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때 휴직 중이었고 퇴사를 고민 중이었다. 미래의 나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미래의 나는 알 수 없었지만, 오늘 당장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운전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_p.8
이것은 운전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은 운전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모두 무면허로 태어난, 여전히 어디로 가야 할지 어렵고 서러운 우리들의 이야기를 시작해본다._p.10
삶의 많은 것이 그렇듯 어느 날 문득, 무언가 하게 된다. 오래 고민한 것도 아니었고 운전을 시작해야만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때의 나는, 지금껏 살아온 것과 반대 방향으로 한번 가보고 싶었다. 익숙하지 않은 길로, 겁내서 들여다보지도 못했던 길로, 막연히 어둡다고 믿었던 길로 발을 내디뎌보고 싶었다._p.19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그냥 하면 되는 거야.(석향옥)”_p.29
“나는 적극적으로 권해. 삶이 더 풍부해지고 자유로워진다고. 우리 올케는 예순 넘어서 면허를 땄어. 학교 앞에서 30년 넘게 문방구를 하는데, 지금 운전하고 다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장희자)”_p.55
그런 나를 굳이 미워하면서 마음을 쓰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은 그것이다. 많은 시행착오 속에 나에게 적응해가는 것. 나라도 나를 이해해주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 안 되는 것,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을 해내라고 너무 다그치지 않는 것. 대신 그런 나랑 사는 법을 알아가는 것._p.92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넘어지고, 더 많이 일어서는 사람이다._p.144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선을 넘었다. 막연히 스스로에게 그어놓았던 선, 나는 못할 것이라는, 해봤자 안 될 것이라는 선 밖으로 성큼 한 걸음을 내디뎠다. 이제 시험의 마지막 단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_p.149
“우리는 안 되면 안 되고, 되면 돼. 아주 배짱적이야.(박삼순)”_p.151
일을 잠시 멈춘 지금, 그야말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누가 시킨 것도 아닌 운전이라는 것을 해보고 있다. 정말 그런 걸까.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아직은 낯선 것뿐일까. 그렇다면 중요한 건, 정말 하고 싶으냐다.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어려운가, 쉬운가’가 아니라 ‘하고 싶은가’. 나는 운전을 하고 싶은가. _p.187
인생에도 연습면허가 있다면 어떨까. 불안해하며 아파하며 초라해하며 걸어왔던 어떤 순간들이 조금 덜 힘들었을까._p.190
“해야지, 해보면 되지. 늘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권이서)”_p.203
내비게이션에서는 한 가지 안내 음성이 반복됐다. “다음 안내까지 직진입니다.”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고속도로 한가운데서._p.238
첫 문장을 시작하면 다음 문장을 쓸 수 있다. 시동을 걸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는 지금 새로운 길 위에 있다._p.240
“차는 모든 타이틀을 다 내려놓고 유일하게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 같아요.(김재화)”_p.243
운전을 하면서 여러 번의 처음을 경험했다. 처음 가는 길, 첫 단독 운전, 첫 셀프 주유, 첫 세차. 보통의 처음은 긴장만큼이나 설렘이 가득하지만, 운전에 관련된 처음은 모든 것이 긴장감 99%였다._p.279
어떤 처음은 정지선을 만든다. 첫 실수, 첫 실패, 첫 탈락, 첫 이별. 그 시간들을 통과하는 중에는 어떤 처음도 괜찮지 않았다. 낭만적이지도 견딜 만하지도 않았다. 그저 고통스럽고 부끄럽고 회복될 것 같지 않았다. 아주 선명한 정지선만 보였다._p.284
처음의 두려움과 절망을 끌어안지 않으면 삶은 조금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모든 처음의 순간엔, 곁에서 도와주고 응원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흔해 보이는 불행과 적의보다 실은, 기적적인 응원과 호의가 언제나 있었다. ‘나’라는 이야기는 그 처음들의 손을 굳세게 붙잡고 쓰이고 있다._pp.284-285
내가 지나쳐온 수많은 처음을 생각한다. 아직 못하는 것이 많아서, 아직 남아 있는 처음을 생각한다. 반듯한 대로, 오르막길, 내리막길, 굽이진 길, 고속도로, 국도, 산길, 눈길, 빗길, 신호가 없는 길, 가다가 끊기는 길. 다양한 길을 주행하면서 아직 내가 못 가본 길이 이렇게 많았구나 생각한다. 무엇보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동을 걸어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 많은 처음을 만나고 싶다._p.285
시동을 건다. 앞으로 나아간다.
신호등이 보인다.
빨간불 다음엔,
반드시 초록불이 켜진다._p.286
“내 경계를 따지지 말고, 자기가 있는 곳에서 점프를 하면서 살아야 해. 여기가 내 한계다 미리 선을 긋지 말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봐야 해. 일단 다리를 뻗어보는 거지.(하공이)”_p.289
우리가 종종 듣는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라는 안내 음성은 “너는 틀렸어”가 아니라고, “너는 지금 잘못하고 있어”나 “너는 실패했어”는 더더욱 아니고, 그저 “당신은 지금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습니다”라고 생각하면 좋겠다._p.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