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제작자가 나무 속에 빈 함을 만들어 연주자가 그 안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찾아내게 하듯, 나 역시 내 몸이라는 악기 안에 너른 여백을 만들어야 한다. 공간이 악기의 음색을 결정하듯, 내가 틔워낸 마음의 여백은 곧 내 삶의 음색이 된다. 예전에는 그저 크고 높은 소리, 남들에게 지지 않는 빽빽 지르는 소리를 내는 것이 정답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가장 멀리 가는 소리는 억지로 내지르는 비명이 아니라, 깊은 비움에서 터져나오는 부드럽고 가벼운 울림이라는 것을.
- 〈마음의 빈터에 빛이 들 때〉 중에서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상추를 뜯었다. 뜯어도 뜯어도 상추는 그대로인 것 같았다. 아기 다루듯 조심조심 상추를 따니 대 사이에서 하얀 액이 흘러나왔다. 그 우윳빛 액이 손가락 끝을 까맣게 물들였다. 상추의 피는 흰색이라더니 내 손을 까맣게 물들인 것은 상추의 건강한 복수일지 모른다. 이 쓴 액을 많이 뿜어낼수록 건강한 ‘약상추’다. 여름내 우리의 기력을 보충해 줄 고마운 수혈자인 셈이다.
―김필옥 〈손끝에 물든 하얀 복수〉 중에서
시간이 흐르자, 그 말이 부엌 어디선가 다시 튀어나왔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그 말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불을 켜고, 냄비를 올리고, 끓이고, 씻고 치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부엌은 단순히 밥을 하고 먹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루의 시간이 부엌에서 끓고 식고 다시 쌓였다. 그때는 몰랐다. 어쩌면 시어머니가 무서워했던 것은 쉼표도, 마침표도 없이 도돌이표만 있는 삶이었던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하소연할 곳 없어 넋두리처럼 내뱉으셨을 그 고단한 말들을 말이다. 시어머니는 부엌일하실 때 “쓰으 쓰으, 쉬~이 쉬~이” 하고 숨을 내쉬셨다. 마치 해녀가 깊은 바닷속에서 육지로 고개를 내밀며 토해 내듯, 깊고 긴 숨을 내쉬셨다. 어머님의 손놀림이 빨라질수록 내쉬는 숨소리도 함께 빨라지고 깊어졌다. 칼이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와 그 숨이 부엌 안에서 함께 움직였다.
―김필옥 〈부엌의 숨비소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