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 외과의사 김욱은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유품 속에서 한 통의 유서를 발견한다. 그 유서는 오랫동안 감춰져 있던 가족의 비밀과 함께, 1942년 경성으로 향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문을 연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일제강점기. 광복군 김혁은 ‘야차’라 불리는 조선인 여성 정보원을 구출하라는 비밀 임무를 받고 경성에 잠입한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일본 경찰, 밀정, 권력자, 독립운동가가 뒤엉킨 거대한 음모가 기다리고 있다. 조선인으로 태어났지만 일본 총독부 최고 권력자의 양녀 ‘시즈코’로 살아가는 혜심, 정의를 좇는 일본 경찰 야마시타 경부, 독립운동가였다가 밀정이 된 불곰, 그리고 전쟁을 이용해 권력을 장악하려는 구로다 군조까지. 서로 다른 신념과 욕망을 품은 인물들은 적과 동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운명적인 추격전을 이어간다.
제목인 ‘페이퍼 체이스(Paper Chase)’는 종잇조각을 떨어뜨리며 달아나는 사람의 흔적을 따라 술래가 목표를 찾아가는 게임을 뜻한다. 이 소설 역시 흩어진 단서들을 따라 진실에 다가가는 첩보 추적극의 구조를 취하며,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정교하게 결합해 강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페이퍼 체이스 인 경성』은 단순한 독립운동 소설도, 역사소설도 아니다. 첩보 스릴러와 미스터리, 느와르의 긴장감 위에 식민지 시대를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사랑과 배신, 선택과 희생, 그리고 정체성의 혼란을 깊이 있게 담아낸 작품이다. 빠른 전개와 치밀한 복선, 살아 숨 쉬는 1942년 경성의 풍경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생생한 재미를 선사한다.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이름과 진실을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