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40년에 이르는 비평가가 10년 만에 펴낸 비평집
『망명과 지성』은 저자가 2016년 『비평의 고독』 이후 10년 만에 펴내는 문학 비평집이다. 198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평론가로 데뷔한 저자는 등단 4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꾸준히 비평 활동을 이어왔으며, 그동안 모두 일곱 권의 문학 비평집을 펴낸 바 있다.
이번 비평집은 저자가 『비평의 매혹』, 『낭만적 망명』, 『비평의 고독』 등에서지속적으로 펼쳐온 사유와 문제의식이 한층 깊어지고 넓어지며 도달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책과 문학, 비평에 대한 깊은 애정은 물론, 지성의 역할과 반지성주의의 확산에 대한 문제의식이 책 전반을 관통한다. 특히 『망명과 지성』은 작가 최인훈과 김혜진의 작품을 '책'이라는 맥락에서 읽어낸 평문들을 비롯해, 오랜 세월 애정을 지니며 읽어온 문인들의 문학세계와 이 시대의 문제작을 섬세하게 탐사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문학적 지성의 힘과 비판적 상상력을 펼치는 문학의 고유한 역할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보여준다.
'망명'과 '지성'이라는 오랜 문학적 화두
이번 비평집의 제목에 사용된 '망명'과 '지성'은 저자가 오랫동안 품어온 문학적 화두이다. 저자는 3부 「문학적 망명자가 품은 지성과 고뇌」에서 김석범, 김시종, 김학영, 서경식, 서준식 등 재일 한인 문인의 글쓰기를 '문학적 망명자'라는 관점에서 조망한다.
문학적 망명자의 자의식은 그들에게 세상과 사회를 대하는 치열한 태도와 한층 깊고 넓은 시선을 부여했다. 저자는 이들의 글쓰기에 깊이 공명하며, 지금까지 충분히 논의되지 못한 작품과 글쓰기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분석하고 해석한다.
저자는 망명자의 실존과 태도가 지성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맥락에 주목한다. 설사 실제 망명자가 아니더라도, 디아스포라와 이산의 체험은 내면의 분열과 상처를 통과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고유한 시야, 곧 지성의 힘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김석범과 서경식의 글쓰기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비평은 최고의 작품과 나누는 깊은 대화
저자는 '책머리에'에서 자신의 비평관을 분명하게 밝힌다. 조지 스타이너의 비평관에 기대어, 당대의 지성사와 문학 현장에서 가장 탁월하고 문제적인 작품과 밀도 깊게 대화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비평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망명과 지성』은 김석범의 대하소설 『화산도』 최인훈의 장편소설, 그리고 조해진과 김혜진의 신작 장편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문학적 성취와 나눈 비평적 대화의 산물이다. 저자가 이러한 비평관을 강조하는 이유는 김석범, 최인훈, 이청준 등 문학적 지성과 매력의 높은 경지를 보여준 작가들의 작품세계 안에 아직 충분히 해석되지 않은 텍스트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모두 6부로 구성된 비평적 사유의 여정
『망명과 지성』 은 모두 6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이 시대의 문학과 지성을 응시하며」에는 오늘의 문학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담은 글들이 실렸다. 2부 「지성, 역사, 문학: 내가 사랑한 작가들」에서는 최인훈, 최일남, 조세희, 현기영, 황석영 등 한국 현대문학의 주요 작가들을 다룬 평문을 만날 수 있다. 3부 「문학적 망명자가 품은 지성과 고뇌」에서는 김석범, 김시종, 김학영, 서경식, 서준식 등 재일 한인 디아스포라의 문학과 글쓰기를 탐구한다. 4부 「김윤식, 열린 지성과 글쓰기의 열정」에는 2018년 작고한 비평가 김윤식을 다룬 네 편의 글이 수록됐다. 5부 「이 시대 문학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조해진, 박형서, 정희성, 허연, 이재무, 이문영, 허태준의 소설과 시, 산문을 다룬 평문이 담겼다. 6부 「문학 현장의 다양한 풍경들」에는 『한겨레』 크리틱 지면에 연재했던 단평을 중심으로, 이 시대 문학 현장의 다양한 개성과 목소리를 담은 글들이 실렸다.
비평의 고유한 매력을 증명하는 결실
『망명과 지성』은 단순히 지난 글들을 묶은 비평집이 아니다. 저자의 뚜렷한 문제의식과 비평관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책이다. 저자는 오늘의 비평이 지성과 사유의 깊이를 품은 작품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며, 비평의 고유한 역할을 다시 강조한다.
저자는 "비평이 그 자체로 고유한 개성을 통해 매력적인 읽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지녀왔다. 『망명과 지성』은 비평이 창작의 종속적인 구성 요소가 아니라, 독자적인 문학적 매력을 지닌 글쓰기임을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 특유의 단정하고 유려한 문체, 그리고 깊이 있는 사유가 어우러진 이번 비평집은 오늘의 문학과 지성의 의미를 다시 묻는 소중한 결실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