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우리는 늘 과거나 미래를 살고 있다. 지나간 일을 곱씹거나 아직 오지 않은 일을 걱정하느라, 정작 지금 이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놓치기 쉽다. 나는 어쩌면 절기야말로 ‘지금’이라는 시간에 가장 집중하게 만드는 장치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지금 가장 생기 있고 맛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 몸을 기분 좋게 흔드는 것이 무엇인지 감각해 보는 일. 그게 내가 생각하는 절기다. _7쪽
브로콜리는 비교적 최근에 우리 식탁에 편입된 채소다. 아마도 누군가는 브로콜리를 키우다, 나물 앞에서만큼은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나물 DNA를 발휘해 그 잎을 그냥 두지 못했을 것이다. 삶아 말리고, 다시 불려 먹어봤을 게 분명하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괜히 웃음이 난다. 새로운 채소 앞에서도 결국은 나물로 귀결되는 상상이라니. _27~28쪽
해보지 않은 요리에 도전하는 짜릿함, 내 손으로 하나의 식탁을 완성했다는 성취감,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 앉아 시간을 나누는 즐거움. 그 모든 것이 겹쳐진 경험이었기에, 지금도 춘분이 떠오르면 가장 먼저 푸이퓌메 와인과 염소 치즈가 생각난다. 딱히 레시피를 정리해 두지 않아 다시 만들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신기루 같은 쑥 바게트도 함께. _79~80쪽
나는 망종 무렵, 반드시 신비복숭아로 여름을 시작한다. 데이비드 보위의 번개 메이크업을 떠올리게 하는 그 무늬를 볼 때마다 괜히 설렌다. 껍질째 한 입 베어 물면, 해마다 더 빨리 시작되는 여름을 미워하던 마음이 슬그머니 누그러진다. 넘치는 당즙에 약간의 산미, 그리고 우유나 코코넛밀크를 몇 방울 섞은 듯한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입안을 촉촉하게 감싼다. _151~153쪽
돌이켜보면 여름은 견디기 어려운 계절이지만, 동시에 그 더위를 식혀줄 것들이 가장 풍성하게 나는 계절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재료들을 골라 한 그릇을 만들고, 한 장을 싸고, 한 입을 씹으며 여름을 건넌다. 그렇게 생각하니 유난히 싫던 여름도 조금은 이해가 된다. 싫은 계절도 결국은 먹으며 지나간다. _191쪽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끼우고 압력을 살짝 가하자,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쉽게 치아가 맞닿았다. 상상 이상의 무른 식감에 놀라는 사이, 그 사이로 무언가가 아지작거리며 터졌다. 씨앗인지, 과일의 결인지, 혹은 설탕 결정인지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것이 씹혔다. 그리고 곧, 설익은 과일이나 허브의 향과 풋내, 그리고 잘 익은 붉은 과실의 감미가 동시에 감지되었다. 겉은 풋과일의 맛에 가깝고, 속은 잘 익은 아람 같은 과실에 가까운 이중적인 풍미가 무화과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덕분에 실제 당도에 비해 단맛이 과도하게 느껴지지 않고, 거듭 먹어도 쉬이 질리지 않는다. _204쪽
좋아하는 식재료가 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은, 추상적인 통계보다 더 직접적으로 기후 변화를 체감하게 한다. 거창한 담론을 들추지 않더라도, 식탁 위의 변화만으로도 우리는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지 감지한다. 기후 변화를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이들 또한, 그런 변화 앞에서는 완전히 무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_254쪽
참고로 나는 그날 정말로 딸기를 처음 먹었다. 먹는 법은 몰랐지만 너무 맛있어서, 마치 원래 없었던 것처럼 꼭지까지 모조리 먹어 흔적을 없애버렸던 것 같다. 가끔 나는 그것이 얼마나 맛있었길래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세상에 그렇게 달고 맛있는 것을 처음 먹는 순간이라니. 또 한 번 느껴보고 싶지 않은가. _275쪽
입동이 지나며 공기가 차가워질 무렵이면, 자연스럽게 땅속에 저장된 것들에 시선이 간다. 추위가 시작되는 이 절기는, 땅이 닫히고 저장 작물이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다. 그런 시기에 토란은 소금에 찍어 먹어도 좋고, 올리브오일에 소금을 섞은 기름장이나 김치와도 잘 어울린다. 김장철이 다가오지 않았는가. 김장한 김치에 돼지고기 대신 토란을 삶아 막걸리를 곁들이면, 그보다 더한 호사는 없을 것이다. 김장은 토란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한 핑계가 된다. _293~294쪽
절기는 변하는 기후를 감각하게 만들지만, 내게 더 중요한 역할은 특정한 시기에 겹쳐 있는 기억과 감정을 불러오는 데 있다. 그맘때 먹었던 것을 통해 당시의 미각적 즐거움, 공기, 함께한 사람을 떠올리고, 그리워하며, 다시 같은 것을 찾는 반복 속에서 우리의 일상은 조금씩 새로워지고 풍성해진다. _317쪽
흥건한 기름에 살짝 숨이 죽은 호부추 사이로 낯익은 듯 낯선 식재료가 보였다. 내장처럼 보이기도 했다. 약간의 망설임을 안고 조심스럽게 입에 넣었다. 탱탱한 그것을 씹자 단맛과 감칠맛이 혀에 스몄다. 안심하고 다시 씹었다. 차지게 씹히는 이것은 분명 무언가의 살점인데, 씹을수록 달았다. 이게 뭐지? _335쪽
그래서 나는 소한쯤 굴을 먹는다. 위험을 알면서도, 계절이 건네는 가장 맑은 맛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동시에 우리가 흘려보낸 것들이 어떻게 다시 우리의 식탁으로 돌아오는지도 떠올리게 된다. 굴은 겨울을 가장 겨울답게, 바다를 가장 바다답게 전하는 식재료이면서, 인간의 삶이 자연과 얼마나 촘촘히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_360~361쪽
돌이켜보면, 취향은 처음부터 분명했던 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은 우연히 먹어보고,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기억하며, 다시 찾고, 실망하고, 또 고르면서 조금씩 만들어진다. 누군가 맛있다고 해서가 아니라, 먹고 난 뒤 입안에 무엇이 남는지, 장은 편안했는지, 마음이 괜히 무거워지지는 않았는지를 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취향은 자리를 잡는다. 삼치회 역시 그런 방식으로 내 취향이 되었다. _372쪽