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오는 동안 우리가 얻은 결론은 이렇다. 갈등은 누구와 살아도 생긴다. ‘찐 혈육’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중요한 건 그걸 어떻게 풀어 가느냐다. 남이라서 어려운 게 아니라 남이어서 오히려 나은 점도 많다. 기대가 적으니 실망도 덜하고 감정 소모도 줄어든다. 서로의 속도와 방식은 다르지만 그걸 애써 바꾸려 들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고 서로 조율하면서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 그게 우리의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_9~10쪽, 프롤로그
듣도 보도 못한 라이프 스타일을 시작하는 마당에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될지, ‘좋은 경험이었다’라며 굿바이를 할지, 아니면 좀 더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헤쳐 모일 것인지 충분히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 중간 점검의 시기를 첫 동거 후 10년으로 정했다. 그렇게 비누, 마루 부부와 1인 가구인 수와 루나 그리고 나, 써니까지 한 지붕 아래에 살 가족이 탄생했다. 가장 맏이는 써니. 그 아래로 다섯 살 차이 마루, 여섯 살 차이 비누, 열 살 아래 수, 띠동갑인 열두 살 아래 루나까지. 우리는 이렇듯 친구도 또래도 가족도 아니다. 혈연, 지연, 학연 그 어느 것 하나 겹치지 않는 무연고의 생판 남들이 우연히 만나 ‘가족’이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무연고 우연 가족’이라 부른다.
_45~46쪽, 〈난 널 모르는데, 우린 식구가 되었구나!〉
미로헌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공유 공간이다. 공유 공간 덕분에 개인 공간은 단출해졌고, 덩달아 깔끔해졌다. 그런데 진짜 묘미는 따로 있다. 공유 공간을 중심으로 우리의 동선과 일상이 겹치고, 포개지고, 스며들면서 웃을 일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이런 게 바로 ‘같이 사는 맛’ 아닐까. 사실 미로헌은 건물 자체로만 보면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하다. 더 훌륭한 구조와 자재로 고급스럽고 세련되게 지어진 집은 세상에 많다. 그럼에도 미로헌이 특별한 것은 생판 남남끼리 머리와 마음과 돈을 보태 짓고, 그 안에서 희로애락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세월을 살아 온 타인들이 인생 후반부의 시간과 공간을 함께 나누기로 하고, 그 물리적 기반이 되는 집을 공동으로 지었다는 것 자체가 미로헌의 특별함인 것이다.
_71~75쪽, 〈‘10평 방’에 살아도, 누리는 건 ‘100평 집’이야〉
마당은 비누와 내가 주로 가꾼다. 마루와 수, 루나는 식물에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억지로 함께 하자고 하지 않는다. 관심이 있어야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열려야 노동도 즐길 수 있을 테니까. 어쩌다 가끔 일손을 보태 주고 “예쁘다”, “좋다”라고 말해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비누는 지난여름 2층 베란다 텃밭 상자에서 방울토마토와 오이, 고추, 깻잎을 길러 냈다. 나는 그냥 물만 몇 번 주었을 뿐인데, 그 맛난 열매를 신나게 따다 먹었다. 일하는 사람 따로, 즐기는 사람 따로여도 OK! 한 지붕 아래에 산다고 해서 ‘모든 것’을 ‘반드시’ ‘함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열심히 가꾸어 놓은 것을 다른 누군가가 기꺼이 누려 준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마당 가꾸기의 매력 아닐까?
_107~110쪽, 〈꽃 피우는 사람 따로, 꽃놀이하는 사람 따로? 얼씨구!〉
우리는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동거를 선택할 사람들이 아니다. 동거가 독거보다 불편해진다면 굳이 함께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내가 타인과의 동거를 결심한 이유는 간단했다. 자유로움은 독거와 비슷하고, 안전성과 재미와 편의성은 독거보다 훨씬 나을 것.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밥 먹는 일에 강제도 없고 책임도 없다는 것. 이 단순한 합의야말로 우리가 ‘요망진(‘영리하고 야무지다’라는 뜻의 제주어)’ 동거를 이어가는 힘이다. 우리는 언제든 자유롭게 만나고 흩어지는 식구들이다. 그러다 함께 밥상에 둘러앉으면 그지없이 행복해지는 식도락가들이다.
