 때로는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표현이 그렇습니다. -39p
이렇듯 퇴고는 더 잘 쓰기 위해 애쓰는 시간이라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는 시간에 가깝습니다. 이 시간에 나는 글과 나 사이에 아주 작은 빈틈을 만들고 그 빈틈으로 문장을 바라보는 사람이 됩니다. -53p
실을 풀 때 실마리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실타래의 속실과 겉실 끝을 서로 매어 두는 것을 ‘실끝매기’라고 합니다. 엉킨 실타래는 힘으로 잡아당긴다고 풀리지 않습니다. 천천히 엉킨 실의 빈틈을 찾아 각각의 실을 가려내듯, 엉키고 설킨 문장도 차분히 빈틈을 찾아 가르다 보면 전부 헛소리처럼 보였던 문장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습니다. 퇴고의 시간에는 기다리는 시간도 포함됩니다. -55~56p
수식을 하는 말과 수식을 받는 말을 가깝게 두는 것은 독자가 문장을 읽어 내려가는 길목에 이정표를 정확히 세우는 일과 같습니다. 사소해 보이는 이 거리를 좁히는 것만으로도 문장은 훨씬 단단해지고 글쓴이의 의도가 독자에게 왜곡 없이 전달됩니다. -59p
그럼에도 글을 쓰는 사람은 단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홀릴 문장을 위해 끙끙대며 최선을 다해야 하고, 무엇보다 ‘내가 생각해도 이 부분은 멋져. 누구라도 이 문장엔 꽂힐 걸’ 하는 부분이 한 군데는 있어야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글을 써 나갈 힘을 얻습니다. 내 마음부터 사로잡아야 남의 마음도 사로잡을 용기가 생기기도 하고요. 그러니 버팀목이 될 매력 포인트를 확보하는 일은 꼭 필요합니다. -82p
다시 보는 일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얼마나 ‘잘’ 표현했는지가 아니라, 이 글이 독자에게 어떻게 읽힐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보게 합니다. 설명이 과한 곳은 없는지, 독자가 따라오지 못할 지점은 없는지, 혹은 이미 충분히 전달된 감정을 거듭 강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핍니다. 다시 본다는 것은, 글을 더 이상 ‘내 말’이 아니라 독자 앞에 놓인 하나의 문장으로 바라보는 일입니다.- 89p
인공지능에 사전 정보를 제공하고 구체적으로 질문할수록 양질의 피드백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렇게 받은 피드백을 두고 반드시 자신이 판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인공지능이 “이 부분이 어색합니다”라고 짚어 준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수용해 수정부터할 것이 아니라 그 의견이 자신이 의도한 글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지, 문맥을 완전히 이해해서 짚은 것이 맞는지 스스로 판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피드백을 듣되, 최종 판단은 늘 글을 쓴 사람의 몫임을 꼭 기억하세요. -127p
그래서 글쓰기가 필요합니다. 한 문장을 쓰는 동안 생각은 모양을 얻습니다. 문단을 밀고 당기며 글의 흐름을 다듬는 동안 희미했던 의도도 차츰 또렷해집니다. 이런 과정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드러납니다.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어디까지 생각했는지, 무엇을 미처 말하지 못하고 있는지…… 글쓰기는 결국 ‘나’를 찾고, 내 생각을 가다듬는 일입니다. 존 업다이크의 말처럼 글을 쓰고 그 글을 다듬는 일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찾는 과정”입니다. -13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