_149쪽, 〈같이 산다고? 그럼 밥은 누가 해?〉
세부 원칙을 세우고 합리적으로 운영한다 해도, 사람 사이의 일이다 보니 가끔 감정이 상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다행히 우리 가운데 그럴 때 문제를 부풀리거나 자기 입장만 고집하는 사람은 없다. 말할 기회를 충분히 주고, 서로의 생각을 듣고, 이견에 대해 토론하며 조율하다 보면 어느새 이해와 설득에 이르게 된다. 그럴 때면 묘한 쾌감과 더불어 “그래, 이러니까 우리가 같이 살 수 있지”라는 안도감이 느껴진다. 그 순간 ‘우리’라는 감각이 더욱 선명해진다.
_180쪽, 〈토론은 격렬하게, 결론은 깔끔하게〉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 해도, 한 지붕 아래에 살아 보면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낯선 면을 발견하게 된다. 아무리 친해도 함께 살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함께 살아 보아야만 비로소 보이는 진짜 모습들 말이다. 하지만 3~4년을 함께 살았다고 서로를 다 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것은 시간의 양에 비례한다기보다 감각에 가깝고, 경험의 총량보다도 어떤 순간의 인상에 더 좌우되는 것 같다.
_191쪽, 〈이 루나는 내가 알던 그 루나가 아니었다〉
그간 내 사회생활의 기본 자세는 공과 사를 엄격하게 선 긋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판 남들과 함께 살며 새롭게 고민하게 된 것이 그 선을 ‘어디에, 어떻게’ 그을 것인가였다. 일일이 챙겨 주자니 간섭처럼 보일까 봐 망설여지고, 안 챙기면 무심해 보일까 봐 마음이 쓰였다. 쉽지 않았다. 그러다 깨달았다. 함께 사는 데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거리를 두는 게 목적이 아니라, ‘가까워도 불편하지 않은 거리’를 만드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말이다. 이건 한 사람만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함께 사는 모두가 연습해야 한다. ‘이건 당연하지!’라고 여긴 것을 하나하나 내려놓고, 서로의 방식과 리듬을 조율하는 것. 그게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태도였다.
_200~201쪽, 〈거리는 적당히, 마음은 가까이〉
가족끼리는 다소 거친 감정 표현이나 문제 회피가 용인된다. 하지만 우리는 남남이다. 짜증이 파도처럼 훑고 지나간 자리에는 오해나 마음의 상처가 남기 쉽다. 나이 들수록 감정의 민감도는 높아진다. 체력은 떨어지고, 습관은 고착되고, 변화에는 점점 둔감해진다. 모든 조건이 짜증을 유발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조건이다. 그럴수록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인격이고 품격이다. 짜증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다. 나이 들수록 배워야 하는 건 짜증을 참는 법이 아니라 품위 있게 다스리는 법이다. 그래서 미로헌에는 늘 ‘짜증 주의보’가 발효 중이다.
_209쪽,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리? 우린 남인데〉
함께 살려면 자기 검열은 필수다. 혼자 살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질문이고, 자녀와만 살아도 부모라는 이름으로 “어른 말 들어”를 당당히 시전하며 살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자기 객관화도, 건강한 긴장도 없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대로 현실이 움직여 주기를 바라는 욕구만 있을 뿐이다. ‘나이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라는 말이 있다. 백번 맞는 말이다. ‘자식 자랑은 만 원, 손자 자랑은 오만 원’이라는 말도 그렇다. 자기 경험을 권위로 착각해 쉴 새 없이 남을 가르치려 들고, 자기 자랑으로 입에 침이 마르는 노인이 되지 말라는 경고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몇 가지 기본 원칙을 세웠다. 가장 중요한 건 ‘지시 말고 질문, 지적 말고 의논’이다.
_217쪽, 〈꼰대 방지 육계명〉
머잖아 몸은 점점 탈이 나고, 여러 신체 기능도 서서히 약해질 것이다. 진짜 셰어 라이프의 완성은 돌봄과 보살핌을 함께 나누는 데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아프면 일단 소문부터 내야 한다. 적절한 치료법을 함께 찾는 건 물론이고 서로에게 건네는 안도와 위로의 웃음은 덤이다. 병은 누구에게나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지만, 불필요한 근심을 떨치게 해 주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해 주는 것이 셰어 라이프다. 내 통증이 너의 관심이 되고 너의 병력이 우리의 정보가 되는 집. 그게 우리 집 미로헌이다.
_236쪽, 〈아프냐? 그렇다면 소문을 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